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엔 나무 심고, 산엔 공장이…천지가 뒤집혔다!
논엔 나무 심고, 산엔 공장이…천지가 뒤집혔다!
  • 승인 2009.11.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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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벼랑 끝 몰린 농민들-1: 현장 르포 - 위기의 '김포평야'

"이젠 이 곳 주민들, 심지어는 농민들도 농사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5000년 역사의 한반도 쌀 농사가 시작됐다는 김포평야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오래 전 임금에게 올려졌다는 김포미의 명성도 자칫 사라질 위기다. 김포시 곳곳에 대형 아파트 단지와 공업 지구가 들어서면서 광활했던 논도 보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한 농민은 "김포시에서 50만 자족도시를 만든다는데 정말 딱 그만큼만 먹을 수 있는 쌀을 생산할 날이 머지 않았어"라고 자조 섞인 불만을 털어놨다.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농업에 대해 더 이상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쌀 추수를 끝내고 김장 배추 마무리 손질 작업이 한창인 김포 일대를 지난 10월 말 둘러봤다. 김포 전역은 이제 농민보다 노동자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으로 변해 있었다.


"땅값이 그렇게 올랐는데 땅 있는 사람들 중 누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겠어. 정말 농사짓고 싶은 사람들은 이 곳 땅 1000평 팔아 밑(지방)으로 내려가면 2만평 살 수 있어. 근데 그렇게 대규모로 지으려면 2억 주고 농기계 사야해. 그 돈이면 차라리 여기서 장사를 하지."

김포 토박이인 최병종(56) 씨는 김포시내에서도 4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양촌면 유현리에서 밭 4000평과 논 5000평을 경작하고 있다. 이 중 3000평씩은 모두 소작하는 처지다.

"솔직히 말해서 적자 나는 건 많지 않은데 수입이 전혀 없어. 왜 그러냐고? 우리 마을 중 20가구 정도가 농사를 짓는데 농기계는 10년도 더 된 옛날 거야. 이제 이 곳 농민들에겐 투자할 능력도, 그럴 마음도 별로 남아 있지 않지."

"김포평야·김포미는 옛날 얘기"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김포 일대는 광활한 논으로 가득한 말 그대로 `농촌` 이었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인 개발 열풍이 불면서 급속도로 도시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확정된 신도시 사업은 `투자`에 목 맨 외지인들이 몰려드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실제로 김포시 중심에서 유현리까지 이르는 도로 곳곳에선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웬만한 논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과연 이 곳이 김포평야의 일부였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저기 보이는 곳이 김포한강신도시 공사 지역이에요. 그나마 축소돼서 400만평이라고 합디다. 사실 저거 들어와도 땅 있는 사람들만 좋은 거죠. 원래 농사짓던 사람들이야 어디 땅값 같은 거 크게 생각했나요. 그런데 이젠 이 곳 사람들도 부동산에 물든지 오래에요. 돈 없는 농민들만 터전 뺏기고 고생하죠. 그나마 이젠 얼마 안 남았지만…."

터미널에서 만난 40대 택시기사도 농토를 줄이고 확장 일변도로 나가는 개발 사업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김포평야도 이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얘기"라고 말했다.

최 씨 역시 김포 민심이 변했다는 데 동감했다.

"예전엔 동네 입구에 도로를 내려고 마을 회의를 하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그래서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부 금싸라기 땅이 됐는데 어느 누가 `내 땅 쓰시오` 그러겠어. 한 마디로 무섭게 삭막해졌지."

"쫓겨난 꿩, 예전 논에서 운다"

김포시 전역엔 아직도 농민들이 6000가구, 약 1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더 이상 쌀 농사에 그렇게 신경 쓰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현지 농민들에 따르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쌀 값은 12만원에서 16만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이 지역 땅값은 각종 개발 사업과 부동산 열풍으로 그 사이 무려 20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땅 가진 농민들은 그거 팔아서 다른 것 하려고 하지, 누가 뼈 빠지게 농사 지으려고 하겠어. 그나마 소작 짓는 사람들은 농사 밖에 모르고, 나이도 있고 하니까 마땅히 다른 일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야. 내가 50대 후반인데 이 마을에서 가장 젊어. 내가 아는 한 김포 통틀어서도 40대 후반 친구가 막내지. 그리고 그나마 우리라도 농사 안 지으면 대신 해 줄 다른 사람도 없잖아."

