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8 - 청계천 다리 여행 3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해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호에 이어 조선시대 도읍 한양을 가로질렀던 청계천을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복원된 청계천에 놓여 있는 22개의 다리와 중랑천과 만나 한강으로 흐르는 살곶이다리엔 우리의 역사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이번호에선 청계천의 참 맛을 맛볼 수 있는 하류에서 살곶이 다리까지를 살펴봅니다.




# 고산자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하류. 양쪽으로 수크령과 억새가 절정의 풍경을 자랑한다.



청계천의 진수를 만끽하려면 상류보다 하류가 상대적으로 더 좋다.

광화문 쪽 청계광장과 팔석담을 시작으로 하는 상류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고 광통교와 정조반차도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그만큼 운치는 떨어진다. 초기만 해도 `시멘트 연못`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방문객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 이 곳만 둘러보고 뜨는 경우가 많다.

공구상가와 세운상가, 동대문상가를 지나는 청계천 중류는 주위에 늘어선 상가지역을 둘러보는 재미와 함께 오간수교, 옥류천, 패션광장 등이 걷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청계천 시작점에서 이 곳까지 내려오는데는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도보여행을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청계천의 본격적인 `생태여행`은 오히려 여기가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청계천변 산책길





# 청계천 하류엔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빨래터`와 수양버들

오간수교에서 청계천 마지막 다리인 고산자교까지 이르는 길은 `수크령길`로 불리며 서울 시내의 산책길 명소로 선정될 정도였다. 해가 질 무렵 가을빛으로 불게 물드는 수크령과 억새의 풍경은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절로 부를 정도다.




# 청계천의 사계 중 가을 풍경은 가장 운치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오간수교와 다산교를 지나면 청계천 빨래터 복원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던 청계천의 과거 모습을 재현했는데 충남 천안에서 올라온 능수버들이 볼 만하다.




# 천안 수양버들과 빨래터


빨래터에서 동묘 쪽으로 걷다보면 유서깊은 영도교가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비운의 왕 단종이 부인인 정순왕후 송씨와 생이별을 하고 영월로 떠난 곳이라고 한다. 근처 낙산엔 송씨가 매일 올라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동망봉과 여생을 보냈다는 청룡사가 있다. 그래서인지 다리 양쪽으로 늘어선 전등 행렬이 비오는 날이면 유달리 더 처량해 보인다. 원래 있던 영도교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헐어다 석재로 썼다고 한다.




# 단종과 송씨가 생이별한 `영도교`



영도교 다음 다리는 황학교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의 이미지를 반영해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상으로 지금은 가까운 곳에 풍물시장이 있다. 황학교 밑으론 리듬벽천과 `소망의 벽`이 있는데 타일에 적힌 소망들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 인근 도깨비 시장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황학교`





# 시민들이 타일에 소망을 적어놓은 `소망의 벽`

무학대사와 김정호

비우당교는 조선 세종 때 청백리인 하정 류관 선생의 일화에서 이름을 따 왔다. 류관 선생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낙산 초가집에서 지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고 비를 피할 만큼 검소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 모양이 초가지붕을 상징이라도 하듯 둥글다.




# 조선조 청백리 류관 선생의 일화가 깃든 `비우당교`



왕십리 인근 청계9가에 있는 무학교는 조선 개국 당시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를 따라 이 곳을 다녀간데서 이름이 유래됐다.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엔 한여름 인기가 높은 터널분수와 청계고가도로의 존치교각이 있다.




# 무학교와 존치교각



유니세프 지정 `어린이 다리`로 지정된 두물다리는 청혼의 다리로도 불리며 최근 정비공사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 청혼의 다리로도 불리는 `두물다리`


청계천의 마지막 다리인 고산자교는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호를 따서 지었는데 인근 도로 이름도 `고산자로`다. 고산자교 밑으론 수크렁과 억새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버들습지가 조성돼 있다. 청둥오리, 왜가리, 민물 가마우지 등 다양한 새들과 잉어, 메기, 피라미 등이 살고 있어 `생태 교육 현장`으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다.




# 청계천 다리 중 가장 하류에 있는 `고산자교`

가장 긴 `살곶이 다리`

보통 청계천 코스의 끝을 고산자교로 표현하지만 실제 도보여행 코스는 더 이어져 있다. 고산자교 밑으론 자전거 진입이 가능해 동호회원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왕 나섰다면 청계천 문화관과 판자촌 복원 모형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말자.

지상 4층, 지하 2층 규모의 청계천 문화관엔 청계천의 역사를 담은 각종 미니어처와 영상 등이 갖춰져 있다. 전시회와 공연도 자주 열려 미리 일정을 파악하고 가면 1석2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곳이다.

청계천 문화관 앞 판자촌도 1970년대를 전후로 한 물건들이 전시돼 과거의 추억과 향수를 되살려 준다.





# 청계천 문화관과 판잣집





# 판잣집 뒷편으론 테마존이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 테마존엔 1970년대를 전후로 한 추억의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고산자교에서 살곶이 다리에 이르는 코스는 약 3km다.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는데다 생태계가 잘 복원돼 한낮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 요즘엔 붉게 물든 덩굴 잎새와 푸른 대나무 잎, 여기에 하얀 수크렁까지 어우러지며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운동하기 좋은 살곶이 공원을 지나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곳에 이르면 조선시대 가장 긴 다리였다는 살곶이 다리(사적 160호)를 만날 수 있다. 높이 1.2m 기둥을 네 줄로 세운 뒤 받침돌을 올리고 대청마루를 깔 듯 세줄의 판석을 빈틈없이 깔았는데 그 튼튼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돌 기둥엔 무수한 흠집을 새겨놓아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했다. 

살곶이 다리도 대원군이 경복궁을 수리할 때 석재를 가져다 써 원형 그대로 복구되지는 못했다. 다리 시작 부분만 원형이고 중간부터는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다.














# 조선시대 가장 긴 다리였다는 `살곶이 다리`

김승현 기자<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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