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판도 바꿀 기업은 물론 금융권까지 휘감는 소용돌이

올해에도 국내 재계 판도를 재편할 기업은 물론 금융권 인수․합병(M&A)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대우건설, 쌍용자동차 등이 주인 찾기에 나선다. 또 은행권은 올해 본격적인 M&A 시장에서의 승부가 도약하느냐, 도태되느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 매각제한 지분 일부 블록세일 검토

지난해 흥행에 실패한 M&A시장이 올해 더 큰 규모로 열린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2년간 새 주인 찾기에 실패한 굵직굵직한 매물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그동안 내실경영을 펼치며 자금을 비축해둔 기업들이 M&A에 적극 나설 경우 업종에 따라 심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효성의 인수 포기로 매각이 한 차례 유찰됐던 하이닉스반도체가 올 M&A의 첫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오는 29일까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하이닉스에 대한 인수의향서를 접수한다.

연매출 7조원, 세계 메모리반도체 2위인 하이닉스를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 할 전망이다. 채권단은 인수 희망 기업이 나오지 않을 경우 하이닉스 매각 제한 지분 28% 중의 일부를 블록세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은 하이닉스반도체 매각을 마무리하면 곧바로 현대건설도 시장에 팔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현대건설 지분이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공사로 넘어간 점도 현대건설 매각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올 1분기 중 대우인터내셔널에 대한 예비 입찰과 본 일찰을 추진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 한화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이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인수 의사를 밝히는 등 입찰 전부터 인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인터내셔널 매각이 마무리되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해양 매각가는 조선·해운 경기 불황으로 일년 전 한화가 제시했던 6조원대의 절반 수준인 3조~4조원대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작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대우건설 매각작업도 올해 속도를 낼 예정이다.

당초 중동계 펀드 자베즈파트너스와 티알아메리카 컨소시엄이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었으나 매각이 불가능해 짐에 따라 산업은행이 사모펀드(PEF)를 구성해 인수키로 했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설립예정인 PEF에 금융회사들은 물론 대기업 등의 전략투자자를 유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지난 3일 “대우건설 인수 PEF를 구성할 때 채권단과 대우건설 재무적투자자(FI)에 참여 우선권을 주되 1~2개 대기업을 전략적투자자(SI)로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선 포스코 등의 대기업을 유력한 PEF 전략투자자 후보군으로 꼽고 있다.

여기에 대우일렉트로닉스와 쌍용자동차, 쌍용건설 등도 M&A 시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매물이다.

하지만 이같은 M&A 매물들이 시장에서 잘 소화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경기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규모 인수자금을 투자할 기업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우건설은 국내 시공평가 1위 건설업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입찰 당시 국내 기업들이 철저히 외면했다. 세계 2위 반도체업체인 하이닉스는 매각주간사가 6개월간 사전 수요 작업을 진행했지만 입찰에 응한 곳은 효성그룹 한 곳뿐이었다.

이들 기업과 함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른 공기업 M&A도 올해부터 본격화한다.

정부는 인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대한주택보증, 한국건설관리공사, 경북관광개발공사, 한전KPS, 인천종합에너지, 한국기업데이터, 등 8개 공기업 지분 매각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우리․외환, 한 곳만 인수해도 선두권 도약

올해 금융권도 M&A 시장에서 누가 어떠한 전략으로 순항하며 승기를 잡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M&A의 결과에 따라 향후 리딩뱅크로 거듭나고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변방’으로 밀리느냐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또 론스타가 6년째 소유하고 있는 외환은행도 매각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두곳중 하나만 인수하더라도 국내 선두권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은행들은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올해 M&A 빅뱅을 앞두고 업계 지각변동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10년을 맞은 금융지주 회장들이 신년사에서 밝힌 각오는 사뭇 비장할 정도다.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대행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본격적인 금융산업 구조개편으로 경쟁구도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며 “2010년은 KB금융그룹의 향후 10년 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해 M&A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이날 “금융권 판도는 은행간 M&A가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국내 중위권 그룹에 머물 것인지가 결정된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도 “올해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등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런 격변의 시기는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해 M&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식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어서 M&A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재 블록세일, 경영권 매각, 국민주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민영화에 대비해 현재 자사주 매입자금과 우리투자증권을 자회사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유상증자 및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자금조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상증자의 경우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반대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배주주 매각 논의 역시 늦어도 상반기에는 시작한다는 것이 예금보험공사의 방침이다. 여기에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금융회사 및 사모펀드, 하나금융 등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양한 장점 보유한 외환은행 인수시 시너지효과

금융권 M&A 최대 이슈는 외환은행이다.

이미 KB금융지주와 산은지주, 신한지주, 하나지주, 농협 등이 외환은행 M&A에 뛰어들겠다는 입장을 직간접으로 밝힌 상황이다. 더구나 외환은행 불법매각 소송이 상고심에서도 무죄 판결로 나옴에 따라 매각의 걸림돌도 사라진 상황이다. 이미 대주주 론스타가 지난해 외환은행의 지분(51.02%)를 6개월에서 1년 내에 매각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환은행 M&A를 둘러싼 각축전은 어느 때보다도 치열했다. 하지만 몸값만 높인 상태에서 올 하반기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외환은행을 어떤 은행이 인수하느냐에 따라 현재 은행권의 구도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외환은행은 양호한 자산건전성 및 수익성, 해외 네트워크 등의 다양한 장점을 보유하고 있어 은행들에게는 매력적인 인수 대상이다.

현재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국민은행+외환은행, 산업은행+외환은행, 우리은행+하나은행 등의 짝짓기다. 어떤 결론이 나든 올해 M&A 시장의 승자가 리딩뱅크로 우뚝 선다는 데 이견이 없다.

KB금융지주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할 경우 대형화를 통한 선도은행 입지 고수 및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된다.

산은지주는 기업금융관련 노하우를 통해 투자은행(IB)으로서 성장하고자 함에 따라 이를 위해서는 소매금융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자금조달원 확보가 가능하게 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올해는 대규모 은행간 M&A가 예고돼 있어 은행 입장에서는 위기와 기회를 놓고 총성없는 전쟁이 진행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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