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동대문 문구·완구 도매종합시장

동대문에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특별한 시장이 하나 있다. `동대문 문구·완구 도매종합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이 시장 골목은 인적이 드물어 얼핏 시장인지 주택가인지 분간이 안간다. 대로변 골목이지만,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대문 인근 거리는 시민들로 북적거리지만, 이곳 골목은 잔인하리만큼 엄숙하고 조용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애들이 컴퓨터 게임 하지 장난감 가지고 놀겠어요?"



시장 입구에서 얼마 안되는 거리에 일명 `비비탄` 장전이 가능한 소총류 무기류가 선을 보이고 있다. 20년 전 당시 국민학생들에게 돌풍을 일으켰던 이 무기류는 거듭 진화해 군대의 신식 무기를 연상시킨다.

"잘못 맞으면 피범벅 되죠. 허허. 그런데 요즘 누가 이런 거 가지고 놉니까. 초등학교 가보면 한 반, 아니 한 학년에 한 두 명 가지고 놀까 말까 하는 수준이죠. 십수년 전에는 많이들 가지고 놀았는데 인터넷도 발달하고 피시방도 생기고 하더니 이런 장난감 총 뿐 아니라 장난감 자체가 안 팔리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장난감을 팔았다는 가게 주인은 한 때 유행했던 `레고`를 꺼내들며 "그나마 이게 가게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말끝에 한숨이 묻어난다.
"레고는 아직까지 잘 팔려요. 어린 아이들이 많이 가지고 놀고 부모들도 일부러 사주는 경우가 많아요. 이거 만들고 부수고 치우고 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닌데 아이들이 알아서 치우고 하니까 부모로서는 큰 불편은 없어요. 또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애들이 컴퓨터 게임하고 놀 `짠 밥`도 아니고 하니…. 더구나 어린애들 지능 개발에도 좋다고 하잖아요. 이거 다 큰 어른들이 끼워 맞추고 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지금 한번 해봐요. 애들보다 못할걸요. 머리 아파서 만들기도 귀찮아집니다."



건너편 가게에는 어린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손바닥만한 자동차 등의 장난감이 진을 치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어린 아이들이 이 거리를 드나들며 장난감을 손에 집으면 몇 개는 `덤`으로 끼워준다고 한다. 

"왜 이렇게 끼워 주냐고? 다들 자식 같고 해서 말이지. 없는 돈 꼬박꼬박 모아서, 혹은 용돈 모아서 이리로 오는 거 아니겠어. 사내애들이 겁도 없이 여기까지 와서 장난감을 사가. 어디 사냐고 물어보면 성북구에서 지하철 타고 여기까지 왔대."

그러나 그건 예외적인 일이고 나머지는 부모들과 동행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엄마들은 애들 심정 몰라. 아무리 사달라고 졸라도 비싸다고 안 사줘. 가격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 애가 포기할 것 같아? 혼자 돈을 모으든 명절에 용돈을 받든 간에 어떻게든 그 물건을 사러 다시 온다니까. 그래야 직성이 풀리거든. 애들이 다 그래."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다는 물놀이용품 가게 아저씨는 여름 한철 장사라며 다소 들 뜬 분위기다.
"여름철에 휴가나 여행가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요. 강이나 바다에서 신나게 놀려면 세트로 사야 하거든요. 배, 튜브, 미니 텐트 등을 한꺼번에 사면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사는 것보다 절반은 싸다고 봐야죠. 다만 들고 가기가 불편해서 찾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큰 가방 하나면 다 해결돼요. 어차피 여행지 가서 사야 하고, 놀고 나서 바로 버리는 게 아니고 다시 들고 와야 하는데 그럴 거면 미리 사들고 가는 게 낫죠."

남녀 수영복도 눈에 띈다.
"명품 수영복은 없지만 어린애들이나 아저씨, 아줌마들 입을 만한 것들은 많습니다. 젊은애들이야 이런 데서 안 사입을 테고…. 이런 데서 비키니 같은 것은 안 다루니 말이죠. 그나저나 올 여름에는 비가 적게 와야 할텐데…."  



과거에는 인터넷 게임 대신 오프라인 게임이 흥했다. 그 대표적인 게임이 `돈 놓고 돈 먹는다`는 `부르마블`이다. 어린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이지만 아이의 부모들이 이 게임을 금기시하는 경향도 있는, 논란의 대상이 된 게임이기도 하다. 기자 역시 이 게임을 통해 어린 시절 `부동산 투기`의 실체를 경험한 바 있다.

"참 희한한 게임이죠. 어린 아이들에게 악랄하게 돈 버는 방법과 관련해 조기 교육 시켜주는 게임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깁니다. 특히 어린 시절 향수에 젖은 어른들도 이 게임을 많이 찾아요. 게임판 위에 진짜 돈 놓고 도박하면 재밌대나 어쨌대나…. 보통 술 마시고 친구들끼리 많이 즐긴다고 합디다. 이 게임은 태생부터 어른들을 위해 기획된 것 같아요."  

게임 가게 아저씨의 나름 이 게임에 대한 분석이다.
부르마블 이외에도 다른 게임기들이 있지만 단연 부르마블이 눈에 띄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의 속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임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부동산 투기의 묘한 짜릿함이 여전히 아이들을 유혹하는 모양이다. 



꽤 학구적인 곳도 눈에 띈다. `학림 문구사` 는 이곳에서 꽤 전통 있는 가게다. 가게 주인은 그러나 장사가 안된다며 한숨만 쉰다.
"학기초나 방학이 끝낼 때쯤 해서 사람들이 좀 찾죠. 그 이외에는 손님이 없어요. 다들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대형서점에서 용품을 구입하니 도매 가격으로 팔더라도 쳐다보지도 않아요. 애들이 경제가 뭔지 알겠나요. 부모가 용돈 주면 대형 문구점에서 덥석덥석 집어서 아무 생각 없이 살뿐이죠. 그래서 이곳은 대학생들이나 주부들이 주로 찾아요. 가끔 고등학생들이 찾기는 하지만 몇몇 단골 이외에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듭니다."

주인 아저씨는 인터넷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이 사업도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요즘은 대개 워드로 작업을 하잖아요. 특히 대학생들은 워드로 쳐서 교수한테 메일로 보내고…. 메일로 안보내더라도 A4지에 작성해서 내니까 공책이나 수첩, 두꺼운 연습장 같은 것은 거의 사용할 일이 없어요. 요즘 대학생들은 수업 들을때 노트북으로 메모한다는 소리도 있더구만…."

주인 아저씨는 동대문과 청계천 인근 영세상인들의 경제적 궁핍과 관련해 정부에 쓴 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인터넷이 들어오고 물건들이 가치를 많이 잃고 있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 어떤 대통령 한 명의 잘못이 아니에요. 시대가 이렇게 변하고 있으니…. 어쨌거나 이 정부가 아날로그 세대의 장사꾼들 문제를 좀 해결해줬으면 싶네요. 그나저나 요즘 정부 문제가 참 많아요. 이런 말도 조심하고, 행동 조심해야지. 국가가 혼자 알아서 돌아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밑에 사람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하기 때문에 큰일이 터지는 거지. 대통령이 시장 시절 자기 임기 끝나서 가버린 이후 이곳 상인들이 피해를 많이 봤어요. 청계천 쪽도 마찬가지에요.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내놨어야하는데 말이에요."



겉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으로 치장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거리이지만, 이처럼 동대문 문구·완구 도매종합시장은 마치 시대를 잘 못 만나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외면 받는 아날로그 시장의 전형의 보여주고 있다. 대안은 쉽게 제시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시장 모양이 `레고화`되는 특수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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