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이후 가장 붉은 6.10 오나?
87년 이후 가장 붉은 6.10 오나?
  • 승인 2009.06.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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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6.10항쟁' 22주년,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

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이 지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단초가 된 촛불집회는 그동안 일제고사, 언론악법, 용산참사 등을 거쳐오면서 진화해왔다. <위클리서울>은 촛불집회 1년을 넘기면서 매주 각계의 반응을 살펴오고 있다.
`촛불 소녀들` `촛불 대학생` `유모차 부대 어머니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 이어 이번 호에는 `6월 민주항쟁`과 맞물려 다시 불붙기 시작한 촛불에 대해 분석해보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87년 6월 항쟁 이후 가장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6월 정국`. 급기야 대학교 교수들까지 잇따라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식인 사회의 움직임은 향후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통해 향후 `촛불 정국`의 여러 모습들을 그려보았다.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대학가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대와 중앙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했고 경북대, 연세대, 동국대, 성균관대, 성공회대, 한신대 교수들이 뒤를 잇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대학 총학생회 등 학생들도 가세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 120여 명과 중앙대 교수 68명은 3일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이명박 대통령의 소통하는 연대 정치, 검찰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국민적인 추모 열기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적인 국정운영 때문이라고 보고 1주일 동안 시국선언문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교수 수천 명이 참여하는 전국 단위의 시국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시국선언문엔 대체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용산참사,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의 죽음 등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 사건들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고, 이 때문에 정부여당이 국민들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특히 보수색이 짙은 대구 경북 지역 교수들까지 동참한 이번 시국선언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현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미디어법 폐기 및 언론의 자유 보장, 시민들의 집회·시위 자유를 탄압한 서울지방경찰청장 파면 및 국민기본권 보장, 비정규직·철거민 등 민생 문제 해결 및 서민을 위한 국정기조 전환 등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김사열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경북대에서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1990년대 초 이후에는 끊겼다"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작년(한반도 대운하 관련)과 올해 두 차례나 시국선언을 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엉망이고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시민사회단체와 야당 등 정치권도 공동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 대규모 범국민대회를 열기로 하는 등 그 파장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 4당과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대표자들과 각계 원로들은 지난 5일 오후 성공회대성당에서 모임을 갖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쇄신,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 검·경을 앞세운 강압통치 중단, 남북의 시급한 관계 복원, 서민 살리기 정책 최우선 실시` 등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이들은 오는 10일 저녁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6월 항쟁계승 민주회복 국민대회`를 공동 개최한다. 국민대회는 `6월 항쟁 계승과 국정쇄신을 위한 국민대회`와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민주주의 문화제`로 이어진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이번 국민대회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조했던 활동의 연장"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고, 6월 국회 개원을 앞둔 시점에서 언론 악법 등 반민주, 반민생 악법을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할 국면이기 때문에 국민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 운영위원장도 "현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국정운영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민주당과 야당의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대해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쇄신특위에서 건의한 이 대통령 담화문 발표 요구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이다.

현재 정국은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일단 범국민적 분위기는 그동안의 추모 분위기에서 투쟁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계각층의 `반MB공동전선` 구축이 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한 `반독재전선`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87년 당시 7년에 걸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 하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한계에 달하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 씨의 고문치사사건은 이러한 긴장국면에 불을 당겼다. 그러나 정권은 고문치사를 은폐하고 조작까지 했다. 5월 18일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씨 고문치사사건의 정권 차원의 은폐조작을 폭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한층 더 깊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는 `직선제 개헌`으로 표출된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에 87년 5월 27일, 당시 대표적인 재야운동단체인 민통련과 야당인 통일민주당이 주축이 되어 각 사회운동 세력과 종교계, 학생운동 조직 등이 광범위하게 연합,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건국 이후 최대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을 형성했던 것이다.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민정당 정당대회일에 맞춰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구호로 6.10 범국민대회를 개최, 역사적인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다.



이미 제2의 6월 민주항쟁으로 진화될 수 있는 기반은 조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상황이 `제2의 6월 항쟁` 폭풍전야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전국민적인 노 전 대통령 추모민심, 그리고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 등 민심수습책이 따르지 않을 경우 정권과 국민간의 극한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직선제 개헌`으로 표현되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22년 전 항쟁의 주동력이었다면, 이번엔 이명박 정부 들어 급속히 진행되는 `민주주의 후퇴`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거대한 저항심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 서거는 `민주주의 후퇴`를 국민들이 극적으로 체감한 사건이었고 이러한 동력이 `6.10 범국민대회`에서 표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상임이사(한국사 박사)는 "원칙론적으로 얘기한다면 지난 1년 동안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촛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민주화`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87년 당시에는 직선제 개헌이 큰 화두였지만 `경제·민주화` 측면도 부각됐었다. 현 정국과의 공통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자유화, 정경유착 개선,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분배, 평등 등의 문제에 대한 민심이 87년 당시 민심과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다.

신 이사는 "현재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 선언도 중요한 계기"라면서 "87년 당시에도 4.25 교수단 데모가 있었고 이는 서민들의 불만 차원을 넘어 지식인 사회의 참여를 통해 사회 부조리, 정치력의 부재와 정권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짚었다"며 `6월 정국`이 큰 항쟁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촛불이 아닌 다른 수단이 뒤따를 때 현 정부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촛불은 사실 사회가 상당히 발전한 단계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엽기적인` 한국의 현실에서 촛불만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는 "용산참사, 노동자 문제 등이 폭발하면 87년과 같이 촛불을 넘어선 정권퇴진 투쟁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며 "없는 자와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마치 `마피아`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촛불은 그저 문화제의 일종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권퇴진 성격의 투쟁이 아니라면 이 정부 아래서는 선거를 통해 민심을 표출하는 방법 밖에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6.10 항쟁은 학생들이 주동했고, 또한 목숨을 바쳤던 저항"이라며 "촛불은 목숨을 바치고 투쟁하는 것도 아니어서 87년 항쟁과 같은 결과는 성립하기 힘들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87년과 현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번 사태가 제2의 6월 항쟁으로 발전하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87년에 국민들은 직선제 개헌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지향했으나 지금은 방어적이다.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를 저지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정권퇴진 운동을 벌인 데에는 양 김씨 등 국민적 추앙을 받는 지도자가 존재했고 재야에도 쟁쟁한 지도자들이 많았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87년 6월 항쟁은 30여년에 걸쳐 누적된 반독재투쟁의 폭발에서 비롯됐다. 이에 따른 조직적 기반 또한 탄탄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직적 저항 보다 비조직적인 대중의 참여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촛불`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그러들 가능성도 많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 역시 22년 전과 같은 국민항쟁으로 발전하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국민들은 지난 6월 항쟁과 같은 정권퇴진이 아닌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아직 여러 갈래의 길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며 현 정부의 판단에 따라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국정기조를 쇄신하면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윤 의원은 "지난 87년 항쟁은 80년 광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 폭발한 것"이라며 "지금은 그러한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지금 국민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 이 대통령에게는 여러 개의 비상구가 있다"며 이 대통령의 대응에 따라 여러 갈래로 상황이 변화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고 미디어법 등 MB악법을 강행하는 등 역사를 되돌리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 국민은 10년간 민주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에 예열기간 없이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거대한 저항의 물결을 형성하고 있는 `6월 정국`. 비조직적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해 각계각층은 `대중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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