농사를 지어 수입이 생기지 않으면 농민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 물어봤다.

"이미 이 곳은 농사에만 목 매는 지역이 아니야. 요즘 누가 농사만 짓고 살아? 우리 애 대학 마치는 데 많게는 한 해에 2000만원 넘게 들었어. 이거 충당하려면 농사말고 다른 일 안 하고는 불가능해."

실제로 최 씨는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그나마 생활을 유지한다고 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모두 자신이 경작한 것이라고 한다. 1만평 농사를 짓는 나름(?) 거대 농민은 틈만 나면 부동산 중개업소로 나간다. 근처에 공장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야간 경비` 업무도 기존 농민들에게 좋은 부업거리가 됐다. 최근엔 앞뒤가 오히려 바뀐 양상이란다.

"아마 김포 전체에서 농사 하나만으로 먹고사는 사람을 찾기는 이제 힘들 꺼야. 노인들이 소규모로 하고는 있지만 거의 자급자족 수준이지."

같은 마을에서 배추를 손질하고 있던 60대 할머니도 "그냥 우리 김장 담그고 자식들 나눠주고 그러면 끝나지. 그러다 몇 상자 남으면 시장에 내 보내고…"라고 말했다.

"개사료만도 못한 쌀값"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포의 평야 지대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50미터가 멀다 하고 공장이 곳곳에 들어섰고, 그 중간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거나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길 양쪽의 농가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조금 떨어진 곳엔 `신도시`라는 명목하에 수백만평의 논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산은 대부분 깎여서 공장이 들어섰지. 그리고 논 주인들은 벼는 안 심고 대신 나무를 심어. 저기 조경나무 보이지? 원래는 논이었는데 조금이라도 좋게 보이면 땅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으니까 조경회사에 세를 줬지. 그렇지 않은 곳도 소나무나 이런 걸 심어. 그러니 산에서 쫓겨난 꿩들이 저기로 내려왔어. 논에서 꿩이 울다니, 한마디로 천지가 뒤집어진 셈이지."

한 지역 농민에 따르면 신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바다흙을 퍼와 논에 매립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물론 양측 모두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벼가 자라는 곳에 소금기 있는 흙을 부으면 그걸로 농사는 끝이야. 그래도 회사는 흙을 버릴 수 있고, 논 주인은 돈 받으면서 매립할 수 있으니까 점점 늘고 있지. 그래도 정부와 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뭐, 두루미서식지도 개발에 밀리는 판인데…."



이 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은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주 손님층이었는데 요즘은 인근 공장 노동자들과 외지인들의 중간 쉬는 곳으로 변했다"며 "예전 농사짓던 사람들은 대부분 떠난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래도 남아있는 김포 농민들은 쌀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전농 관계자는 "개사료만도 못한 게 쌀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도적 대북지원을 통한 쌀 문제 해결이나 방송사와의 연계 사업을 고민 중인데 오히려 시가 너무 소극적"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쌀 직불금 문제는 공론화 된 이후 땅 주인이 받은 돈을 소작인들에게 주는 풍토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10년 후에나 희망 생길 것"

김포시 양촌면에서 그나마 아직 평야가 많이 남았다고 하는 학운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만 다닐 정도로 외진 곳이다. 마을 명칭에 `학`과 `구름`이 들어갈 정도로 들판 풍경이 아름다워 한 때 `전원주택` 유망 지역으로 꼽혔을 정도다.




하지만 조용하고 풍경 좋던 이 곳도 더 이상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영세 기업들이 중심이 된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장과 고철더미, 그리고 `보상`을 둘러싼 잡음으로 떠들썩한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농업보다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오히려 더 부각되는 요즘 풍경이었다.



최 씨는 "지금 농업은 희망이 없다. 하지만 10년 후엔 달라질 것"이라며 "지금 농사짓는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는 그 때가 되면 농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지 않겠나. 한 때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이 요즘 배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농업 정책을 정말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평야에서 생산된 `김포미`의 기원은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 하류지역 퇴적층에서 바닷 바람을 맞고 자라 기름지고 밥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김포평야와 김포미의 운명도 명성을 뒤로 한 채 `개발`의 광풍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논 위로 농업의 미래를 예고라도 하듯 가을 석양이 쓸쓸히 비추고 있었다. 한편에선 일을 끝마친 노동자들이 간이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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