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가 `개조 작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건국이래 최대 국책 사업이라는 4대강 정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세종시 문제까지 가세하며 대한민국은 `토목공화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여름 `대운하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뤄내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절차상 문제가 있어도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여론이 들끓자 지난 달 27일 밤엔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 당위성을 설파할 정도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건설 바람`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4대강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공공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작해 전 국토를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망치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국민들은 희망의 소리로 들을 것이다."

지금 나온 얘기가 아니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박희태 전 대표가 대표직에 있을 때 공개석상에서 내놓은 말이다.

무엇보다 `속도전`이 강조됐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비롯 일부 반론이 있더라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반론에 귀기울이고 논쟁하다보면 모든 게 끝난다. 그냥 속도전이 아니고 전광석화같이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

방법도 이미 일찌감치 정해진 듯 하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도 비교적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이처럼 `건설 사업`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것은 당시에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다.

"현장에는 대통령이 서 있어야 한다. 오늘은 낙동강, 내일은 영산강, 그리고 금강과 한강에서 대통령이 지휘봉을 들고 진두에서 땀흘리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예산 책정`부터 골머리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현실로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지를 돌며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오랜만에 TV앞에도 앉았다. 부실한 예산이라는 비판에도 정부는 관련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야당을 비롯 각계 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청와대와 집권 여당에겐 `쇠귀에 경읽기`에 불과하다.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은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업"이라며 "절차와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법 원칙과 절차를 유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사업이자 4대강을 다루는 터라 자연생태계에 대한 지적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정부는 `홍수 방지`와 `유역 개발`을 이유로 강행할 태세다. 한편에선 현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을 여론과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이유로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한강

본격적으로 시작된 4대강 사업 바람을 내년 지방선거 승리로 연결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얘기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도 지방 한 행사에서 "경제를 살려내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다"며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 경제 살리기에 미쳐보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을 완공한 뒤 대권을 쟁취했다. 4대강 사업은 차기 대선이 있는 2012년경이면 완공할 계획이다. 한나라당 내 친이계도 `정권재창출`에 대한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재정 파탄 각오해야"

"4대강 사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적, 상징적인 사업이고 사업의 성공 여부가 정권 재창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당내에서조차 4대강 사업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오자 지난 여름부터 이렇게 `입막음`에 나섰다. 당시 경제통 이한구 의원은 4대강 사업 추진으로 생길 수 있는 재정 적자나 복지 예산 축소를 우려하며 "재정이 파탄 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은 강물 위에 드리워진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

비주류 소장파 남경필 의원도 "재정 적자 규모가 커지는 상황이다. 2012년까지 22조원을 투자해 임기 내에 4대강 사업을 끝낸다는 속도전과 업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토론, 예산의 투명한 공개 이런 것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봤을 때 이명박 정부의 최대 로비창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권과 대형 건설사간의 유착 가능성도 거론된 지 오래다. 당초 정부는 지역 건설사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정작 결과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장 경제 원칙 흔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가을 국정감사에서 대형 건설사 6곳이 4대강 1차 턴키 사업 과정에서 담합으로 공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담합은 현대건설이 주도하고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이 적극 호응했으며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10여개 대기업으로 확대됐다.


#청계천

이 의원은 "현대건설 등 6대 건설사는 전국 15개 공구 중 영산강 2개 공구는 호남연고 건설사(금호·한양·남양 등)에 맡기기로 하고 나머지 13개 공구를 나눠먹는 논의를 진행했는데 각각 2개씩의 공구를 갖고자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포스코와 현대산업개발에도 한 공구씩은 줘야 해 대우에게 양해를 받아 과거 금강 구역에서 한 구역을 맡았던 대우는 한 공구만 맡기로 했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그는 "이후 삼성물산이 동부건설·두산건설·롯데건설 `연합팀`에 한 곳에서 패한 것을 빼곤 12공구 모두 담합 결과대로 진행됐다"며 "담합으로 낙찰률을 높여 국민 세금이 수조원이나 낭비된 만큼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속히 조사하고 검찰에 고발하라"고 촉구했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도 대정부 질문 답변을 통해 "4대강 사업과 관련 담합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입찰 가격 담합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과 근본을 흔드는 일"이라고 했다가 뒤늦게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4대강 사업의 입찰 과정을 둘러싸고 제기된 담합 의혹이 정권 이후에라도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나눠먹기`를 제외하고서도 곳곳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3000억원이 넘는 낙동강 18공구의 경우 낙찰업체와 2위 업체가 써낸 가격 차이가 1100만원에 불과했다. 공사비 기준으로 0.0036%에 수준이다. 공사 시공방법이나 재료 차이 등을 봤을 때 일반적인 상황에선 쉽게 나올 수 없는 금액 차이라고 한다.


더구나 각 공사 구간마다 약속이나 한 듯 2∼3개 업체씩 골고루 나눠 입찰에 응했고 전체 15개 구간 중 5개 구간이 공사비의 1% 이내 차이로 낙찰이 이뤄졌다. 4대강 1차 사업의 예상 낙찰률은 93.4%라는 높은 수준에서 마무리 됐다. 보통 60%대에 낙찰되는 최저가 입찰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더구나 4대강 1차 입찰은 설계와 시공을 한곳에 맡기는 `턴키 방식`이어서 애초부터 담합 우려가 제기되며 최저가 입찰로의 전환 주장이 제기돼 왔다. 턴키 방식의 경우 탈락 업체는 설계비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담합하는 사례가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대형 건설사 나눠먹기…

여기에 낙동강 공구의 경우 선정된 건설업체들의 대표 면면을 보면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이 15개 공구 중 절반 이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이 나온 동지상고 출신 포항 관련 인사들의 건설업체가 8개 공구에서 선정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조차 "국민들이 안심하도록 반드시 철저하게 해명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컨소시엄 선정 과정에서 권력 실세의 개입은 없었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낙동강 공구 외에도 정권 핵심이나 토착 유지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가능성은 4대강 사업이 실시되는 전국 각지에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4대강 사업은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적 사업인 동시에 국토의 젖줄을 모두 손대는 작업이다. 임기 내에 끝내려는 정부의 의지와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절차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미 그 비용이라면 사회복지와 교육 등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이 대통령은 전세계 앞에서 자신의 청계천 성과를 자랑하며 4대강 사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은 `복원`이었음에도 4000억원이라는 비용이 들어갔고 연간 유지비도 70억원이 들어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당초 예정된 22조원만 필요하다는 덴 의견이 분분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말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4대강은 시급히 복원시켜야 하고 대운하를 만드는 것은 필요하면 다음 대통령이 판단하면 된다"면서 "토목공사라고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제대로 계획을 세워 예산을 절감하고 일을 완성시키면 국민들이 완공 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토목공사`만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미 예산 작성과 공사 계약에 있어 대통령과의 공언과는 다르게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더구나 4대강은 실패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비켜나가기 힘들다. 이미 시화호와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환경 파괴 사례들이 이를 반증한다.

지난 9월 실용과 서민정책을 강조하며 45%까지 치솟았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TV를 통해 전국으로 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 직후 39.2%로 오히려 하락했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은 10월 51.6%에서 11월 55.2%였다. 지난 9월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4대강 사업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전면중단`(47.4%), `예산축소`(36.1%) 등 84%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10명 중 한 명(10.1%)에 그쳤다.

"토목공사가 나쁜 것이냐"는 대통령이나 "대운하에 반대하다가 4대강 사업이 친환경적이라 찬성한다"는 정운찬 총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초겨울 더욱 춥기만 하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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