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추석 연휴가 유난히 짧게 느껴진 올해. 추석 당일 오랜만에 뵙는 친척 분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면 다음 날은 대학교다 뭐다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는 나이가 들고 뿔뿔이 흩어져 몸은 멀어지더라도 연락도 자주하고 지금처럼 가까운 사이로 지내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하였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고 정신 없이 지낸 새내기 시절은 바빠 못 챙기고 2학년이 돼서는 또 내 받은 것 후배들에게 돌려주느라 신경 못쓰고, 이래저래 이제야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후 5시. 제법 가을 기분을 내는 공기의 온도에 재킷을 하나 더 걸치고 친구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다. 엄마는 또 어딜 가냐며 눈을 곱게 흘기며 웃으셨다. 오랜만에 집에 왔으면 집에 좀 붙어 있으라는 말과 함께. 나는 혀를 날름 내밀며 히히 하고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니 엄마도 이해해 주실 거다. 아마도….

"악!! 신영아!!"
"악!! 이게 뭐야!!!!!"

서로를 알아보고 먼발치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느끼는 기분을 친구들도 함께 느끼고 있으리라. 교복을 입은 채 앳되게 깔깔대던 친구가 이제는 아가씨처럼 차려입고 화장까지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제 본 듯 익숙하면서도 뭔가 조금 간질간질한 기분….



그래서인지 우리의 첫인사는 우리의 차림과 어울리는 `어머 얘∼오랜만이다, 호호호`가 아닌, 야생마처럼 왈가닥인 여고생들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서로의 눈 화장이나 원피스, 하이힐 등을 손가락질 해가며 웃음을 담뿍 담은 얼굴로 꺅꺅거리는….

고등학교 때도 지각대장이었던 한 친구는 이날도 조금 늦었다. 커피숍에서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방학 후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교실에서 깔깔대며 서로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그런 쉬는 시간 같은 느낌. 그리 멀리 살고 있지 않은 친구도, 아주 멀리 살고 있던 친구도 사실 연락하며 지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왜 잊고 살았던 건지 모르겠다.

누구의 첫 연애얘기를 듣고, 누구의 지금 남자친구 얘기를 듣고, 누구의 해외여행 이야기를 듣고, 누구의 원어수업에서의 고초를 듣고….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

자리를 옮겨 약간은 격앙된 느낌으로 술 한 잔 하고 누군가의 제안으로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가기로 했다. 저녁 9시. 추석 연휴인데다 정규수업은 없을 테니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의 혈중 알콜농도가 음주단속기에 훅 불어 훈방조치를 능히 받아낼 수 있을 수치는 아니기에 선생님들이 학교에 계신다 한들 뵙기 조금 난감한 점도 있으니 다음에 멀쩡할 때 다시 찾아뵙기로 했다. 그냥 이날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것이다.

학교로 향하는 골목길이 새로운 감회로 다가왔다.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소박하게 김밥이나 한 줄 먹고는 어제도 했던 얘기지만 다시 와르르 쏟아내며 깔깔대다 터무니없게 외출시간이 길어졌음을 깨닫고 뛰어 들어가던 골목길. 그 중간에 있던 팬시점이나 조그만 마트도 반가웠다.

우리는 마치 2년 전으로 돌아간 듯 하면서도 또 그때로부터 10년은 지난 것 같은 기분으로 우리 눈길이 닿는 곳마다 배어 있는 이야기들을 토해냈다. 그때 네가 여기서 그랬었지, 나 저기서 그랬었잖아….

그렇게 깔깔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너무도 익숙한 교문이 눈에 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학생 두 명이 입에 뭔가를 물고 살금살금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 발걸음에서 언뜻 불안해 보이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발견하고 우리들도 덩달아 소리 죽여 키득대며 웃었다.

운동장은 썰렁했다. 밝혀진 자율학습실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새삼 반가워 들어가 보고 싶은 맘이 간절했으나 이제 곧 수능시험을 앞두고 예민해져 있을 고3 후배들에게 괜히 방해가 될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도 운동장 한 편의 벤치도 조금씩 바뀌고 예뻐졌다. 벤치만 있던 곳에 정자가 하나 새로이 들어서고 못보던 시설들도 몇 개 눈에 띄었다. 우리들은 꼭 졸업하고 나면 이런 게 생긴다며 툴툴댔지만 눈에 섞인 애정만은 숨기지 못했다. 전날 가득 차올랐던 달은 이날은 운동장에서 철없이 폴짝대는 우리를 비췄다.

"어 별똥별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별똥별. 너무 신기해서 소원을 빌 생각도 하지 못했다.

"또 어디서 누가 지셨나∼."

친구의 할아버지 같은 발언에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옛날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나누다 시간이 늦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망아지처럼 날뛰다가 다시 차분한 대학생으로 돌아왔지만 들뜬 기분의 여운이 남았다. 하루 종일 오죽 떠들었으면 목이 다 칼칼했다.

좀 전의 모습은 내가 아닌 양 과묵하게 앉아 브라운관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한복을 입은 아나운서들이 한가위 잘 보내셨냐며 명절증후군을 이겨내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배로운 일인가. 이 시간이면 친구들도 다들 집에 돌아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냥 막연히 나의 느낌을 친구들도 함께 하고 있을 듯한 기분.

다음 날 서울로 돌아왔다. 나도 친구들도, 다시 떨어져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만들어 놓은 나름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고 지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할 거라고 믿고 나도 목표한 바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만약 별똥별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나중에 우리가 각자 원하는 모습이 되어 다시 만나도 그날처럼 깔깔거리면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참 즐거웠어. 잘 자고 잘 지내 친구들아.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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