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식농성중 연행됐다 풀려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미디어법안 처리 과정을 위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법안 자체는 유효라고 판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에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4일부터 프레스센터를 등지고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향후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의 미디어법 재논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는 4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김형오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을 향해 미디어법 재논의를 시작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최 위원장은 헌재가 `미디어법 권한침해는 인정, 무효청구는 기각` 결정을 내린 지난달 29일 "우리들의 승리로 선언한다"고 밝히면서도 "한나라당이 원천무효된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헌재에 미디어법 무효 판결을 촉구하며 1만배를 진행한 바 있는 최 위원장은 "야당이 언론악법 무효를 구호로만 외치고, 정부 여당은 기정사실화해 현실화될 경우 앞으로 언론인과 국민들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며 "때문에 단식이란 비인간적 방식을 통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절박함을 호소했다.
최 위원장은 "구호, 주장만으로 이 국면을 넘어가려 해선 안된다"면서 "언론악법 원천무효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야당은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헌재가 아주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그러나 절차상 위법성을 헌재가 인정했고 원천무효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다시 하라는 의미에서 우리들의 승리로 선언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에 대해 재논의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다시 수렴해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위원장은 "이 시대를 사는 언론인으로서 언론악법을 막지 못하면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얘기라도 남기는 게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언론악법의 독소조항을 빼고 재논의 될 때까지 단식으로 부당성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단식을 벌이고 있던 최 위원장은 지난 9일 경찰에 연행됐다가 31시간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다음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헌법재판소가 법의 효력을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동시에 미디어법 처리 과정은 잘못됐다고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당황스럽다.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유행어가 생각난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으며, 독재자들에게 `무수한 위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법안 통과 선언만 하면 그만이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케 했다. 삼권분립을 지키지도 않았다. 의회주의도 파괴됐다. 따라서 이들이 정치적으로는 승리한 것이다. 법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사망 선고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미디어법 때문에 언론질서도 흔들릴 것이다.

- 헌재 판결의 쟁점은 신문법 표결 과정에서의 대리투표 여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논란, 국회의원 권리침해 여부 등이었다. 헌재는 대리투표의 위법성과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는 인정했는데….
▲  헌재 판결 전에도 국회의원 권리침해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은 확신했다. 국회의원에게 회의 안건이 배포돼야 하는데 국회의원 단말기에 신문법 관련 안건이 없었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도 확신했다. 하지만 대리투표와 관련해서는 명확하게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헌재가 대리투표의 위법성도 인정한 것이다.
헌재가 아주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절차상 위법성을 헌재가 인정했고 원천무효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다시 하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승리라고 선언한다.

- 미디어법의 효력을 인정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했나.
▲  헌재 판결이 나오기 전에 여러 설이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다만 헌재가 절충안을 내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했다. 신문법과 방송법이 서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두 법안 가운데 하나만 무효로 나와도 미디어법 효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헌재가 두 법안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권한쟁의심판을 인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절충안이 나와 버렸다. 법안 처리 과정은 위법인데 법률의 효력은 인정하는 말도 안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 미디어법 처리 당시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에 대해 부분 기각한 것의 의미를 어떻게 풀이하고 있나.
▲ 잘못된 것이어서 기각한 게 아니라 헌재가 판단하지 못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헌재가 가결 선포에 대해 기각한 것은 국회에서 처리하라고 국회에 공을 던진 것이다.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 헌재가 국회파행을 국가기관간 분쟁으로 보고 거리 두기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 이번 사건과 같은 국가기관간 권한쟁의심판에서의 헌재의 역할은 위헌법률심사에서 보다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헌재는 지금까지 국회에서의 날치기 같은 파행적 의사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간의 분쟁은 국가기관간의 분쟁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헌재는 국회의원 자체를 국가기관으로 보아서 이를 기관 분쟁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헌재가 국회의장과 국회의원간의 관계를 기관분쟁으로 봐왔다는 점은 헌재가 국회내부 절차를 정당하게 심사할 수 있음을 대변해주는 대목이이다. 문제는 헌재가 이런 막강한 권력을 정작 필요한 경우에 적절하게 쓰지 않고, 지금과 같이 헌재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 한나라당이 이 법안을 계속 밀어붙일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원천무효된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에 대해 재논의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다시 수렴해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아닐 경우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 현장에 오랫동안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  무엇보다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싸워왔다는 것이 가장 잘해온 것 같다. 현재 60%가 넘는 국민들이 헌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도 정권에 맞서 우리가 언론, 민주주의를 지키며 싸울 수 있을 유일한 동력은 국민들에게 있다.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문제라는 공감일 것이다. 전국에서 폭넓게 지지하고 참여해준 국민들의 소중한 성과다.

