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우계열사 인수하거나 추진한 기업들 어려움 겪어

10여 년 전 몰락한 대우의 `저주`가 재계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8년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체제에 들어간 직후 해체된 옛 대우계열사를 인수하거나 인수를 추진한 기업들이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사들인 대우건설은 3년만에 되팔기로 결정됐다. 또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섰으나 불발에 그치는 등 후유증을 앓는 사태가 줄을 잇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6년 6조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사운을 걸고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국내 최대 건설업체인 대우건설을 사들였다. 여세를 몰아 지난해 대한통운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대형 매물을 인수하기 위해 끌어들인 막대한 빚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면서 대우건설을 3년만에 되팔기로 결정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인 18개 금융기관에서 인수자금 3조5000억원을 빌렸다. 그리고 3년 뒤 주당 3만15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제시했다.
대우건설 주가가 기준가격을 웃돌면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난해 금융위기로 대우건설 주가는 한때 6000원대로 떨어졌고 지난 7월 22일 오후 2시 기준 1만3200원으로 옵션 행사가격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풋백옵션을 행사하면 금호아시아나는 당장 4조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이러한 금융비용 부담으로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매각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재무적 투자자 보유 지분(39.6%) 매각, 경영권(지분 50%+1주) 매각, 재무적 투자자와 금호아시아나 보유 지분(72.1%) 전량 매각 등이다.
이 중 세 번째 안은 규모가 너무 커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 첫 번째 안으로는 매각 대금이 2조원에도 못 미쳐 4조원에 달하는 풋백옵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현실적으로는 지분 50%와 1주를 합쳐 경영권을 매각하는 두 번째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채권단도 이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서 지난 1월엔 한화그룹이 6조3000억원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키로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체결한 양해각서의 내용을 이행하지 못해 인수에 실패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0월 대우조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자산 매각과 외자 유치를 통해 인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해 자금 여건이 악화되면서 잔금 분납 등 인수 조건을 완화해 줄 것을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한화그룹은 채권단 지분의 60%만 우선 매입하고, 나머지 40%는 4∼5년에 걸쳐 인수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산업은행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가로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로부터 이행보증금 3150억원도 몰취당했다. 최근에 이를 돌려받기 위한 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GM대우, 뉴GM 소속 새출발 한숨 돌려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던 미국의 GM(제너럴모터스)도 지난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근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1700억달러 부채를 갖고 있는 GM은 `굿(Good)GM`과 `배드(Bad)GM`으로 나눠 쓸 만한 자산은 `굿 GM`으로 넘기고 쓰레기 자산은 `배드 GM`에 떠안겨 청산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미국 정부는 `굿 GM`에 500억달러를 투입해 지분 72.5%를 가진 새 주인이 되면서 뉴GM으로 새출발한다. 일단 GM대우는 뉴GM에 소속돼 살아남게 되어 한숨을 돌린 상태다.
하지만 GM대우에 대한 산업은행의 유동성 지원 문제는 양측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줄다리기만 계속하고 있다.
산은은 올해 초 GM대우가 1조원 지원을 요청한 데 대해 자체 생존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러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산은은 GM대우나 협상파트너인 GM아태본부 측에서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산은 측 요구 가운데 가장 큰 줄기는 뉴GM이 GM대우를 확실한 전략적 거점지로 육성한다는 명시적인 보장이다. GM대우가 향후 소형차 생산기지로서 역할을 어떻게 맡게 될지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에 GM 측은 "GM대우가 글로벌 경·소형차 개발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추상적인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등 신기술 차량 개발ㆍ생산 거점 요구도 마찬가지다. GM대우가 수년 내에 국내 공장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산은은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산은은 GM대우 경영 독립성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GM대우에 한국인 임원을 늘리거나 이사회 결의사항을 확대하는 등 좀 더 독립적인 경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양측 간 자금지원 협상이 최소한 8월 말까지는 평행선을 유지할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뉴GM이 진용을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GM대우가 당장 유동성 위기에 처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을 인수해 그동안 대우의 매물 중 가장 알짜배기 인수사례로 평가됐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미국 중소형 건설장비업체 밥캣을 49억달러에 인수했다. 두산그룹의 밥캣 인수는 한국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사상 최대라는 점에서 그동안 화제가 됐다.
하지만 무리한 은행 차입과 지난해부터 계속된 금융위기로 두산은 유동성 문제로 고민을 해왔다. 두산그룹은 두산DST, 삼화왕관(사업부문), SRS코리아(버거킹, KFC) 등 3개 계열사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등을 7800억원 선에 매각해 밥캣 인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있는 상태다.

대우일렉 주인 못찾아 조각나 팔리는 신세 전락

한때 `탱크`라는 이름으로 삼성, LG전자와 함께 3대 가전회사로 이름을 날린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해 조각조각 나뉘어 팔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 6월 4개 사업부가 인수자를 선정하고 매각이 마무리됐다.
가장 큰 관심사였던 영상(TV)사업을 대우일렉에서 일해온 120여 명의 직원이 직접 설립한 `대우디스플레이`가 인수하기로 했다. 대우디스플레이는 컨소시엄 형태로 대우 영상사업부가 주축이 돼 일부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소기 사업부는 경기도 용인에서 청소기 건강기기 등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에이스전자`가 인수자로 선정됐다. 가정용 소형 모터(EM) 사업부는 광주광역시 하남공단에 있는 중견 모터 제조업체인 `하남전기`가 인수에 나서 막바지 협상 중이다.
에어컨 사업부 인수자는 귀뚜라미그룹으로 결정됐다. 보일러 업계 선두기업인 귀뚜라미는 지난 2003년과 2006년에도 센추리 아산공장과 범양냉방을 각각 인수해 냉방공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에어컨 사업부 인력은 이미 귀뚜라미로 본사를 옮겨 근무 중이다.
지난 2003년 대우버스를 인수한 영안모자도 극심한 노사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우버스 사무직 노조는 사측의 부산공장 이전과 인력감원 계획에 반발해 지난해 11월 3일부터 지난 4월 26일까지 175일간 파업했다. 현장직 노조도 지난 3월 3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사측도 이에 맞서 지난 4월 9일 부산 전포·금사동 공장과 울산 울주군 공장에 대해 직장폐쇄 조치를 단행하는 등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구 대우정밀(현 S&T대우)의 자동차 부품 일부를 인수한 S&T그룹은 GM대우가 성장하면서 잠시 승승장구했지만 GM의 몰락과 함께 주가가 폭락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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