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9월 그리고 새해계획

9월. 겨울이 지나고, 기다려 마지않던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이제는 그 여름마저 다 가고 어느새 다가온 가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야 말로 쏜살같은 시간이다. 해가 지고나면 쌀쌀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불어온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추워서 외출할 엄두가 안 나고 이불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귤을 까먹는 것이 소소한 행복인 계절이 돌아온다. 슬슬 여름옷들을 정리하면서 올해의 시작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2009년의 시작을 맞이하며 와글와글 저마다의 기대를 쏟아내는 텔레비전과, 그 앞에 앉아 브라운관을 통해 보이는 저 많은 인파에 혀를 내두르고는 있지만 어쨌거나 그들의 표정과 들뜬 목소리에 전염이라도 된 듯 약간은 상기된 기분으로 2009년 1월 1일 00시를 기다리고 있는 나. 시간이 가는 것, 또 오는 것에 감흥이 없는 나머지 지금이 2007년인지 2009년인지도 헷갈려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전국의 사람들이 내뿜는 날숨에 섞인 기대와 들뜸이 공기 중으로 모여 자신이 들이쉬는 들숨에서도 평상시와 다름을 인지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2009년 1월 1일의 아침은 또 어땠는가. 1월 1일의 첫해를 보려고 바다로 갔었다.

첫 해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꽁꽁 얼어 고통마저 느껴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추위에 옹크리고 있었다. 겨울의 아침 해는 어찌나 수줍음이 많던지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만 할 뿐 뜸을 들였다. 마침내 떠오는 그 황금빛 얼굴에 아침 일찍 일어나 이 추운 곳에서 쪼그려 앉아 있느라 언 발가락이나 빨갛게 물든 코 끝 등등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벅차 오르는 그 기분 역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들숨과 날숨으로 공유했으리라.

그 때쯤 다들 `2009년에는 꼭…`으로 시작되는 문장을 하나씩 혹은 그 이상 품는다. 흔한 것이 `2009년에는 담배를 끊겠다`라든가. `살을 빼겠다` 등. 나는 올해 목표를 터무니없고 황당한 것까지 포함해서 50개 정도 적어뒀다.

`2009년에 꼭 해봐야 할 일 list`. 성적을 이만큼 올리겠다는 건설적인 것부터 영화 보면서 눈물 흘려 보기 같이 약간은 황당한 것들까지 나름의 기준으로 채워진 목록이다.

그리고 달성한 것에는 체크를 하고 날짜를 적어뒀는데, 체크되어있는 날짜는 대부분 1~4월이다. 처음엔 이 페이스라면 금방 다 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었는데 점점 시들해 지다가 이제는 그다지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2008년에는 신입대학생으로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처음 만난 선배와 동기들이랑 어울리느라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독서를 좋아하는 편인 나였지만 연말에 친구의 독후감 과제 때문에 걸려온 SOS전화를 통해 한 해 동안 내가 읽고 싶어 읽은 책이 한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의 `2009년에 꼭 해봐야 할 일 list`에는 한 달에 적어도 책 3권 이상 읽는 것도 포함이 되었다. 수수하게 그 총 36권을 목표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이제 50여 권에 이르렀다. 올해가 아직 남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내 스스로도 뿌듯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결과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면, "나 새해 계획으로 세웠던 책 읽기 목표 정량을 달성하고도 스무권 정도 더 읽었어!" "아, 그래?"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미적지근하고 또 미적지근한 반응. 그렇지만 간혹 덧붙이는 말이, "근데 무슨 새해 계획?"

새해 계획이라는 말은 9월의 지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마치 한 여름에 오리털 파카를 걸친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

새해계획이라는 것은 어쩌면 한 해 전체를 바라보고 세우는 계획이라기보다는 새해의 시작, 그때에 뭔가 시작을 기념하며 어쩌면 오래 가지 못할 계획으로 부푼 기대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새해 계획`의 어감 자체도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새해, 새해. 그렇지만 새해 계획도 `계획`이니까, `새해`의 들뜸에 삼켜져버리면 안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는 처음과 끝만 있었다. 새해계획과 연말의 반성. 이 둘의 간격이 한 시간, 한 달이 아니기에 조금 어색하더라도 지금쯤 `새해`라는 어감의 이질감에 대해서는 눈 꼭 감고 그 계획에 대한 반성과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2009년 새해 계획은 잘 지키고 계신지?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며칠, 몇 달 뿐인 계획이 되지 않으려면 2010년에 새로운 새해계획을 보다 치밀하게 짜겠다는 결심보다 2009년 1월에 세운, 나름대로 공들인 그 새해계획의 허점을 분석하고 또 리모델링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연례행사가 아닌 진정한 새해계획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오늘 그 때의 계획을 다시 회고해 보심이 어떠실지.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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