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수능시험 치른 동생에게

11월 12일. 전국 수험생들이 칼날을 벼르며 기다려왔던 결전의 날이 도래했다. 결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어린 표정들이 못내 안쓰럽다.

나도 저 속에 있었는데…. 엊그제 같이 느껴지지만 벌써 내가 수능을 치른 지도 2년이 지났구나. 2살 터울인 동생이 지금쯤 시험지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귓바퀴 언저리에서 맴돌다 흩어졌다. 실수는 하지 않을지, 컨디션은 나쁘지 않을지, 너무 긴장하거나 하진 않을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누나인 내가 이렇게 가슴 졸이는데 부모님은 지금 오죽하시겠는가. 어쩌면 책상에 앉아 결전을 벌이고 있을 그 아이보다 더 많이 긴장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칼날 같은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매번 수능 당일은 이다지도 추운지. 짧아진 해 때문에 벌써 어둑어둑하다.

어제 응원 차 했던 전화통화에서 `내일 누나에게 기쁨의 전화벨을 울려주지!`라던 동생 녀석이 여태껏 전화가 없다.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울리던 통화 연결음이 돌연 그쳤다.



"여보세요."

동생의 목소리였다. 힘이 하나도 없는….

"누나야. 어때?"
"뭐가?"
"기분이 어떠냐고."

차마 잘 쳤냐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렇게 물었다.

"몰라."
"에~모르는 게 어디 있어."

축 쳐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동생이 안쓰러워 괜히 밝게 대꾸했다. 동생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누나…끊을게."

동생은 내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핸드폰에서 통화 종료를 알리는 경쾌한 소리에 `응?`하는 내 목소리가 묻혔다. 42초라는 통화시간을 깜박거리다가 곧 어두워지는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잊은 채 찬바람 쌩쌩 부는 길 한복판에서 잠시 망연자실하게 서있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좀 우울해졌다.

지금 전국의 수험생들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족스럽게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는 수험생도 있을까. 없을 것 같진 않다. 극명하게 갈린 희비의 교차 속에서 야속하게도 동생을 떠밀어 제외시켜버린 가상의 `희`의 무리에게 괜히 화가 났다. 방향성도 없는 애매한 분노는 금세 사그라지고 대신 안타까움이 번져갔다.

마음이 아프다.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늦게 수능 공부를 시작한 동생이라서, 기특할 정도로 열심히 부진했던 지난날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했던 동생이라서, 그리고 `내 동생`이라서….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날들을 보상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안쓰럽고 안타깝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켠 다음 메신저에 접속했다. `딩동`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대화창이 열렸다. 동생이었다.

[동생: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대화창을 가득 채운 모음들이 뜻하는 바가 무언지, 또 대화창 너머 동생의 얼굴이 어떨지 알 것 같아서 무어라 대꾸해야 할 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냥 무턱대고 `괜찮아`, `수고했어`라고 말해주었다.

차마 채점을 해볼 수가 없다는 동생에게 채점은 내일하고 지금은 그냥 학생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무사히 끝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만끽하라고 얘기했다.

[나 : 그니까 걍 놀아라 ㅋㅋㅋㅋ 지금은 바야흐로 미친 듯 놀 때다!!!]
[동생 : ㅋㅋ]

동생의 `ㅋㅋ`가 웃는 모양으로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좀 풀렸길 바라며 과제를 시작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진도도 잘 안 나갔다.
`누가 보면 내가 수능 친 줄 알겠네.`

"딩동~"
[동생: 누나 ㅠㅠ. 나 외국어 엄청 떨어졌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은 채점을 한 모양이었다. 우는 소리를 하는 동생에게 힘내라는 말 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속상하고 안타까웠지만, 지금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바로 내 동생일 테니까.

수능은 이미 끝났고, 몇 시간 후면 13일이 되어버리겠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누나로서 남은 정시 원서 접수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요리조리 잘 알아보고 최대한 도움이 되어 주어야겠다.

동생아, 너무 속상해 하지 말구. 결과가 어떻든 누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마지막까지 버텨줘서 고마워. 그래도 이제 한 고비 넘겼으니까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남은 기간 동안 여유 가지고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준비해 보자.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암, 네가 누구 동생인데! ㅎㅎ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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