- 언론계의 분위기는 어떻게 평가하나.
▲언론사마다 저항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아직까지 언론사 안팎에서 심각하게 드러내놓고 탄압을 하지 않는데도 알아서 기는 경우가 있다.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거나 눈치보기를 하는 언론사, 언론인들을 보면 안타깝다. 동시에 같은 언론인으로서 부끄럽다.
앞으로 법안 투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지와 함께 하려면 각 언론사 내부에서도 보도와 관련한 내부 구성원들의 문제제기가 강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어려울 때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해서 단호히 해야한다고 본다.
언론인들도 자기 개인과 사내의 문제로 여기면 안된다. 국민에게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만약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언론인들이 이명박 정권이나 반민주세력 보다 더한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실수를 또다시 재현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미래일 수밖에 없다.

- 이번 헌재 결정으로 미디어 시장이 급변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이다. 방송법 시행령을 마련하고, 종편채널 심사위원회도 구성할 것 같다. 이후에 허가신청을 받고 심사를 통해 종편채널 사업자를 발표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힘들 것이다. 이 법안이 나온 이유는 보수언론에 방송을 주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법은 보편성이 있어야 하는데 미디어법은 이처럼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방송 광고 시장도 좋지 않다. 종편채널 사업자가 선정된 후에 부작용이 생길 공산이 크다. 방통위도 할 일이 많아져 골머리를 썩힐 것이다.

- 헌재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헌법재판소의 무책임과 비겁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겠다. 건강한 상식과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국민들이 신문법, 방송법이 명백하게 원천무효임을 판단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후안무치한 이명박 정권이 신문법, 방송법이 유효하다고 우기며 관련 사업을 강행해 앞으로 두고두고 법적인 논란과 함께 나라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 미디어법 파행이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  헌법재판소는 언론 관련법 법안 자체가 아닌 절차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렸든 우리 국민들의 의견이나 상식을 충분히 수용할수 있는 기관인지를 스스로 내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헌재가 그 정도의 권위와 신뢰를 갖는 기관인지에 이제는 회의적이다.
본질적으로 언론노조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를 많이들 묻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과 함께 언론, 민주주의의 문제를 의논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정치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지금처럼 너무나 쉽게 과거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지 않도록 토대를 만들고자 한다.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고통을 많이 받으면서 속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체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세력은 이제 국민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상승할 것으로 믿는다.

- 야당에 대한 요구사항은.
▲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헌법재판소의 모호한 결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국민여론을 충실하게 수렴해 당당하게 언론관련법의 재논의를 요구해야 한다. 또 이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소수 야당이지만 법적인 정당성과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한나라당이 이번 헌재 결정의 의미와 야당의 정당한 요구를 왜곡, 무시하고 일당독재의 길을 가려 한다면 야당 의원들이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걸고 투쟁에 나서 줄 것을 바란다.
언론사,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날치기 위법행위로 처리된 신문법, 방송법으로 얻게 될 사익에 취해 진실을 왜곡하는 조중동의 악랄한 선전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의 진정한 의미를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지속적으로 보도해야 할 것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명백한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것`이고 법의 유·무효에 대한 판결은 헌재가 회피했을 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이 법들은 당연히 국회에서 재논의 돼야 한다. 마치 헌재가 신문법, 방송법을 유효하다고 인정한 것처럼 보도되지 않도록 당부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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