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12 - 새단장 중인 ‘장충단 공원’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난해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항일정신’의 상징이자 정치격변기의 중심지였으며 서울시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던 장충단 공원을 찾았습니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채 진행중인 새단장 작업이 끝나면 내년 봄 다시 문을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 `새단장` 공사로 장충단 공원의 산책로는 끊겨져 있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고 배호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중)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쉼터였던 ‘장충단 공원’이 꽁꽁 닫혔다. 당분간은 ‘안개 낀’ 공원의 모습과도 헤어져야 할 것 같다.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장충단 공원의 새단장 작업이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위로 철제 가림막이 둘러쳐진 주위론 ‘놀이터’를 잠시 잃어버린 노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윷놀이 등을 하며 초겨울 오후 도심의 냉기를 녹이고 있었다. 아마 다시 문을 여는 내년 늦봄까지는 이런 풍경이 어색하지 않을 듯 싶다.

‘국립서울현충원’의 효시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에 위치한 장충단 공원은 1900년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역사의 격변기마다 물줄기를 바꿔놓는 사건들이 이 곳에서 여러차례 일어나곤 했다.



# 장충단 공원 내 공사 현장 전경


겉보기엔 잘 정리된 공원 중 하나일 뿐이지만 실은 민족의 아픈 역사에서 시작된 곳이다. 고종은 1900년(광무 4) 조선시대 어영청의 분소인 남소영이 있던 자리에 을미사변 때 순직한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연대장 홍계훈 등 호위 장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단과 부속 건물 2채를 지었다. 자신의 부인인 명성왕후가 시해된 사건이기에 고종의 슬픔과 정성은 적지 않았으리라.

명성왕후를 소재로 최근 상영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선 명성황후 ‘민자영’과 호위무사 ‘무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무명의 모티브가 마지막까지 낭인들과 싸운 홍계훈 장군이라고 한다.

이처럼 장충단은 국립서울현충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명칭 또한 충성을 장려한다는 뜻이다. 이후부터 다른 사건들로 순국한 사람들의 위패도 함께 봉안되면서 자연스럽게 반일 정서가 강하게 깃든 하나의 상징으로 변했다. 당초 고종이 이 곳에 단을 만든 데엔 남산 기슭에서 세를 넓혀가던 일본인들의 기를 막으려는 의도로 있었다고 한다.







# `장충단 비`와 `장충단 터` 표지석



이후 해마다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지만 이를 일제가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일제는 1908년(융희 2)부터 제사를 폐지하고 1919년엔 일대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1932년엔 일제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를 장충단 동편(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의도적으로 짓기까지 했다.

‘정치 격변기’, 대규모 유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장충단공원안엔 전몰장병의 위패를 봉안하는 장충사가 생기면서 한동안 과거 위상을 이었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동작동에 국군묘지(현재의 국립서울현충원)가 생기면서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장충단 제단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고 지금은 순종의 친필인 ‘장충단’(獎忠壇)이라는 비석만 남아 있는데 현재 신라호텔 앞 영빈관이 들어서 있는 곳이라고 한다. 황제가 쓴 글씨는 ‘어필’이지만 순종이 황태자 때 썼기 때문에 ‘예필’이라고 불린다.




남산 동쪽 기슭 약 54만 6000㎢인 장충단 공원은 한국전쟁 이후 광장과 분수대, 놀이터와 산책로 등이 차례로 갖춰지며 최근까지 서울 시내의 대표적인 휴식처로 사랑받아왔다.

장충단 공원은 한편으로 서민들이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특히 정치사의 격변기마다 공원에선 대형 사건들이 수시로 터져나왔다. 정치깡패의 대명사 이정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앞잡이가 돼 폭력을 휘둘렀던 곳도 바로 여기였다.

이정재는 1956년 대선 당시 폭력적인 테러를 가해 야당의 집해를 방해하고 이듬해엔 장충단공원에서 공공연한 만행을 저질러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이벤트는 유세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1971년엔 장충단 공원에서 100만 인파가 모인 유세가 열리기도 했다.



