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인수 나선 효성그룹, 나도는 말, 말, 말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려는 격이다.`
하이닉스 인수에 효성그룹이 나선 것에 대해 재계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효성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왜 뛰어들려고 하는지, 왜 하이닉스인지가 핵심이다. 기존 사업과 이질적인 분야를 흡수해 어떤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수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관심사다.
장기적으로는 효성그룹의 후계구도를 미리 점쳐볼 수 있다는 전망도 재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사업 다각화 위해 하이닉스 인수 나서

하이닉스반도체 주식관리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은 지난 22일 효성그룹이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단독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2주 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기업집단 가운데 지난해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29개 기업과 2007년과 2008년 모두 상호출자제한을 받은 기업집단 가운데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14개 기업 등 총 43곳을 대상으로 매각 안내문을 발송한 바 있다.
하지만 외환은행이 매각 안내문을 발송한 이후 물망에 올랐던 주요 그룹들이 인수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겨우 1개 그룹만 참여했다는 것은 하이닉스가 기업적인 매력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반도체 사업은 호황기 때는 수조원의 이익을 내지만, 반대로 불황기에는 수조원의 손실을 내는 구조다.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업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상징인 반도체 부문이 최근 몇 년간 부진에 허덕이던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이닉스 역시 오는 3분기 흑자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몇 년간 대규모의 손실을 봐왔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부담을 안고 효성그룹은 하이닉스 인수에 나섰을까. 일단 재계에서는 하이닉스 인수를 사업 다각화의 방안으로 풀이하고 있다. 효성의 기존 섬유와 화학 등 주력사업과 반도체 사업 간 시너지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결국 기존 사업 외에 새로운 업종을 찾던 중 `무게감` 있는 반도체 사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30위권 안팎인 재계순위가 단번에 10위권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이닉스의 매각 대상 지분은 총 주식의 28.07%로 지난 22일 종가기준으로 3조6500억원 가량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4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업황이 부침이 심하고 매년 2조~3조원대의 설비투자가 필요한 반도체의 산업 특성상 인수 후 하이닉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재무구조가 튼실해야 한다.
결국 증권업계에서는 자산규모 8조원대의 효성이 13조원대의 하이닉스를 인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들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효성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는 의미보다는, 관련 소재사업의 시장성 파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용 특수가스와 LCD용 필름 사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향후 반도체 시장성에 대한 세밀한 정보가 필요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효성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우선협상 자격을 갖추면 하이닉스반도체 실사 뿐만 아니라 반도체 시장에 대한 고급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같은 이야기는 하나의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섬유·화학 중심 효성 IT 통해 새로운 사업 창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효성그룹의 조석래 회장이 수천억원의 사업 때문에 수조원의 사업을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를 결심, 석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는 얘기가 재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 참여가 전적으로 조 회장의 결단이었다면, 그가 던진 승부수의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조 회장이지만, 74세의 고령이기 때문에 이제 세 아들에게 경영권 승계를 할 시점이 아니냐는 주변의 관측이 팽배한 가운데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계구도까지 점쳐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후계구도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조현준 효성 사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특히 장남인 조 사장이 인수 실무팀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 사장은 동생인 조현문 효성 부사장, 조현상 효성 전무 가운데 정보기술(IT) 관련 사업에 관심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성 내의 대표적인 IT기업인 효성ITX를 상장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도 조 사장이다. 반도체 관련업체 럭스맥스네트웍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조 사장 스스로도 섬유와 화학 중심의 효성그룹에서 IT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가 IT 사업의 핵심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 추진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며 "일부 기업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적자 메우는데 급급한 사례를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무적 투자자 구해 인수자금 마련해도 `첩첩산중`

효성그룹이 재무적 투자자를 구해 인수자금까지는 어떻게 마련한다 해도 `첩첩산중`이다. 인수 이후 M&A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주류다.
최근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잇따른 무리한 M&A로 유동성위기에 몰린 금호그룹의 사례 뿐 아니라, 하이닉스 자체가 승자의 저주를 나타내는 산 표본이다.
99년 현대는 LG로부터 반도체를 인수하는데 성공해 축가를 불렀다. 하지만 1년만에 D램 가격은 하락하고 LG반도체 인수에 따른 차입금 상환부담이 늘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결국 현대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 주인이 채권단으로 바뀌었다.
효성 한곳만 인수 의향을 밝혀 매각 흥행이 참패했음에도 불구,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일정대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다른 채권은행은 "효성의 능력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논의를 한 다음 다음 절차를 어떻게 할지 그때 정하겠다"고 밝혀 입장차를 드러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이익과 국가산업 경쟁력 차원의 이익이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2001년 출자전환을 통해 하이닉스 지분을 취득한 이후 현재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다소 값을 덜 쳐서 받더라도 하루빨리 손을 털고 싶어하는 상황이다. 이 주식을 처분하면 은행 재무제표도 훨씬 모양 좋게 된다.
하지만 하이닉스도 호황기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설비투자를 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부적당한 주인을 만나게 된다면 인수자와 하이닉스 모두 안좋아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지금처럼 채권단이 조금씩 지원하며 지내다 확실한 인수자를 찾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효성 관계자는 "하이닉스 인수가 갑자기 나온 이야기라 구체적으로나 공식적으로 아직 말할게 없다"고 밝혔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