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생일 그리고 케이크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내겐 더없이 특별한 날이지만 나는 이런 뜻 깊은 날이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늦게까지 침대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어제 밤부터 계속 잠을 깨우는 축하 문자 메시지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마신 생일주 때문인지 시계가 이미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건만 눈을 뜨기가 너무 힘겨웠다. 그때 우렁차게 울리는 나의 전화벨에 나는 눈도 채 뜨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파리### 외대점인데요. 어떤 남자분께서 박신영 고객님 앞으로 케이크를 주문하셨어요. 저희는 배달이 안 되어서, 직접 찾아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누군가 내게 케이크를 사줬단다. 누군지 아리송하지만 어쨌거나 케이크를 찾으러 가려고 비실비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가족 없이 맞이하는 첫 생일이라 조금 다운되리라고 예상했는데, 케이크가 잠을 깨워주는 생일이라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기분도 잠시, 생일이라지만 일어나서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고 청소를 하고 평상시와 전혀 다름없는 일련의 목차를 따라가면서 점차 덤덤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고향에 있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가족들에게 축하 인사를 듣고 평일이라면 학교에서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곤 하니 끊임없이 생일의 특별함을 상기하게 되는데 대조적인 일요일 자취방이라는 상황은 도무지 생일임을 실감할 수 없게 했다.
 
다행히 엄마의 걱정-딸이 혼자서 생일을 타지에서 맞이하니 얼마나 쓸쓸할까 등등-과는 거리가 좀 있는 기분이었다. 그저 조금도 특별할 게 없는 그런…?

제과점에서 쭈뼛대며 케이크를 찾았다. 생각보다 커다란 초콜릿 케이크였다.

"저기, 그런데 이걸 누가 주문한 건가요?"
"이름이나 이런 건 밝히지 않으셨어요."

"에, 그럼 뭐 인상착의나 그런 건요?"
"제가 그 타임 아르바이트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손님."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결국 나의 키다리 아저씨, 아니 케이크 아저씨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케이크 아저씨께서는 내게 케이크와 초를 주셨다지만, 생일 축하 노래는 불러 주시지 않으셨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커다란 케이크를 빵집에서 들고 나오면서도 생일을 실감하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다른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케이크를 사서 나오는 기분에 가까웠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점심때였다. 근처 사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케이크 먹으러 와 ㅋㅋㅋ`
`오 ㅇㅋ-오케이-`

곧 달려온 친구와 케이크를 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주인공답지 못한 자세로 심드렁하게 케이크에 그냥 포크를 들이댔다. 그러자 친구가 깜짝 놀라며 내 포크를 저지하여 케이크를 온전히 동그란 상태로 지켜내었다.

"야 노래는 들어야지."
"아…."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다. 친구가 제지하던 손을 치우며 개구진 표정을 짓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얼굴도 못!!! 생긴 게, 왜 태어났니~ "

장난기 다분한 축하노래가 끝나자 조금 민망하면서도 생일임이 실감이 났다. 문자나 전화통화로는 많은 사람이 축하를 전해왔지만 그래도 뭔가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하고 딱 실감이 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내 생일을 누군가가 축하해 준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케이크는 달콤했다. 사실 오늘이라는 날짜도, 케이크도 생일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기념하는 생일이라는 것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기억해 주고 또 축하해 주는 `관계`가 없다면 또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생일은 나라는 존재가 뿅 생겨난 것을 축하한다기 보다는 `우리` 속으로 내가 들어 올 수 있도록 존재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개념이다.

니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태어나서 축하하고, 니가 `우리 친구로서` 태어나서 축하하고…. 결국 기념이 되는 날짜나 혹은 그 외의 모든 의미라는 것은 관계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관계만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안생일(생일을 제외한 1년 364일)을 축하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케이크 아저씨가 누구인지는 미궁에 빠졌지만, 그 익명의 누군가와 나에게도 분명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케이크 아저씨가 누군지 모르는 나는 그 관계를 실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 앞에 앉아 케이크만 냠냠 먹고 있는 친구는 내 앞에서 축하노래를 직접 불러줌으로써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피부로 직접 느끼게 해주었기에 그녀에게 이렇게나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생일을 맞이해서, 나의 부모님께 `딸로서` 감사 드리고 또 `친구로서`, `선후배로서`, `제자로서`, `이웃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도 감사 드린다. 그리고 지금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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