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단초가 된 촛불집회는 그동안 일제고사, 언론악법, 용산참사 등을 거쳐오면서 진화해왔다. <위클리서울>은 촛불집회 1년을 즈음해 매주 각계의 반응을 살펴오고 있다.
`촛불 소녀들`과 `촛불 대학생` `유모차 부대 어머니들` 인터뷰에 이어 이번 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다시 불붙기 시작한 촛불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만난 일반 시민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그리고 각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았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에도 시청광장에는 촛불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정치적 사안과 무관하게 추모하는 의미에서 촛불을 들었다" "슬픔이 가실 때까지 당분간 시청광장에 나올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정부여당의 반성 기미가 보일 때까지 촛불을 밝힐 것이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향후 촛불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래군 용산참사 범대위 집행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들조차 사안 자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곧 `민주주의의 죽음`으로 상징된다는 점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그 성격상 용산참사,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 죽음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의 촛불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촛불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확답할 수는 없으나 한편으로는 "무언가 큰일이 터질 수도 있는 게 아니겠냐"고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섣불리 예상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중앙대 겸임교수)은 "정부여당이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역사적인 대사건 앞에서 국민 정서를 헤아리지 못할 경우 사태가 어떤 식으로 번질지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들 성찰 계기 될 것"

시청광장을 찾은 강주희(34세) 씨는 "처음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 `정치적 사망` 이런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실제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엄청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강 씨는 "노 대통령이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었기에 가까운 사람 죽은 것처럼 많이 슬펐다"고 얘기했다.
그는 "박연차 리스트는 분명 보복성 수사로 느껴진다"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의 비리와 비교해본다면 아주 협소하고 게다가 빌려 쓴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검찰과 언론이 의도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금액이 적은 것을 두고 `잡범` 취급했으니 노 전 대통령도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과라도 했다. 이전의 비리 대통령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원기(29세) 씨는 "잘먹고 잘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나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나 노 전 대통령의 `타살`은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씨는 "선거 때 `나 하나 빠지면 어떤가` 하는 발상이 멀쩡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까지 오게 하지 않았나"며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앞으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무척 부담스러워 할 상황인 것 같다"며 "선거 열심히 참여할 것이고 한나라당은 무조건 `아웃`이다. 원래 싫어한 정당이었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박 모(43세) 씨는 시청광장을 둘러싼 경찰버스와 경찰의 태도와 관련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경찰의 행위는 너무 어리석어 보인다"며 "소통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니까 인터넷 등을 통해 소통을 중시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정부가 더더욱 대비돼 보인다"고 성토했다.
박 씨는 "앞으로 계속 촛불을 들고 나갈 것"이라며 "아직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돼 촛불이 어떻게 번질지는 예상하기 힘들다. 그저 마음가는 대로 촛불을 들고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서 모(54세)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알 것"이라며 "양심 있는 국민들로 인해 촛불은 지난해보다 더 밝게 퍼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씨는 "저 역시 시간 되는 대로 어디서나 촛불을 밝힐 것"이라며 "그동안 서민 편에 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서 씨는 또 "이번 노 대통령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눈물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눈물"이라며 "그 당시에는 정치에 무관심한 어르신들이 거리에 나와 그저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감정적인 시선에서 눈물을 보였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올바른 `이성`을 가진 국민들의 판단에서 도출된 슬픔"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경찰은 대한문앞 분향소 철거에 나섰고 이에 격분한 시민들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경찰서로 연행되는 사태도 심심찮게 벌어지면서 원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촛불보다 더 거대해 질 수도"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보다 촛불이 거대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박래군 용산참사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 장례기간 동안 참은 것 같으나 앞으로 그 분노가 폭발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국민들의 분노의 방향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이 거세게 지속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정국쇄신안을 내놓는다던지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기존 국민들과 소통을 거부해온 것처럼 그대로 밀고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따라서 지난해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광장에 시민들이 많이 모여들 것 같고 항의시위도 빗발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일주일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분노는 용산참사나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의 죽음 등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며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의 태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의 원인을 볼 수 있기에 향후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이 지속되는 데에 우려가 크다"며 "현재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해 법과 원칙을 말하고 있지만 검찰권력, 경찰권력을 활용해서 억압통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 의장은 "이렇다보니 국민들은 검찰, 경찰 앞세우는 공안정치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용산철거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검찰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물어야만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의장은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촛불집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도 촛불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단단히 학습한 것 같다"며 "그래서 현재 아예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막고 있는데, 만약 이것을 계속해서 막는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태와 맞물려 더 큰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의장은 "만약 이명박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서 촛불이 모이는 것 자체를 억압하고 이 과정에서 촛불 시민들이 경찰의 억압을 이겨낸다면 작년 촛불 항쟁 때보다 더 큰 촛불로 이어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오세철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집행위원장(연세대 명예교수)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촛불 시민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예상보다는 거칠지 않다"며 "사람들이 흩어지길 바라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최대한 경찰이 자제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경찰은 만약 진압 들어와서 누군가 다치면 촛불이 더 거세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진압은 불가피하다. 언젠가 진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촛불의 저항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 민주주의 소중함 이제야 알게 돼"

