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 공안정국 본격화 논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인적쇄신을 위한 신호탄`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공안통치를 강화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논란이 커지는 이유다.



천성관 내정자는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불린다.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확정된 일명 영남위원회 사건 및 강정구 교수 국보법 기소 사건, 원정화 간첩사건 등에 관여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PD 수첩사건, 용산 참사 사건 수사 등 매우 민감한 현안들을 다뤄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 기대를 충족했다는 점이 검찰총장 내정의 주 요인으로 분석된다.

`제 식구 챙기기 오해?` 

현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인사에서 고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사들이 중용된다고 해서 이른바 `고소영`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졌으나, 천 후보자는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천 후보는 충청도 출신에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청와대에서 천 검사장의 내정 사실을 발표하면서 충청 출신임을 강조했는데, 천 내정자의 발탁을 정당화시키는 중요한 명분이 됐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당초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권재진 서울고검장은 대구 출신인데다 기수도 20기로 높아 인적 쇄신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천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가깝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 정부의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천신일 회장은 천씨 종친회의 회장을 맡고 있고, 천성관 내정자는 부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천 내정자가 지난해 말 서울 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될 때도 법조계에서는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당시에도 천 회장이 힘을 썼다는 말이 있었다.
또한 천 내정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당초 검찰총장 후보 하마평에 전혀 오르내리지 않았던 그가 총장에 내정되자 주변에서 "할렐루야"라는 기도문이 흘러 나왔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천 내정자는 보수성향의 새문안교회에서 성가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검찰내 기독교 신도 모임인 `기독신우회`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신우회 창립예배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 지휘한 홍만표 대검수사기획관을 비롯, 다수의 검사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을 두고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 시절의 반면 교사로 삼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우리사회가 진보와 보수, 이해 당사자간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의 권력 기관에 대해 독립성 보장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해 당사자간 갈등을 조율하지 못해 집권기간 동안 논쟁과 담론은 많았지만 제도화시키는 데는 실패했고, 결국 참여정부의 실패를 불렀다는 시각이 있다. 이런 점에서 천 내정자는 향후 검찰의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로 검찰에 대한 국민의 개혁 요구를 희석하면서 공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검찰총장 내정 이후 첫 기자간담회는 그 좋은 본보기라는 지적이다. 이날 천 내정자는 유독 `법 질서`를 강조했다. 
"공공의 안녕이 유지돼야 인권도 보장된다. 기본적으로 검찰 임무는 법질서를 확립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법질서 확립 못지 않게 인권보장이나 국민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런 일을 잘하는 게 우리 본연의 임무가 아닌가."
`인권보다 공안을 우선시 한다는 시각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전시라면 모를까 공공의 안녕이 인권보다 더 중시된 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도둑이나 강도가 날뛰면 인권이 잘 보장되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중수부 폐지론에 대해선 "부정부패를 다스리는 부서는 어딘가 있어야 한다"고 중수부 존치에 무게를 실었다. 천 내정자는 "검찰 본연의 임무 중 하나가 부정부패를 다스리는 것이고 그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는 어딘가 있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에 두든가 대검찰청에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는데 잘 검토해서 좋은 결론이 나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천 내정자는 서울지검 수사 중 논란이 된 용산참사와 PD수첩 이메일 공개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지금 재판 중이라 제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 적절하지 않다"며 "재판에서 그대로 되면 총장 내정자가 압력을 넣었다 할 수도 있고 다르게 나오면 잘못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공권력 강화 통한 국정 주도권` 노림수

야당과 시민사회는 천성관 내정자가 신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면 한마디로 공권력 강화를 통한 국정 주도권 확보로 귀결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 4당 공동위 소속 김희철(민주당), 이정희(민주노동당), 유원일(창조한국당), 조승수(진보신당) 의원 등이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은 PD수첩 사건과 용산참사 등을 수사하면서 충실한 `MB 맨`으로 자리잡은 자"라며 "그 보상으로 검찰총장에 임명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갖은 꼼수로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킨 데 이어,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기록을 은닉함으로써 재판을 파행으로 몰아갔다"며 "이 모든 것이 천성관 내정자의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자를 검찰총장에 임명한다는 것은 정권이 용산 참사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이들은 "6월 들어 쇄도하는 시국선언에서 최우선순위 국정쇄신 과제로 등장하는 용산 참사 해결에 대한 답이 결국 `공안통치`에 몰두하겠다는 선언"이라며 "국정쇄신 요구에 공안검찰을, 용산참사 해결 요구에 용산검찰을 들이미는 정권을 강력 규탄한다. 대통령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내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도 25일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의 임명이 부적절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PD수첩 발표 때 범죄 혐의와 거리가 먼 작가의 사적 이메일을 공개해 인권을 침해하고, 법원의 용산참사 사건 수사기록 공개 결정을 이행하지 않은 서울중앙지검의 지휘 책임자인 천 내정자는 총장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어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공안적 시각으로 시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도록 검찰을 진두지휘한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면서 김경한 법무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 내정자 문제로 특히 시끄러운 곳은 용산 참사 현장이다. 현장의 문정현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과 관련해 "국정기조의 전면적 전환을 촉구하는 국민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한 오만하고 독단적인 인사"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문 신부는 "국정쇄신은 커녕 공안정치, 최측근 인사 등 기존의 국정 운영을 오히려 공고히 하는 인사들로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매우 실망스러운 인사"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신부는 또 "용산참사와 MBC PD수첩 등 최근 편파수사, 정치적 수사 등의 논란이 된 사건들을 지휘했다"며 "불법성 논란을 야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문 신부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며 공안 정국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공안 검사라고 불리는 인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강압적 공안 통치를 강행하겠다는 것을 사실상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아울러 "용산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멀쩡한 사람 간첩 만들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현실"이라며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범국민적 저항과 마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용산참사 범대위 박래군 집행위원장은 "천성관 검찰총장 지명을 취소하라"며 "이번 지명은 국정쇄신과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염원을 짓밟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임채진 총장이 물러남으로써 신임 총장을 지명할 상황이 발생했고 이 일을 계기로 `국정쇄신과 국민과의 소통`,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적 바램이 들불처럼 일어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검찰총장 자리에 법질서만을 강조하는 공안전문가를 앉히겠다는 것은 국민의 국정쇄신 바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천 지명자는 PD수첩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이메일들을 공개하여 인권을 짓밟아버리고, 편파적인 용산참사 사건 수사와 그 후 수사기록 비공개로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권으로부터도 비판받았던 서울중앙지검의 책임자"라며 "이런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히겠다는 것은 검찰의 반성과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바램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을 두고 각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기조 쇄신과는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현 정부의 인사 논란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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