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맑고 깨끗한 단풍잎처럼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저 맑고 깨끗한 단풍잎처럼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 승인 2009.11.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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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가을 따라 가는 인생

설악산에는 단풍이 절정이라고 한다. 화면에 가득 채워지는 고운 단풍이 나에게 손짓한다.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디쯤 온 것일까? 단풍으로 이름이 난 내장사에도 가을이 물들여져 있을까? 나도 모르게 성급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머뭇거리는 집사람을 재촉하여 내장사로 향하였다.


내장사. 국립공원으로서 가을의 대표적인 산이다. 잘 닦여진 국도를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멀리 보이는 다른 산들의 모습에선 가을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언뜻언뜻 보이는 고운 색깔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장사에 들어서니 도로에서와는 확 달라진 분위기다.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다. 동학혁명기념탑 부근에는 온통 가을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인지 주변의 단풍나무들도 서둘러 곱게 물들여져 있다.


절정에 이르지도 않은 가을을 보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오는 가을을 맞이하려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가는 계절을 따라 속절없이 지나가는 인생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일직선 위에서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움을 털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나이 따라 빨라지는 시간의 속도를 절감할 때의 허망함을 무엇으로 채운단 말인가? 붙잡고 싶고, 좀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은 모른 체하고 도망만 가고 있을 뿐.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난감하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내장사의 가을 빛깔에서 텅 빈 나의 가슴을 본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원망한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아쉬워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에 충실하여야 한다. 이 순간을 성실하고 알차게 채워 가는 것이 가는 가장 현명하다. 순간을 가득 채우는 것만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빨간 단풍 이파리를 바라보며 출발하던 때의 설렘을 떠올린다. 티라고는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던 순수한 열정으로 넘치던 시절이었다. 옹달샘처럼 맑았던 심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탁해졌을까?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맑고 깨끗하게 물들어 있는 단풍잎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밝은 햇살처럼 빛나고 싶다.


내장사의 가을을 보기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처음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리라. 욕심을 줄이고서 곱게 물든 단풍잎처럼 곱게 내 마음도 물들여지기를 기원해본다. 가을 따라 인생도 곱게 물들여지기를 기원한다.

가을 국화

노란 세상이다. 탐스러운 꽃송이가 마음을 잡는다. 어머니의 아늑한 품속 같다. 언제 저리도 곱게 피어났을까? 얼마나 고운 꿈만을 꾸었으면 저리도 환하고 밝게 웃고 있는 것일까? 푹 파묻히고 싶다. 세상의 모든 근심 털어놓고서 온 몸을 맡겨버리고 싶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노란 국화가 도로 양 옆에 나란히 피어 있다. 향이 얼마나 진한지 수많은 벌과 나비, 벌레들이 모여 파시를 이루고 있다. 향에 취해 꿀을 따느라 정신이 없다. 국화는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꽃에서 나를 본다. 국화 향 그윽한 가을이 가고 나면 속절없이 다가오는 것은 삭막한 겨울이다. 삭풍의 차가움에서 걸어온 나를 생각해본다. 이기심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지난날들이 아프게 다가온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발버둥을 쳤을까? 의문이 생긴다. 아등바등하면서 악바리처럼 살아온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지 회의가 생긴다. 짧은 인생이다. 눈 한번 깜빡이면 끝인 삶이다. 구름처럼 뿌리 없이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은 인생이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뻔뻔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국화에 모인 수많은 곤충들이 꿀을 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날개 소리가 분주하다 못해 요란스럽기까지 하다. 귀찮다고 쫓아낼 법도 한데, 꽃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다. 곤충들과 어우러진 꽃은 그래서 더욱 더 우뚝하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난다. 사물의 이면에는 반드시 깊숙하게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 가을 국화가 돋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화려한 색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포용할 줄 아는 국화의 넉넉한 마음 때문은 아닐까?




가을 국화가 아름다운 것은 곤충들에게 가진 것을 나눠주는 마음 때문이다. 아낌없이 나눠주는 꽃이기에 우뚝해 보이는 것이다. 저 꽃처럼 앞으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탬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은은한 향으로 다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참빗살나무의 고운 빛깔

어찌 저리도 고울 수가 있을까? 붉은 색으로 곱게 물든 빛깔이 가을 햇살에 영롱하게 빛난다. 티끌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선홍색 순수함이 마음을 잡는다. 이파리뿐만 아니라 열매도 같은 색깔이다.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워하면 저리도 붉게 타오를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고운 색깔의 주인공은 참빗살나무의 단풍이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온통 가을 색으로 치장하고 있다. 흠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이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열매마저도 빨간 색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가을이란 바로 저런 모습이어야 한다.


이곳은 순창군의 전라북도 산림박물관이다. 산림의 생태에서부터 민속자료 그리고 목기 등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현대화에 밀려서 잊혀져가는 우리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들 교육에 아주 유용한 곳이다.


세상을 감지하는 감각에는 오관이 있다. 고운 가을 색깔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각 덕분이다. 오관이란 시각을 비롯하여 촉각, 미각, 촉각, 청각을 말한다. 우주의 상태를 감지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오감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선홍의 색은 오감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시각으로 인식하게 되는 색깔은 이리 큰 감동을 줄 수가 없다. 나무의 선명한 가을 빛깔이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오감의 경지를 넘어서 심감(心感)의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론 감동으로 승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10감이란 5개의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보지 않고도 마음을 볼 수 있는 경지를 말함이요, 듣지 않고도 소리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손대지 않고 기쁨을 알고 맛보지 않고도 슬픔을 인식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참빗살나무의 가을 빛깔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마음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게 된다면 경이로움에 전율하게 된다. 가을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빛나고 있다.




구족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파도 되어 밀려드는 감동의 파고에 젖어들게 된다. 참빗살나무의 고운 빛깔을 통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가을이어서 고맙고 고운 빛깔로 물들여져서 있어서 감동하게 된다. 아! 가을이 정말로 아름답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군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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