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으로 일부기업 인수 혜택 가능성 풍부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부의 구조조정 대상에 든 기업은 계열사나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여유있는 기업은 영토확장에 나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하이닉스반도체 등 과거 공적자금을 투입한 기업들도 매각 절차에 들어갔거나 매각을 앞두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알짜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 20∼35곳 선정

지난 11일 산업계와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채권금융기관들은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434개 기업에 대해 신용위험평가를 마무리했다.
채권금융기관들은 조만간 워크아웃 대상 기업 세부안을 최종 확정하고 대상기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 이번 신용위험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 기업정된 곳은 20∼35곳. 이들 기업들이 올 하반기 M&A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은행들은 지난 4월 말까지 1422개 기업에 대한 기본평가를 해 약 300곳을 이자보상배율 3년 연속 1 미만 등의 사유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주채권은행과 부채권은행은 각각 기본평가 불합격 판정기업과 올해 1월에 실시한 건설·조선 신용위험평가에서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부족) 등급을 받은 기업 등을 상대로 세부평가를 실시했다.
예를 들어 주채권은행이 B등급을 준 기업을 부채권은행이 C등급을 매긴 경우 부채권은행의 의견을 좀더 반영해주라는 것이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대기업들은 자산매각 등의 자구노력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여기에 최근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금호아시아나.동부.동양.애경.대한전선.하이닉스 등 9개 그룹도 일부 계열사나 자산 매각에 나설 예정이어서 M&A 시장을 뜨겁게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사인 금호생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또 서울고속터미널 지분 매각에 나서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우건설 풋백옵션(자산을 약정된 기일과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에 투자할 새로운 재무적 투자자(FI)를 찾지 못하면 내놓기로 했기 때문.
다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보유한 대우건설이 M&A 시장에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금호아시아나그룹측은 FI 유치를 확신하고 있어, 산업은행과 맺은 기한인 7월 말까지 진행상황을 봐야 한다.
동부그룹은 동부메탈 매각을 위해 산업은행과 가격협상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이달 중에 매각을 완료키로 했다. 다만 산업은행과 동부그룹 간 동부메탈 매각 가격에 대한 이견이 커 협상 과정에서 다소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대주그룹 계열사인 대한조선도 이르면 다음달 초까지 출자 전환 등의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완료한 뒤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대한전선그룹은 비핵심 계열사인 트라이브랜즈와 한국렌탈에 대해 구체적인 매각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애경그룹의 경우는 지난 2007년 삼성물산의 유통부문을 인수한 ARD홀딩스가 보유 중인 부동산 주식 등 자산 일부만 우선 매각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두산그룹은 방위사업체인 두산DTS와 SRS코리아 삼화왕관 한국항공우주(KAI) 등 4개 계열사 지분을 특수목적회사(SPC)에 넘기되 경영권은 유지키로 했다는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M&A 관계자는 "계열사나 주력 사업체들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가격차가 많아 M&A 성사가 쉽지 않았다"며 "정부나 금융권의 재무구조개선 압박이 하반기에는 심해질 것으로 보여 M&A가 활성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대상 기업들 매각 연내 본격화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방안으로 추진 중인 민영화 대상 기업들의 매각도 연내 본격화될 전망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도 조만간 M&A 시장에 나온다. 하이닉스반도체 주식관리협의회는 조만간 LG와 SK 현대중공업 등 잠재적 투자자들에 투자제안서를 발송, 본격적인 매각 작업을 진행키로 했다. 7~8월 중 인수희망 업체를 선정, 9월 본입찰을 거쳐 12월까지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이 단독 응찰했다가 가격차이로 매각이 무산된 현대종합상사도 다시 M&A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연내에 재입찰 또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재매각이 추진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또 산업은행은 인수자가 나타나면 KAI 지분(30.54%)을 매각할 방침이다.
올 하반기 중에는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등의 매각작업도 진행될 것으로 시장에선 기대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대우조선과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해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매각추진 시기 등에 대한 검토 작업을 재개키로 했다.
여러 차례 매각이 무산된 대우일렉트로닉스 역시 구조조정 작업이 완료되면 연말에 재매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자산 정리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M&A 작업이 빠르면 오는 4분기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당초 대우일렉 채권단은 냉장고와 세탁기, 기타 주방가전을 제외하고 사업 자산을 분리 매각하는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M&A를 다시 추진키로 하고 워크아웃 기간을 내년 3월 말까지 1년 연장한 바 있다.
하지만 채권단은 대우일렉 임직원의 퇴직금 문제를 늦어도 7~8월 중에, 자산 정리도 가급적 9월 말까지는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현재까지 일단 정리 작업이 순조로운 것으로 평가했다.
채권은행은 사모투자펀드(PEF)를 조성해 대기업이 내놓은 계열사를 인수할 계획이다. PEF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10% 이상 사들여 구조조정을 하거나 사업구조를 개편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이를 되팔아 수익을 얻는 회사다.
산업은행은 매물로 나온 계열사들을 PEF를 통해 시가에 인수해 3~5년 후 시장이 회복되면 높은 가격에 팔아 해당 기업에 남긴 차익도 돌려주고 우선매수 청구권도 부여할 방침이다.
기업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PEF 설립이 활발해지고 정부도 PEF의 활동을 돕고자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새로 설립된 PEF는 3곳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산업은행이 만든 `턴어라운드 PEF`를 비롯해 4개가 신설됐다.

정부, 구조조정·M&A 개입 가능성 농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자산도 인수할 수 있는 기업 재무안정 PEF 설립과 특정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 뒤 합병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설립도 가능해진다.
대기업 집단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M&A 시장으로 끌어들여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설립한 PEF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취득할 경우 15% 의결권 제한 규정을 5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조치를 통해 대기업들은 사모펀드로 다른 일반기업을 소유할 수 있게도 되었다. 거기에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합법적으로 금융.일반 모든 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게 된다. 금산분리는 깨졌고 문어발식 확장도 가능하다.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구제금융을 심사하고 받게 되는지, 정부와 은행, 채권단은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 그 무엇도 투명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향후 정부는 은행 등 채권단을 압박해 개별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M&A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대기업(산업자본)의 결탁이 이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많은 대기업들은 많은 유보자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번 조치는 일부 대기업들에게 유보자금을 풀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M&A 수혜를 챙기란 얘기다. 그리고 한편에서 국가는 대자본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을 청산 또는 국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 양산과 비정규직 증가 현상만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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