학자 등 전문가들은 향후 촛불 정국에 대해 확실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국민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함께 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부여당의 후속조치가 적절치 못할 경우 시민사회단체들의 전망과 마찬가지로 촛불은 지난해보다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재봉 원광대 정치학과 교수는 "현재 분위기를 봐서는 한번 `뒤집어질 것` 같기도 하다"며 "특히 6월에 기념일이 많고 미디어법 처리 문제 등과 겹치면서 큰 저항의 물결이 촛불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현재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분노가 클 것"이라며 "죽은 대통령의 대범함과 죽인 권력자들의 옹졸함이 오버랩 되면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봉하마을이라는 그 촌구석에 100만이 몰렸고 전국적으로 500만이 분향소를 찾았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라며 "이 한가지 사실을 두고 볼 때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500만 이외의 잠재된 수의 국민들이 어떤 행동을 실천으로 옮길지 의문일 따름"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촛불 시민들은 정권에 대한 분노가 없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좀 다른 문제"라며 "정치보복에 의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촛불 속에는 애통스러움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큰 시위나 혁명은 늘 분노에 의해 촉발된다"며 "돌아가신 분의 애통과 죽음이 이끈 분노 이것들이 합쳐서 폭발하면 아마 현 정부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 성격으로 앞으로 진행될 평화적인 촛불조차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양보와 융합이라는 단어는 떠올릴 수 없는 정권이니 경찰의 과잉 충성은 향후 국민들의 더 큰 저항을 몰고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국민들은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서민들의 삶을 위해 그나마 노력했던 노 대통령의 진가를 절감하게 됐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 하에서 현재 정부가 국민들을 위해 새로운 판을 깔지 않으면 촛불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 교수는 "현재 이어지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를 감안한다면 단순히 추모로 끝이 날 것 같지가 않다"며 "속단하기 힘들지만 계속해서 MB악법 등을 밀어붙인다면 현 정부는 또다른 6월 항쟁과 대면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중앙대 국문과 교수)은 "국민들은 역사적인 비극 앞에서 슬퍼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은 이 슬픔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역사적인 비극을 일치화시키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분노와 한 동반 불구 정부 변화 없어"

임 소장은 "이 슬픔의 정체는 분노와 한을 동반한 정서"라며 "그동안 현 정부에 쌓였던 분노와 한이 슬픔과 겹쳐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 국민들의 한을 어떻게 보느냐가 정부여당의 몫인데, 어떤 변화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우려했다.
임 소장은 "이 지점에서 정부여당이나 야당이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할 경우 국민들의 아픔이 어떻게 나아갈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중요한 것은 여야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국민들은 역사의 진실을 알고 올바른 판단을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만약 촛불집회도 작년 이후에 계속 자유롭게 열렸다면 이번 비극 앞에서 애도의 열기나 표현방법이 다를 수도 있었다"며 "그러나 분노나 한을 표출할 방법이 없었기에 국민들의 슬픔은 더욱 배가됐으며 분노에 대한 표출수위도 더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 소장은 "현 집권세력이 자유당 독재를 지지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역사적으로는 민주주의랑 관계없는 정권이고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세력들"이라며 "만약 촛불이 일어나면 현 정부가 더 크게 탄압을 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정작 중요한 것은 촛불이 아니라고도 지적한다. 그는 "이제 와서 어쩌면 촛불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며 "10월이면 보궐선거와 지방자치선거가 있고 이는 민심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향후 촛불집회가 일어나던 일어나지 않던 민심은 민주주의를 선택한다고 본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치세력이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향후 촛불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각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심 곳곳에서는 작고 큰 촛불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촛불과 정부여당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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