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한테 빌린 돈 갚지 못해 딸과의 관계도 나빠졌네요"
"사위한테 빌린 돈 갚지 못해 딸과의 관계도 나빠졌네요"
  • 승인 2009.06.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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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창동골목시장

창동골목시장을 찾았다. 창동골목시장 노점상과 점포들이 마주하고 있는 형식으로 `대문`도 없이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이다. 말 그대로 골목시장이다. 골목에는 노점과 점포가 마주본 채 줄을 잇고 있다. 재래시장 특화사업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서는 풍경이다.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져 살기 힘드네요 정말…. 특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매출이 급격히 떨어져요. 비 오는 날 누가 밖에 나와서 고생하며 먹겠어요. 아침부터 죽어라 팔아봤자 평균매출의 반도 못 메워요."]

노점 분식집 주인의 한숨이다. 특히 주력업종이 떡볶이인데 인근에 전문점들이 생기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 전문점에서 떡볶이를 맛본 적이 있다는 이 집 주인은 자신도 그 맛을 인정할 정도로 맛이 있다고 한다. 20여년 전 노점에서 팔던 떡볶이 맛과 유사하다는 것.

"옛날 맛 있잖아요. 달달하면서 떡볶이 색깔도 연하고 말이죠."

주인은 이렇게 말했지만 정확히 어떤 맛인지는 알 수가 없다. 떡볶이 전문점 문제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이 집의 사정을 어렵게 한다. 작년 후반기부터 야근과 주말 업무까지 도맡아 하던 인근 회사 단골 손님들도 주머니 사정 때문인지 이 골목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주말에는 `돈 안되는` 동네 꼬마들에게 간신히 의지할 뿐이다.



노점상들과 마주하고 있는 점포들은 주로 식당으로 이 역시 손님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이 골목에서 꽤 오랫동안 족발 장사를 해왔다는 `창동 족발` 주인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을 이용하는 손님이 많았지만 올해 들어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점심을 먹으러 나온 인근 회사 손님들로 붐비던 곳이에요. 더군다나 이곳은 꽤 전통이 있는 집이에요. 20년 넘게 족발집을 해와서 그 맛을 아는 손님들은 이미 단골이 됐죠. 미아리에서 일부러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그런데 이제 그런 손님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매달 한번씩 멀리서라도 찾던 손님들은 이제 석달이 지나도 한번 올까말까 하고 그래요."

회식하는 모습도 많이 사라졌단다.
"저녁 손님이 `진국`인데 요즘은 회식도 다들 피해요. 인근 사업체들도 잘돼야 우리 장사도 잘되는 것인데 외환위기 때보다 요즘 손님이 더 없나 아르바이트생 월급 주기도 어려워요.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돼 주변 회사들이 예전처럼 회식도 자주 왔으면 좋겠네요."



가끔 오는 단골손님들이 이 집 사장에게 하소연했던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요즘은 생활비가 모자라 동료들끼리 대리운전팀을 만든다고도 하더군요. 여기 근처에 있는 모 회사 사원들은 야간근무가 없는 날 대리운전을 한다네요. 남편은 투잡에 마누라까지 일자리를 찾아 마트나 백화점, 식당 등에서 일한다고 하던데… 그렇게 돈벌어서 다 어디에 쓰는지…"라고 털어놨다.

과일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는 골목이 썰렁하니까 아무리 예쁘게 모양새를 갖춰놓아도 헛 일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점심때 밥 먹으러 나오던 사람들도 사라져서 골목 전체가 썰렁해요. 경제사정이 어려우니까 회사 사람들도 구내식당만 이용하는 것 같고 가정에 있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 같네요. 하긴 나도 외식 해본지 몇 년이 됐지만은…."



아주머니는 비가 와서 더 이상 앉아 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옆에 봐요.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아예 안나오는 상인들도 있어요. 나와서 몇 개 팔아봤자 본전도 못 찾거든. 과일 떼어오랴, 실으랴, 시간 낭비에 차 기름값이 더 드니. 나야 이렇게 혼자 있으니 저 집 갈 손님 내 집으로 오는 게 좋기는 하지만… 만약 오늘 다 문을 열었으면 다들 같이 망하자는 것이지요." 

식료품 가게 아주머니의 근심도 나날이 늘고 있다. 요즘은 사람들이 대형마트에서 대량으로 사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안그래도 되는 업종이 아닌데 매출이 작년보다 30% 정도 줄었죠.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간장이나 참기름 같은 것은 대형마트에서 한꺼번에 구입해버려요. 급하게 참기름이 모자라서 사러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 나가는 거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생선구이 전문점 주인도 주름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그간 회사원들 회식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들어 줄어든 회식 때문에 대안 찾기에 급급하다.
"이곳에서는 점심뿐 아니라 저녁에 회식하는 모습도 사라진 지 오래예요. 주변에서는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손님이 없다고 해요. 경기가 한창일 때에는 손님도 많아 아주머니 세 분을 쓴 적도 있는데 지금은 저녁시간에 혼자 일해도 널널해요.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어요. 3년 전 창업했는데 지금이 장사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네요."



인근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생선구이 가게가 장사가 안되니 자신도 덩달아 안된다며 푸념했다.
"생선구이 사장이 우리집 단골인데 저 사람이 장사를 못하니 나도 같은 꼴 났구만…. 내 장사가 잘되면 생선구이 가게도 장사가 잘 되려나…. 그나저나 작년에 비해 반 정도 밖에 안팔려요. 건어물은 다른 것에 비해 명절 대목을 약간 일찍 타는데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 역시 그렇지 않았어요. 재래시장 대목도 이제 사라진 게 아니겠어요."

시장 음식점들은 늘어나는 빚 때문에 장사를 끝내고 주인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순대가게 아저씨의 한숨이다.

"새벽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북적대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자정이 넘으면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요. 지난해부터 매출이 40% 정도 떨어져 사위한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딸과의 관계도 나빠졌네요."

순대집 식당 할머니 역시 안타까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시장 경기가 안 좋으니 상인도, 손님도 줄고, 덕분에 먹고살던 식당도 많이 줄었고, 이 골목에도 저녁까지 장사를 하는 사람은 이제 없는 것 같어. 나이 든 우리야 평생 해온 식당 문을 닫아도 문제는 없지만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구만…."

경기불황으로 서민들의 주머니가 얇아지면서 창동골목시장에서는 가장 먼저 음식점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노점상이야 점포세가 없다지만 음식점들은 점포세까지 부담해야돼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되도록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외식이나 회식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한숨소리만 넘쳐나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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