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성북구 장위동 장계시장

성북구 장위동 장계시장을 찾았다. 광운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장계시장은 간판이 없는 자그마한 골목시장이다. 흔하디 흔한 노점은 찾아볼 수 없다. 점포만 마주본 채 줄을 잇고 있다. 골목에는 세평 남짓 콧구멍 만한 점포들이 줄지어 서있고 상인들은 무더운 날씨를 피해 그늘진 점포 속에서 열을 식히고 있다. 장계시장 역시 재래시장 특화사업과는 동떨어져 있다. 훗날 재개발 사업만은 피해야할 숙원이다.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날씨는 푹푹 찌니 죽을 맛이네요. 보시다시피 에어컨 달 형편도 안된다우. 문 열고 하는 장사라 에어컨이 있더라도 바람 쐴 형편도 안되고 전기세 낼 형편도 안되지요. 비라도 오면 좋겠지만 비 오는 날엔 장사가 안되니 여름 내내 불쾌지수를 달고 살죠. 그렇다고 손님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손님들의 깎아달라고 하는 그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주뼛주뼛 선답니다."

반찬가게 주인의 넋두리다. 주인 아주머니는 젊은 주부들이 대형 마트에서 반찬거리를 사는 경향이 강해 종종 들르는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들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 실제 단골  아주머니들과 서로 음식을 교환해 `비교 분석`까지 해서 음식의 맛을 끊임없이 재창출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들은 중요한 손님이고 유일한 `밥줄`이다.

"젊은 주부들은 어차피 대형 마트만 찾고 남겨진 어른들끼리라도 입맛을 맞춰 봐야죠. 음식이 좀 짭짤하죠. 옛날에 하도 못살아서 반찬에 손 덜 가게 하려고 내던 맛…."

주인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자하니 뷔페 음식점의 짜고 단 음식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주부들도 종종 이 집을 찾는다. 일부러 대형 마트까지 움직이기를 불편해하는 몇몇 젊은 주부들도 이곳 가게를 꾸준히 애용해주는 후견인이다.
 
인근의 족발가게 주인은 하루종일 만들어 놓은 족발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전문 족발가게가 아니면 족발을 사먹지 않는 의식이 팽배해 있는 탓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몇 개 못 판다고 하소연한다. 이 골목에서 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상호가 `족발`인 족발가게 내부에는 음식을 먹을 공간이 없다. 사가는 손님은 있어도 즉석에서 사먹는 손님은 없다는 얘기다. 애초 거리에서 팔기만 했다는 전언이다.



"이곳의 대부분 가게는 안에서 손님을 받지 않아요. 사가서 드시라는 얘기죠. 그래서 주부들이 주로 이곳 시장을 찾아요. 술 손님은 거의 없죠. 가끔 돈은 없고 족발은 먹고 싶은 학생들이 여기 시장까지 와서 술안주로 족발을 사갑니다. 족발가게 가서 먹으면 술값까지 합해 세배로 계산해야 되잖아요. 인근 자취생들이 종종 찾아서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배달은 안되느냐고 묻곤 하는데 하기사 가게 비워도 앞집에서 지켜주니 앞으로 배달에 대해서도 고려해보려 합니다. 자전거 한대만 있으면 되니 말이죠."

그러나 대학생들이 방학을 하면 그나마 있던 손님도 끊겨 울상을 짓게 된다고 한다.

"학기초에 학생들이 가장 많죠. 신학기가 되면 지금보다 매상이 두 배로 오른다고 봐야죠. 학교에서, 자취방에서 선후배들끼리 모여 족발을 뜯는 모습이 상상 갑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신학기는 여전히 우리 먹거리 장사치들의 대목기간이에요. 물론 명절 만한 대목이 있기는 하겠는가 만은 솔직히 명절도 예전 같지 않죠. 대형 마트는 계속 생기고… 언제까지 재래시장들이 견뎌나갈지 의문이네요."

생필품 가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생필품은 일반 소비자들이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해보세요. 생필품의 경우 쓰던 물건 계속 쓰잖아요. 휴지, 면도기, 칫솔 등을 제외하면 팔리는 게 거의 없어요. 물가가 치솟으면서 그 불똥을 맞는 건 우리들이에요.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손님들 대부분이 허리띠 졸라맨 서민들이거든요. 수건이나 수저, 칫솔 등 몇 번이고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고집하지는 않아요." 

상대적으로 대형 마트는 장사가 잘되는 것 같다며 자괴감에 빠져든다.

"대형 마트는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거리더라고요. 저도 시장에 없는 물건 사러 가는 일이 종종 있어요. 소비자들이 이것 저것 고르는 거 보면 한숨이 나오죠. 어차피 거긴 잘사는 사람들이 애용하니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재래시장은 다릅니다. 생필품을 비롯해 의류, 잡화 등은 거의 팔리지 않아요. 여기 와서는 다들 먹는 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의류가게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보통 중국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서 생산비용이 뛰면서 제품 공급도 지난해보다 어려워졌어요. 매출도 지난해보다 50% 넘게 줄었다고 봐야죠. 나이든 아주머니들만 종종 들르지 지갑 잘 여는 젊은 사람들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어요. 아주머니들 가끔 와도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고요. 옷만 구겨놓고 나가는 경우가 많죠."

시장 구석구석, 몇 안되는 식당들도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어진지 오래다. 최근 손님이 크게 줄어 초저녁에 문을 닫고 들어가는 식당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각종 재료비가 너무 올라서 음식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시장 상인들이나 종종 찾지, 이전까지 오던 손님들 발걸음도 끊겨서 이제는 장사를 접어야할지 몰라요. IMF때보다 더 힘드네요."

지난달까지 3000원 하던 콩나물국밥이 4000원으로, 4000원하던 뼈다귀 해장국이 4500원으로 올랐다.



"그래도 술값은 여전해요. 막걸리는 2000원, 소주는 3000원 받지요. 시장 밖으로 나가서 먹으면 막걸리도 3000원씩 받는데 원래 그렇게 받아야 해요. 막걸리 팔아봤자 남는 거 얼마 없어요. 손님들이 찾으니까 두는 거지…."

이 곳에서 20여 년 장사를 했다는 순대국밥 가게 주인 아저씨는 연일 단골 손님들이 자주 찾아서 가격을 마구 올릴 수 없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단골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적정수준으로 밥값을 올렸다고 한다.

"300원만 올렸어요. 재료비 오른 것에 비하면 좀 더 올려야 하는데 장사 계속 하려면 적당히 손해봐야해요. 시장 밖 일반 식당들과 경쟁하려면 가격을 더 올려서도 안되죠. 가격 때문에 일부러 시장까지 와서 밥 먹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물론 맛도 중요하죠. 요즘 웰빙이다  뭐다 해서 이상한 조미료 섞어서 맛도 요상하게 내는 음식점들 많은데 그런 것들에 질린 사람들이 결국 시장 음식을 찾아요. 먹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죠. 손님들도 결국 초심으로 돌아온다고 봐야하나…."



경기 한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 상인들에게 주머니를 열지 않는 손님들은 결코 녹록치 않은 상대다. 재래시장 특유의 역동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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