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금강 하구둑에서

"새들이 없어요."

집사람의 말에 시선이 강 쪽으로 향하였다. 금강은 넉넉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새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던 집사람이 몇 마리가 있다면서 가리킨다. 강가에 얼마 되지 않는 오리들이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웅포에서 강을 바라보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새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새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웅포는 익숙한 곳이 아니다. 물어 물어 찾아왔다. 새들의 모습을 보기 위하여 전주에서부터 찾아온 낯선 곳이다. 그러나 새들을 찾을 수 없으니 난감하다.

군산 철새 축제.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철새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다른 일이 있어서 방문할  수가 없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왔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 마음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늦었지만 찾은 이유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새들을 볼 수 없으니….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집사람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에 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었다. 새들이 사람들이 펼치는 축제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우겼었다. 새들이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라고 강권하였다. 축제라는 사람들의 잔치이지, 새들의 잔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웅포에서는 새들을 볼 수가 없었다.



여행에선 많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낯선 곳을 헤매는 것이다. 생소한 곳에서 헤매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이 넓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행운을 잡을 수도 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희열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새들을 찾아 나섰다. 금강을 중심으로 여기저기를 찾아 헤맸다. 새들이 결코 강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금강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도를 거쳐서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전라북도 군산이고 북쪽은 충청남도 서천이다.


새들이 분명 군산이나 서천 양쪽의 어느 곳에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뒤진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려 있는 부근에서는 새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금강 하구둑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하구둑은 군산과 서천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둑을 따라 세워져 있는 수문들이 열병하듯이 길손을 반긴다.



"새들이 있어요!" 소리에 멈췄다. 청둥오리들이 무리를 지어서 분주하다. 아마도 먹이 사냥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헤엄을 치고 있다. 마치 대형을 이루어 마스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단을 이뤄 한쪽으로 달려갔다가는 이내 방향을 돌리는 민첩함이 놀랍다.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은 있다고 하였다. 새들이 헤엄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들에게는 길이 아닌 곳이 없다. 가는 곳이 바로 길이 된다. 우리의 삶도 바로 저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길이 막혔을 때 우리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게 되면 막힌 곳에서도 새로운 길은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의지에 달려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앞선다면 있는 길도 막힌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새로운 길은 긍정적인 힘에서 나온다.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새들은 그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강물에는 그 어느 곳에도 길이 없다. 그러나 새들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길이 없지만,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나아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막혔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막히게 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게 되면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왜 진즉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새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데, 집사람이 말꼬리를 흐린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지나가고 있다. 낯선 곳을 헤매는 즐거움에 젖어서 시간 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점심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사람의 생각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점심을 해결할 곳을 찾았다.

장항에 있는 아귀탕 집으로 결정하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다. 싱싱한 아귀를 많이 넣어서 아주 맛있게 해주는 것으로 명성이 나 있다. 하구 둑에서 그 곳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장항읍으로 들어서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점심시간 무렵이어서인지 주차할 곳을 찾기가 어렵다. 주변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결국은 꽤 떨어져 있는 곳에서 간신히 주차장을 찾아냈다.

식당은 무척 붐볐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다. 그만큼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주문한 아귀탕이 나왔다. 밑반찬은 얼마 되지 않지만, 탕에 들어간 고기를 많다. 충분히 먹고 남을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다. 실속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맛 또한 아주 뛰어나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포만감을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나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렇게 충분히 먹었는데도 음식이 많이 남아 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친절하게도 남은 음식은 포장해준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거 돌 아니에요?" 포만감을 가지고 식당에서 나와 다시 군산 쪽으로 향하였다. 하구 둑 가까이 다가가는데, 집사람이 말했다. 바라보니 새들이다. 웅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들이 바다 쪽에 모여 앉아 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새들은 갯벌에 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새들이 돌처럼 보인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새들을 자세히 보기 위하여 다가갔다. 그러나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석축으로 방벽을 쌓아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다. 새들까지는 너무 멀었다. 새들도 알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둑을 넘나드는데 아무란 장애는 없다. 하구 둑이 강과 바다를 분명하게 갈라놓고 있지만, 새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있어서 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과 바다를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있다. 어떤 새는 느긋하게 햇볕을 즐기고 있고 어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 어는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이다. 좋은 것에 조건이나 이유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좋으면 그 곳이 바로 가장 좋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통해서 사람은 네모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각이 져 있게 되면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간에 자신이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모나지 않고 각이 져 있지 않다면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자신이나 남에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삶이 바로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금강 주변을 헤매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새들에게서 배운 것도 많았다. 가장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자유를 가져야 한다. 생각은 물론이고 행동까지도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저 새들처럼 살아가고 싶다.

<춘성(春城)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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