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휴대폰 이야기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중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머니를 멋대로 이탈한 물체는 여지없이 아래를 향해 자유낙하 한다. 그 낙하의 순간이 내 눈에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졌다.

"참방∼!!"

휴대폰을 물에 빠뜨렸다. 어? 빠트렸네? 하고 쓱쓱 닦아 말리면 그만일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흉중에서 쫄깃해진 나의 심장은 사건 발생 후에도 잠시간 그 긴장을 풀지 못해 어정쩡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내 입에서는 조그마한 짐승의 비명과 같은 것이 새어나왔다 그 소리에 스스로 깨어나듯 역시 짐승과 같은 날램으로 물속에 퐁당 빠진 휴대폰을 구해내었다.

휴대폰은 마치 술에 취한 듯 보였다. 내 손에서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던 벗인지라 그가 그리 정신을 못 차림에 수리비를 떠올리기보다는 우선 눈에 보이는 그의 상태에 아득해져왔다.






내 휴대폰은 내 친구이기도 했다가 작업남이기도 했다가 안부를 묻는 옛 선생님이기도 했다가 부모님의 서툰 목소리이기도 했다. 구식에다 디자인이고 기능이고 내세울 거 하나 없긴 하지만 그간 정이 든 모양이다.

전원을 끄고 한나절을 쭉 말렸다. 지인들에게 내 사정을 알리고 연락 못 받는 점 양해를 부탁한다는 인터넷SMS를 보냈다. 액정화면이 깜깜한 휴대폰 상태 때문에 답장은 받을 수 없었다.

다음날 괜스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경쾌한 멜로디에 기대감이 한 층 커졌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다량의 문자메시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렇지만 내 핸드폰은 OK버튼과 통화 버튼이 먹통이었다. 메시지를 확인 할 수는 있으나 전화를 받을 수도, 문자메시지를 전송할 수도 없었다.

좌절하여 그냥 저냥 할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알아보니 토요일은 AS센터가 오전타임으로 업무를 마감한다고 했다. 일요일은 그나마도 열지 않고, 속절없이 월요일이 오기 전까진 바보가 된 폰과 함께 해야 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휴대폰의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앞서 내 폰이 벗과 같다고 했던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휴대폰은 벗이 아니었다. 아, 물론 다른 사람들이 휴대폰의 목소리를 빌어 내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주고, 또 감동하게 만든 일도 정말 꼽을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내가 응당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야 옳을 때에도 내 스스로 갖은 핑계를 생성해 내어 어느 무리에 끼어 시간을 보내게 만든 것도, 조금만 생각해 봐도 빤한 서로에게 소모적이고 생산성 없는 관계도 내 두 눈 가리어 아등바등 지속하게 만든 것도, 싫은 내색을 못하여 빠져나가지 못한 자리에 함께 하게 되는 것도, 내 벗이라는 이 요물의 힘이 컸다.

그뿐인가, 그러한 일들로 허스러진 내 아까운 시간과 정신력을 제하고도 매달 반갑지 않은 고지서에 대체 0이 몇 개인지 거듭거듭 세어보게 하는 것도 다 그의 공 없이는 불가한 것 아닌가.

과연 휴대폰을 벗이라 여기며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기를 기꺼워하지 않던 것이 옳았던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옳았던 것이라면 휴대폰이 바보가 된 지금 이렇게 후련하고 여유로울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감정도 판단도 없는 휴대폰에게 나의 지난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 같아 조금은 찝찝한 마음이 없잖아 있으나, 그래도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며 멀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물건을 통해 좋은 점을 취하고 나쁜 점을 배척할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하여 취하는 좋은 점 보다 과가 더 많다면, 응당 멀리 하고 사용함에 조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휴대폰은 마치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 없는 3일이란 굉장히 긴 시간일 지도 모른다. 하루에 주고받던 문자 메시지가 몇 통이며, 또 크게 건질 내용 없는 전화통화가 또 몇 시간이었나. 휴대폰 액정만 쳐다보는 시간만 계산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오롯하게 자유시간으로 내게 주어지니 해방감의 물결에서 멱을 감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을 때의 안절부절 못하는 심정과는 다른 후련함이었다.

월요일. 휴대폰 AS는 무상으로 이루어졌다. 돈 굳은 것 같은 기분에 기뻤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하게 빛나는 액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자의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3일간의 잠수를 통해서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좋은 벗을 위장한, 자상하고 세심한데다가 유능하기까지 한 이 친구를 예전만큼 신뢰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제는 안녕, 내 베프(베스트 프렌드)야 ㅋㅋ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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