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종로6가 신진시장

동대문 인근 신진시장에서는 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재봉틀을 돌리는 풍경이 주로 연출된다. 원단을 구입해 의류, 이불 등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곳 시장엔 길게는 수십년, 짧게는 수년 이곳에서 종사해온 노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이곳도 상황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주변 식당들도 손님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옷감을 정리하고 있던 원단 가게 주인이 나지막하게 입을 연다.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져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네요. 오늘은 몇 뭉치나 팔릴까 걱정이네요. 화곡동의 박 사장한테 밀린 대금도 결제해 줘야 하는데, 돈은 또 어떻게 마련할지…. 이 장사를 시작한지 17년째지만 올해 같은 불황은 처음이네요. 작년의 절반도 팔리지 않아요.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반품은 안해주는 대신 원단을 싸게 팔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그래도 경기를 덜 탔거든요. 그런데 이제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네요."

워낙 경기가 없다보니 소매상인들도 올 들어서는 대량 주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물건이 괜찮으면 낱장도 추가주문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이 조차 드물어요. 가게 문 연지 두 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파장 분위기죠. 몇몇 운 좋은 가게만 장사 잘 되고 나머지 가게들은 경기 침체 속에서 더욱 힘들어지고 있어요."
인접한 가게 주인은 원단도 마음놓고 못구한다고 하소연한다.

"전에는 한 두 절씩 마음놓고 원단을 구입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빠져나가는 물량만큼 끊어서 주문하고 있어요. 주문량이 줄어든 것도 그렇지만 부도 업체가 적지 않아 입금을 확인한 후 물건을 넘겨주죠. 불황이 상인간 신뢰를 깨고 있는 셈입니다."



종업원 월급도 주기 빠듯하다는 그. 자신 월급도 이미 한 달여 밀렸다고 한다.
"직원 2명 월급을 주려면 하루 500장 정도는 나가줘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200장도 채 안나가니…. 내 월급부터 한 달 밀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재봉틀을 20년 넘게 밟았다는 한 작업장 주인은 어떻게든 그 명맥을 유지시키기 위해 안간 힘을 쏟고 있다.

"도매시장이 문을 여는 밤 10시경까지 매장으로 물건을 나르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장이라도 더 팔려면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죠. 물건을 갖다 준 뒤에야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 벌 당 5000원인데, 먹고살려면 우리 공장에서 하루 40벌은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청바지, 숙녀복, 아동복 등 다양한 품목을 생산해내요. 중년 여성 윗도리가 전문인데 여름엔 주로 남방, 겨울엔 점퍼를 만듭니다."



주인은 최근 중국의 값싼 의류들이 밀려오면서 일감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큰 의류공장들이 임금이 싼 중국이나 동남아로 빠져나가면서 봉제공장은 소규모 영세화됐어요. 최소한 필요한 인원만 남기고 미싱을 돌리는 거죠. 또 중국의 값싼 의류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면서 일감이 떨어졌습니다. 이렇다보니 수입과 근무시간도 일정하지 않아요. 정부가 의류제조업을 사양산업으로 내몰면서 의류수입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져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형편이 어렵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섬유, 의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해요. 공장형 아파트와 같은 형태로 영세사업장을 양성화하고 덤핑을 규제해야 해요. 어쨌든 그저 마음놓고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인근 봉제공장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 문제`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원단을 옮기다 말고 담배를 피우던 한 상인은 공장에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얘기한다.

"봉제공장을 비롯한 생산직 라인의 여성들은 임금체불과 고용 불안정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아요.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준수되는지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겠나요."

경기침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혼수전문 가게도 대형마트의 `횡포` 때문에 작년 하반기에 비해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작년만 해도 오후 2~3시 정도에는 손님이 제법 있었으나 올 들어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어요. 손님이 오더라도 전에는 혼수용 한복을 2벌 이상 주문했으나 요즘은 1벌만 사거나 아예 빌리기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단 가게 등과 연계돼 있는 주변 식당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여기에도 불황의 그늘은 비켜가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방천시장 먹거리 상인들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이 때문에 신진시장 먹거리 상인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심화되고 있다. 시장 골목을 찾는 손님이 없으니 매출이 줄고 자연히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알아주는 소비자도 없다. 원자재 가격 때문에 요리하기도 겁이 난다는 한 식당 사장은 식료품 가격 폭등에서부터 불만을 토로한다.

"중국산 들깨 가격이 많이 올라 지난 봄까지 5000원이던 참기름 한 병이 지금은 7000원씩 해요. 물론 도매점에서도 이것도 원가 오른 만큼 올린게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몇십 프로씩 올리면 도대체 어떡하자는 것인지…. 원가 상승분만큼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끊길 것 같아 덜 남기더라도 최대한 가격을 덜 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손님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요즘은 점심시간에도 손님들이 눈에 띄지 않아요. 예전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찾았는데 이젠 다들 도시락 싸들고 다닌다고 하네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점심을 먹으러 나온 근로자들이 많았죠. 점심때 작업장 밖으로 밥 먹으러 나오던 근로자들이 없어져 시장 전체가 썰렁하네요. 경제사정이 어려우니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재래시장 사람들한테 먼저 타격이 오는 것 같네요."



한 실비집 주인은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한다.
"장사도 장사지만, 부도내는 소매 상인들 때문에 타격이 커요. 올 들어서만 벌써 여섯군데에서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제 저녁 회식은커녕 점심까지 굶으며 일하는 경우도 많아요. 원단가게 업주들도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손님이 없다고 하고, 자연히 식당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식당찾기를 꺼리고 있는 거죠. 원단 가게들이 잘 돼야 우리 장사도 잘되는 것인데 외환위기 때보다 요즘 손님이 더 없어 집세 주기도 어렵습니다. 최근들어 주변의 소규모 공장들에서 잔업이나 특근이 없어지니 시장 손님까지 끊겨 주말에는 아예 점포 문을 닫아야 합니다.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돼 최소한 집세는 걱정 없이 냈으면 하네요."

시민들이 주머니를 닫으면서 몇 안되는 인근 주점이나 다방 등 유흥업소 역시 자주 휴업을 하거나 종업원을 줄인다고 한다. 폐업하는 곳도 늘어나. 식당을 찾은 한 업소 사장은 며칠째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작년 초와 비교하면 매출이 3분의 2 이상 줄어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기도 어렵지요. 이 때문에 주변에는 폐업하는 업소가 늘고 있고, 종업원을 줄이거나 주말에 영업하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전반적으로 쇠락해가고 있는 신진시장. 상인들은 그저 경기 되살아나기만을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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