# 1971년 대선 당시 유세에 모인 군중들


세종대왕의 ‘수표교’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돼 있지만 이곳으로 옮겨졌던 청계천 수표교는 공사현장 밖이어서 여전히 밟을 수 있다. 수표교는 홍수 때마다 넘쳐흘렀던 청계천 수위를 조사하기 위해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다리 옆에 ‘수표’를 설치하면서 이런 명칭이 붙게 됐다. 함께 이 곳으로 옮겨졌던 수표는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이전돼 지금은 다리만 만날 수 있다.

1420년(세종 2)에 세운 수표교는 근처에 소와 말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어 처음엔 ‘마전교’로 불렸다. 화강석을 깎아 만든 석재를 짜 맞추어 만든 돌다리로 1441년(세종 23) 수표가 세워지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 세종 대왕이 `수표`를 설치했던 `수표교`


기둥의 아래는 2단으로 포개어 쌓았다. 아래는 거칠게 다듬질 된 네모난 돌로, 위는 고르게 다듬은 네모난 돌이다. 윗단 모서리를 물의 방향과 맞추어 배열한 게 특징이다.

다리 위는 한쪽마다 엄지기둥 11개를 세웠고 그 사이에 동자기둥을 세워 여섯 모로 된 난간석을 받쳤다. 난간엔 조선시대 다리의 전형인 연꽃봉우리, 연꽃 등이 새겨져 있다.

이후 500여년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형태로 남았다. 김두환이 어린 시절 수표고 아래에서 거지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 청계천에 새로 만들어진 `수표교`


곳곳에 항일 관련 조형물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공원 안엔 장충단비와 이준 열사 동상, 파리장서비 등이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보다 위쪽으론 우뚝 선 사명대사 동상이 보였다. 매년 추모제가 열리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이 누구보다 두려워했던 인물이 사명대사가 ‘항일 정신’에서 시작된 장충단 공원을 지켜주는 느낌이다.



# 사명대사 동상


파리장서비의 정식 명칭은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은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작성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했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서한을 파리장서라고 부른다.

파리장서는 일제의 친탈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렸다. 당시 많은 유림들이 참여했는데 이는 기미독립선언서에 유림 대표가 포함되지 않을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 영남, 호남, 호서의 유림이 대대적으로 서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올린 사람들 외에도 자금 모집, 연락 담당 등의 방법으로 장서 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 파리 장서비


파리장서를 갖고 당시 해외로 파견된 이는 심산 김창숙이었으며, 이는 상해임시정부 파견 대표자 김규식을 통해 강화회의에 제출됐다. 각국 대표와 외교 공관을 비롯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는 장서 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을 체포․투옥하는 등 가옥하게 탄압했는데 이를 ‘제1차 유림단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맞서 공진회를 조직, 친일대신들을 비판하고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했던 이준 열사는 고종의 밀서를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헤이그에 파견됐다. 세계 여론을 환기시키는 덴 성공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열강들이 냉담을 보이자 이에 분개해 할복 자결했다.







# 이준 열사 동상과 이한응 순국열사비


내년 5월 녹지공원 ‘재탄생’

내년 5월 공사를 끝내고 일반인에게 공개될 장충단공원은 그 동안 낡은 건물과 체육시설을 철거하고 산책로를 보강하는 등 자연형 녹지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일본 목련나무 등 외래수종을 제거하고 소나무와 산딸나무, 산벚나무 같은 고유수종을 심고 40여년 전처럼 실개천도 만들 계획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가수 고 배호를 기념하는 가요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대폭 늘릴 예정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 장충단 공원의 과거와 미래


아픔도 많고 굴곡도 깊었던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가슴에 품었던 장충단 공원이 안개를 뚫고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선보일지 벌서부터 기다려진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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