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용산참사 8개월, 전국철거민연합회 남경남 의장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8개월이 됐다. 이런 가운데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들은 서울 순천향대병원을 빠져나와 명동성당으로 이동했다. 7개월 넘게 유가족들과 함께 한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 박래군·이종회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 3명은 지난 5일 밤 명동성당으로 잦아들었다.
유가족 또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4층에 있던 상황실과 거처를 용산 남일당 건물로 옮겼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은 순천향대병원 영안실에 보관중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병원비 등의 문제로 지난 6월부터 상황실을 옮길 계획이었다"며 "순천향대병원을 벗어난 현장 투쟁 강화 차원에서 계획한 일"이라고 밝혔다.
<위클리서울>은 지난호 용산범대위 박래군 공동집행위원장에 이어 이번호에는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 남경남 의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남경남 의장은 "용산참사와 같이 철거민이 방치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에게 있다"며 "국가가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투쟁은 어떤 식으로든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재개발 문제에는 국가가 이권에 늘 개입돼 있었다"며 "철거용역이 개발현장에서 그렇게 날뛰는 것도 정부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사주하는 시행자들도 전부 이권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산 재개발과 관련해 남 의장은 "용산 주민 대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투자해서 영업했고 자신이 투자한 금액의 4분의 1정도만 보상받는 실정"이라며 "그래서 이분들은 빚을 내야지 평행이동 할 수 있다.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그런데 이분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니까, 상가를 임대해달라, 영업하게 해달라, 상가를 지을 때까지 포장마차라도 좋으니 자리 좀 제공해달라, 라는 것이었다"며 "비단 용산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철거민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바라고 투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남 의장은 "주거의 개념이란 가정을 꾸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공간도 되지만, 그 속에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노동을 위해 편히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노동을 위해서,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주거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남경남 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남 의장은 91년부터 세입자 대책위를 꾸렸다. 94년에는 전철연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원인과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 제가 30대 중반일 때다. 용인수지 1지구에서 집값이 엄청 뛰어올랐다. 전·월세도 폭등했다. 월세가 `따따불`로 뛰어올라서 감당이 안됐다. 사람들이 이주할 수도, 이주할 곳도 없었다.
이때 저는 용인수지 1지구 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당국에게는 막연하게 요구했다. 당시 임시 주거하고 있는 가운데 다행히 MBC, 한겨레 등 진보적인 언론에서 실태를 반영·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적정선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인근지역의 철거민들이 우리지역에 찾아와서, 우리 투쟁이 성공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비하면 재래식 투쟁 방식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정속에서 여타 조직들과 연대를 모색하면서 전철연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 전철연에 대해 그동안 논란이 많았다. 전철연 간부들이 빨갱이라느니, 호화주택에 산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무성했다. 최근에는 전철연 회원이 건설사 조합원에게 `돈을 뜯어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는데. 
▲ 저는 이 운동을 하면서 돈을 못 벌었다. 다행히 2007년부터 월 30만원씩 지원해줬다. 올해 들어 50만원씩 주어지고 있다. 저는 그 50만원으로 한 달 동안 생활한다.
돈이 없어 계속 지방으로 내려가다 보니 안성까지 내려갔다. 안성에 있는 집이 150평 정도 되지만, 호화주택이 아니다. 흔히 귀농한 사람들이 가축을 키우거나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땅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내가 순대국밥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구한 집이다.
그것을 호화주택이라고 표현했다. 경찰은 수배 과정에서 제가 호화주택에 살고 있고, 철거민들로부터 대가성 돈을 받았다는 얘기까지 일부 언론에 흘렸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기사는 이미 나갔다.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정 보도를 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저나 전철연이 이중적이지 않는가, 라는 시각이 상당 부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참 불편하다. 그렇게 악선전하는 것에 대해 저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제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최근 실형을 선고받은 회원과 관련해서도 재판부의 부당한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투쟁을 준비중이다. 그 회원 분은 용산 5가에서 집을 뺏기고, 5년이 넘도록 텐트 하나에 의지하면서 생활했다. 5년 동안 금전적 피해 등의 보상으로 5000만원을 조합으로부터 받았다. 사태는 그렇게 해결됐고 조합과도 합의를 봤다. 합의한 서류도 있다. 이미 종결된 사태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전철연이 함께 투쟁했다는 이유로 `대리투쟁`으로 엮고 있다. 공동으로 돈을 갈취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태와 관련한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 현재 용산4구역 투쟁으로 인해 수배중이다. 용산참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 용산참사가 터지기 6개월 전, 용산의 핵심 임원들이 저한테 문의를 해왔다. 철거 용역들한테 맞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전철연 쪽에서는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언 등 장·단점을 얘기해줬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오라고 해서 가서 보니까, 화염병을 비롯해 만반의 준비를 했더라. 만류하지 못할 만큼 너무나 많은 준비를 해놨더라. 제가 말리더라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용산참사의 경우에도 당시 철거민 희생자들을 말리지 못한 책임이 저한테 주어진 상황이다.

