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속 금호아시아나그룹 '진퇴양난' 막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초 대한통운 인수·합병(M&A)에 성공할 때만 해도 재계의 시샘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가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공격적 M&A는 지난해 하반기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독`이 되어 돌아왔다. 금호생명 등 핵심 계열사를 팔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섰지만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특히 친기업 재벌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유독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해선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온 것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예감케 한다. 이는 지난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 호남기업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우건설 인수시 자금지원 받은게 역효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위기는 사실상 2006년 12월 대우건설 인수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적 M&A로 한 단계 도약하려는 움직임이었지만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먼저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국민은행 등 재무적투자자(FI)들로부터 3조50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투자자들은 대우건설 주가에 6000원 가량의 프리미엄 보장을 요구하는 풋백옵션을 걸었다.
풋백옵션이란 주식 등 금융자산을 약정된 기일이나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옵션)를 매각자에게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조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만 3년이 되는 올 12월 15일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풋백옵션 행사가격인 3만1500원이 안될 경우 차액만큼을 FI에게 보전해 줘야 한다. 지난달 28일 현재 대우건설 주가는 1만600원에 불과하다. 지금대로라면 적어도 3조원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어 FI들과 충분한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FI인 채권금융기관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자금확보를 위해 가장 건실한 계열사인 금호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금호생명 매각 작업이 금융위기 등의 돌발 변수를 맞아 시장에 나온지 9개월이 지나도록 순탄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월 주주총회 전에 결론을 내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설상가상으로 금호생명은 매각이 지연되면서 당초 장외시장에서 3만원이 넘던 주가가 7000원 선으로 주저앉았다. 1조원에 달하던 매각가치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에서도 이렇다 할 좋은 실적을 보이지 않고 있는 금호생명 가격이 5000억원을 넘기는 어려울 것으로 평가한다.
게다가 지급여력비율이 하락하는 바람에 오히려 사옥 매각, 유상증자, 후순위 차입 등을 통한 자본수혈이 불가피해졌다.
대한통운 역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택배 운임비 30원 때문에 기사들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이와 관련 화물연대 노동자가 지난 5월 초 자살했다. 화물연대는 민주노총과 연대해 총 파업을 결의하는 등 심상치 않다.

금호생명·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매각 검토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서초구 반포동에 8만7111㎡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터미널 부지의 공시지가는 8000억원을 웃돈다.
금호산업은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의 38.74%를 보유하고 있으며, 한진(16.67%)과 천일고속(15.74%), 한일고속(11.11%), 동부건설(6.17%) 등도 주요주주로 올라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정류장 매표사업과 부동산 임대 사업을 통해 지난해 258억원의 매출과 6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외형상 매출보다 터미널 땅의 가치가 워낙 크다.
증권업계에서는 강남 노른자위 땅인 서울고속터미널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 1조원 가까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생명과 서울고속터미널 매각과 관련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생명을 매각하는 것은 맞지만 서울고속터미널은 다르다"며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기 때문에 검토는 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일각에서는 이 정도론 어림도 없다고 본다는 것. 대우건설이나 대한통운, 둘 중 하나는 내려놔야 하지 않겠느냐는 인식이다.
그중에서도 물류산업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대한통운보다는 그룹 자금 유동성에 부담을 주고 있는 대우건설이 우선 순위로 꼽힌다. 대우건설 실적이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작용하고 있다. 한때 탄탄한 수익원이었던 국외 사업이 여의치 않는 데다 여전히 국내 미분양 물량이 적체돼 있어 올해 시공능력평가 1위 자리를 현대건설에 내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올해 대우건설 매출액 추정치를 7조2091억원에서 7조3701억원으로 2.2% 올렸지만 영업이익(3997억 3479억원)과 순이익(2794억 2505억원)은 각각 13%와 10.3% 낮춰 제시했다. 이 때문에 풋백옵션 문제가 걸려 있는 대우건설 주가가 연말까지 2만원을 넘기기 힘들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담이 크더라도 대우건설 재매각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무려 6조4225억원이란 높은 금액에 어렵사리 인수했고 적잖은 시너지 효과 또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도 대우건설 재매각에 대해 "시장에서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아직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이전 정권 급성장 기업 사정 칼날

이에 따라 채권단은 대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모투자펀드(PEF)를 조성해 주식(풋백옵션)을 매입해주는 방안과 일부 풋백옵션의 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채권단이 PEF를 통해 대우건설 풋백옵션을 인수해주는 방안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현행법 상 대우건설을 완전 계열분리해 경영권도 넘겨야 하기 때문에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것과 같다. PEF가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에 추후 대우건설을 되살 수 있는 우선 매입권을 부여해주더라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측 처지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방안이다.
채권단은 또 대우건설 인수금융에 참여한 일부 투자자에게 풋백옵션을 상환해주고 나머지 풋백옵션의 만기를 1~3년 정도 연장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수금융에 참여한 일부 은행들을 제외하고 사모펀드 등의 나머지 투자자들은 이미 풋백옵션을 유동화시켰기 때문에 상환 요청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일각에서는 정부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관계가 소원한 게 촉매가 된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자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전 정권에서 `대어를 낚거나` `성장세가 두드러진` 기업에 대해선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지난해 7∼8월 대검 중앙수사부가 공시 및 회계자료 등을 정밀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이나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정권 차원의 특혜나 비리 의혹이 없는 지 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정부의 대기업 구조조정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재계 10위권에 드는 기업 중 한 곳 정도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를 봤을 때 금호아시아나가 타깃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기업 구조조정은 올해 5월하고 6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며 "구조조정은 우리 기업들이 상황이 좋아졌을 때 점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이번에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어 "이달 말까지 일부 주채무계열과 재무개선약정을 맺고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 대기업에 대해서는 신용위험평가를 철저히 해서 C등급(워크아웃), D등급(법정관리)의 경우에는 구조조정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의 M&A는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떳떳하다"고 말했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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