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불과? 분명한 건 국민들 독재와 탄압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점"
"선언 불과? 분명한 건 국민들 독재와 탄압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점"
  • 승인 2009.06.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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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잇는 각계 시국선언, 메아리는 없다?

이 달 초 서울대 교수들로부터 시작된 시국선언이 전국을 휘감고 있다. 시민단체는 물론 종교계, 의료계, 예술계 인사까지 3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죽음`에 대한 우려 섞인 성토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의미에서다.
이같은 대규모 시국선언 참여 물결은 근 20 여년 만에 이뤄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80년대에도 이렇게 많은 `시국 선언`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청와대도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할 터이지만 깜깜무소식이다. "시국선언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표출되지만 그러나 전문가들은 "청와대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시국선언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시국선언이란 현재 당면한 국내 및 국제 정세와 아울러 한 나라에 사회적 혼란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학계 인사 및 원로, 재야인사 등이 우려를 표명하며 해결하기를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군사독재 시절 시국선언이 자주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수, 재야 인사, 종교계 인사들의 시국선언은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집권세력에게도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면서 그 영향력은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상징적인 사건 이후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시국선언 대열에 나서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용산참사, 남북관계 경색, 민주주의 후퇴 등 시국선언의 명분은 넘쳐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스타트를 끊었다. 이후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캠퍼스를 넘어 거리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 달 초 서울대와 중앙대 교수들로부터 시작된 시국선언에는 전국대학 4000여명 이상의 교수들이 참가했고 이후 대학생과 청소년, 문화계와 역사학자, 변호사, 성직자, 교사, 의료계, 영화감독들에 이르기까지 18일 현재까지 3만명에 가까운 인사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중의 호응도 높은 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공감하는 편이다`라는 응답은 59.6%로 조사됐다.

끝 보이지 않는 동참 대열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송미옥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회장, 서대선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공동대표 등 보건의료계 대표 20여명은 16일 오전 서울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와 의료민영화 중단을 위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 약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 2289명이 서명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부당한 정권의 독선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이명박 정부는 서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특권층만을 대변하는 반민중적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등 각계각층의 여성 70여명도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을 내놨다.
2009명이 서명한 이 선언에서 여성들은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저항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이 아무리 외쳐도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의 존중에 기반하지 않은 비민주적인 통치 방식에 대해, 특히 폭력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우리 여성들은 정부의 오만과 폭정을 더는 묵과할 수 없어 선배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국선언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조합원 1만6171명 명의로 18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교사들을 문책할 수 있다는 교과부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이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현 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부는 국정 전면 쇄신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종로 5가에 위치한 기독교회관에서는 `한국교회 목회자 1000인 시국선언`이 열렸다. 이들의 시국선언이 특히 주목을 끈 것은 현정권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개신교 장로라는 점 때문이다. 이들 목회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국민의 피땀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며 "총칼로 수립된 정권이 아님에도 군홧발과 방패로 국민을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력으로 처참하게 살해하면서 아무런 반성이나 책임도 지지 않는 현 정부가 개탄스럽지 아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개별 발언에 나선 정진우 목사는 "발언이 아닌 명령을 하고 싶다"며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6.15, 10.4 선언 존중하고, 전직 대통령 서거에 관련서는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용산참사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성토했다.
`박쥐` `올드보이`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만든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최동훈 감독 등 영화인 225명도 이례적으로 시국선언 대열에 합류했다. `거꾸로 흐른 시간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에서 이들은 "우리가 함께 쌓아온 소중한 민주주의가 헌신짝 버려지듯 내팽개쳐지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영화는 거짓"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겸허하게 사과하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명박 정부 헌법조차 무시"

전문가들은 각계 인사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헌법과 다른 정치를 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김한성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확보한 것은 87년 6월 이후이고 97년 국민의 정부 이후 10년 동안 민주주의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본다"면서도 "그런데 현 정권 들어 민주주의의 후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실질적 가치는 국민의 자유·평등·복지"라며 "이 부분에서 커다란 후퇴가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헌법 전문에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명시돼 있음에도 현 정부에서는 민주주의 후퇴는 물론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이전 정부의 성과를 부인하고 있다"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교수로 대표되는 학자와 지식인들은 사회적 양심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라며 "개인적으로 나설 수도 있지만 교수 집단으로 의사 표현을 하면 그만큼 힘이 커지고 따라서 지금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자발적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조선시대에도 성균관 유생들이 궁궐 앞에서 농성하고 격문을 올리던 전통이 있었다"며 "현 시국에 대해 낭만적으로 인식을 하고 있어서는 안되며 지금은 당연히 지식인들의 의사가 표출돼야 하는 시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임헌영 중앙대 국문학과 교수는 "우리 정치는 48년 제헌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비정상적인 정치였다"며 "헌법에 명시된 민주주의와는 늘 다른 정치가 돼왔다"고 얘기했다. 임 교수는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현 정부 들어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행태들이 드러나면서 시국선언으로 이어진 것"라고 했다.
임 교수는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짧아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당 시절만 해도 오랫동안 독재를 지속했다"며 "그러나 자유당 이후 그 어떤 독재정권도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80년대 `5공`은 3년 만에 물러났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년이 채 안돼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도 임 교수의 분석에 수긍이 가게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 안바뀌어도 국민은 바뀔 것"

물론 일각에선 시국선언이 선언에 불과한 것은 아니냐는 회의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분석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호헌철폐를 외치던 전두환 정권 당시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시국선언문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도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이 성숙해진 게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김 발행인은 "청와대가 시국선언을 들으나 마나 할지라도 시국선언 자체는 국민들의 생각을 강력하게 담고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는 효력이 있다"며 "따라서 정치에 무지한 일반 시민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자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 정부의 체질상 국민들 요구를 경청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며 "이번 시국선언을 계기로 시민들 전체가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받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발행인은 "시국선언에서 단기적인 성과를 얻기는 힘들지만 선거 등 장기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동시에 우리 정치적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동안 과도한 소비 문화 때문에 젊은 층들이 이 사회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며 "이제 젊은 층과 더불어 일반 시민들도 지식인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헌영 교수는 "현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표출될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이전처럼 독재와 탄압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제 이 사회의 성숙도로 봐서는 독재에도 한계가 온 것 같다"며 "세계적 추세에 맞춰 향후 그 어떤 정부이든 독재 정치는 펼칠 수 없을 것이며 국민들의 의사표현은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김한성 교수는 "사회의 양심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이 남보다 먼저 문제의식을 느끼고 비판을 하는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며 "선언서든 기자회견이든 원인규명이 되고 처방이 나올 때까지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건 정부와 대통령의 각성"이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임기 내내 갈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계각층의 시국선언과 함께 현정권에 대한 국정쇄신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청와대의 행보는 묘연하기만 하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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