- 과거 철거민 관련 사건들과 용산참사는 어떤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하나.
▲ 1월 19일, 철거민들은 남일당 빌딩으로 올라갔다. 철탑을 세웠다. 그런데 과거에 이렇게 철탑을 세우더라도 경찰이 하루도 안돼서 공격하는 없었다. 철탑 세워놓고 협상을 통해서 정리가 되곤 했는데….
물론 오산 수천동과 같은 경우는 세우는 도중 공격을 했지만 용산처럼 특공대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용산의 경우는 24시간도 안돼서 공격을 했다. 그때 경찰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경찰과 철거민은 절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더군다나 정권이 현재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기존 정권과 너무나 다르다. 군사정권도 이렇게 8개월씩 끌지 않았다. 8개월씩 놔둔다고 하는 것은 중도실용주의 서민 정책이 사기라는 것을 입증해준 셈이 됐다. 용산 사태 처리하는 것 보면 분명한 사기다.  

-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용산 주민 대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투자해서 영업한다, 그런데 자신이 투자한 금액의 4분의 1정도만 보상받는다. 이분들은 빚을 내야지 평행이동 할 수 있다. 누가 반발하지 않겠나.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분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니까 상가를 임대해달라, 영업하게 해달라, 상가를 지을 때까지 포장마차라도 좋으니 자리 좀 제공해달라, 라는 것이었다. 용산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철거민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바라고 투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안 해준다. 만약 용산에 이것을 해주면 다른데도 해줘야한다, 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이분들을 무시한다. 다른 곳도 당연히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 국민들은 여전히 철거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 같다.
▲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서 집 하나 마련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만큼 주거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이 재개발 정책이 어떻게 흘러가고, 향후 자신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가져다주는지 관심이 없다. 결국 자신이 당해봐야 재개발 정책의 폐해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철거민들도 자신들이 철거민이 될 줄 몰랐었다.

- 예전보다는 철거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도가 좋아졌다고 봐야하나.
▲ 제가 91년도에 이 운동을 시작하고, 용역들한테 맞고 기절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이 왜 이래야 되는가,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인가, 라는 부분을 상당히 고민했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철거민 문제는 여전하다.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오죽하면 이주 합의보고 이사를 가더라도, 또 그 지역에서 재개발 정책이 시행돼 당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런 사태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재개발 사태에 직면했을 경우, 일반 국민들은 건설업자들이 돈을 주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데, 엄청난 착각이다. 몇 년 살고 나면, 그들이 던진 달콤한 사탕물은 다 말라버리고 쓴 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없는 서민들 그렇게 속이기 때문에 이 철거민 운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정부는 왜 막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 이권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철거용역이 개발현장에서 그렇게 날뛰는 것도 정부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사주하는 시행자들도 전부 이권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권에 대해 국가가 앞장서서 극대 이윤을 보장해주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주거의 권리, 생계의 권리가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된다하더라도 그들의 이윤 속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결국 없는 서민들이 주머니 털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충당한다. 서민들은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것이다. 이 착취의 구조를 깨기 위해 국민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 현재 우리사회는 주거에 대한 인식이 부재해 있는 상태다. 끝으로, 사람에게 있어 주거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가.
▲ 사람은 노동을 통해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노동을 하려면 편안한 주거공간이 요구된다. 주거의 개념이란 가정을 꾸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공간도 되지만, 그 속에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노동을 위해 편히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주거의 공간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명백해진다.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노동자의 노동이 중요하듯이, 노동자들이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강조하는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처럼 노동자들의 주거권은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의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지금 이 시대는 수난의 시대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제도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자본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마당에 집까지 뺏기면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 같은가. 현 정부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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