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귤 그리고 프라이버시

이야기 하나: 귤

눈 오는 겨울, 누에고치 마냥 이불로 둥둥 동여매고 방 한 구석에서 책 한 권 끼고 빈둥거리고 있노라면 소소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런 것이 바로 안분지족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겠냐며 혼자 실실 웃는다. 입으로 뱉었다면 영락없는 헛소리다.

추운 겨울날엔 전기장판에 등 지지고 있는 게 최고라며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큰 결심해야 한다고 깔깔거리던 친구가 생각난다. 도가 선인들의 가르침이며 또한 은둔과 칩거하던 선비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던 그녀의 주장에 나도 감화되었나 보다.

어쨌거나 이런 소소한 것들이 겨울철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인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기장판이나 이불, 그리고 재미있고 가벼운 책(만화책도 무방함). 이들과 더불어 필수 아이템이 바로 귤이다. 손가락이 노오랗게 물들만큼 까먹고 또 까먹어도 어째 아쉬워 슬그머니 또 손이 가는 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내 옆에서 수북한 귤껍질 더미가 날 반긴다.

겨울이면 박스로 두고 먹곤 했는데. 베란다에 둬서 냉랭하니 차가운 귤을 따끈한 이불 속에서 까먹고 있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미소가 흐뭇하게 퍼진다. 새콤달콤 차가운 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혀 밑으로 침이 고인다.

자취생에게 과일이란 정말 호사스런 사치가 아닐 수 없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가난한 자취생의 헝그리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트에서 100원 200원에 참치캔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하는 나에게 과일이라니! 그렇지만 귤은 다르다. 한 겨울 방중에 벗삼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집 앞에서 트럭 한 대가 귤을 팔았다. 1000원에 8개나 준다기에 별 생각 없이 나왔다가 주머니에 있는 2000원으로 귤 16개를 사왔던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검은 봉투에 제법 묵직한 귤들은 알이 잘긴 했지만 동글동글한 것이 퍽이나 고왔다.


#박신영 그림^^

그리고 며칠 뒤 제주도에서 감귤농장을 하시는 고모님께서 내 앞으로 택배를 하나 보내셨다. 농약 하나 치지 않고 키운 유기농 귤이란다. 오로지 해와 땅과 비와 바람 그리고 고모님 내외께서 기울인 정성이 키운 귤이다.

그렇지만 박스를 열어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어쩜 이렇게 못생겼는지! 크기는 제법 굵은 것이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지만 표면은 울퉁불퉁하여 동그란 모양을 갖춘 것이 몇 안 되고 그 피부도 울퉁불퉁하고 흉터가 많았다. 얼마 전 샀던 조그마하니 예쁜 귤들과 함께 두었더니 이 커다랗고 볼품 없는 귤들의 못난 얼굴이 더욱더 부각되어 보였다.

미각은 눈이 아닌 혀가 느끼는 것이기에, 맛이야 고모님께서 보내주신 귤에 비할 것이 못된다마는. 그래서인지 자꾸 손이 가는 건 역시 이 못난 귤들이었다. 이왕이면 맛있는 귤을 먹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한 박스나 되는 귤을 나 혼자 먹을 수도 없는 일이고 농약 없이 자라 금방금방 상해버린다니 주변사람들과 나누었다. 나누고 남은 귤들도 먹는 속도가 느려 하나 둘씩 상해 버려지곤 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오늘도 냉장고에 넣어 둔 귤들 중 좀비가 되어버린 귤들을 골라내 두엇 버리며 가슴 아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예전에 샀던 그 예쁜 귤들을 찾았다. 이 귤들은 맛에서 밀려 냉장고 안에 터를 잡지 못하고 냉장고 위에 조륵 앉아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아이들은 아직도 노오랗게 싱싱한 색을 하고 있었다. 그를 신기하게 여겨 자세히 보니 조금 시들해져 있었다.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샛노란 색이 사뭇 인위적이라 그 예쁜 노란 색이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도저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귤에 색소를 입혀 싱싱해 보이도록 하기도 한다던데 혹시…. 미간이 찌푸려졌다.

동묘앞역이였던가? 지하철에서 ‘꽃’이라는 시를 본 적이 있다. 세월이 남긴 주름을 욕심으로 팽팽하게 펴지 않는 그런 것이 진짜 꽃이라고 노래하는 시였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겨울이 추워야 겨울인 것처럼 시간이 가면 쭈그러들고 못나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못생기고 추해 보여도 사실은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지는 꽃의 모양이 힘없이 동그란 귤의 싱싱한 색깔보다 더 아름답다. 못 먹게 되어버린 좀비귤일지언정 그것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모습인 것이다. 덕분에 내 마음은 좀 쓰리지만!

아무래도 귤을 좀 더 나눠야겠다. 이 속도라면 아마 절반도 채 못 먹고 버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도가와 유가정신을 이어받아 칩거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에게도 나눠줘야겠다. 금방 상하니까 빨리 먹어. 이게 보기와는 다르게 아름다운 귤이거든.

이야기 둘: 프라이버시

“뭐랄까 너, 냉정한 소릴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한다.”

답답한 맘이 켜켜이 쌓여 그대로 돌덩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 털어놓은 내 개인적인 연애사를 진지하게 들어주던 친구가 뱉은 말이었다. 충격이었다. 난 그저 서로 좋아한다든지 사귄다든지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더 서로를 믿어주고 서로의 개인적 영역에 지나치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게 어째서 냉정한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편이 되어달라는 하소연을 그런 식으로 받아치는 친구에 대한 섭섭함과 그런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억울함이 치솟았다. 내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왜곡되어 비치는 것만 같아 그 소릴 들은 이후로 난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연애에 대하여 말을 아끼게 된 것 같다.

그땐 어렸었다. 물론 지금도 스스로 굉장히 어리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철들려면 아직 200년은 먼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주제에 조금은 나이가 든 건지 그때를 돌아보면 무언가 선을 긋는 것 같은 내 태도가 냉정해 보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내 나름의 일상에 간섭하는 것이 나를 향한 애정의 척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습관이 된 건지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자신의 연애사를 재잘재잘 대는 일도 잘 없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 내가 누굴 만나도 주변사람들이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내 태도에 대해 혹자는 ‘쿨하다’고 평가하고 혹자는 ‘냉정하다’, ‘너무 메말랐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너랑 만나는 사람, 누군지 몰라도 참 불쌍하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박신영 그림^^

그렇다고 내가 하는 연애가 그렇게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아무나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짓은 도저히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나다.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어째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 스스로 내 이기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비단 연인 사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맺고 있는 모든 후천적인 관계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신뢰’다. 그리고 아무리 긴밀한 사이라도 나만의,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은 있는 것이다.

일종의 프라이버시랄까. 이 프라이버시는 굉장히 신뢰하거나, 혹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전자다. 아무리 격 없는 친구라도, 이를 지켜주는 것이 그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친밀한 누군가가 내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줄 때 난 그 사람에 대해서 거리감이 아닌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던 내 경험에 비추어 이 생각이 틀렸다고 의심해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처음에 얘기했던 충격적인 사건 이후로 이 부분에 대해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요구하는데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냉정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현재 교제 중인 오빠와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기분이 상한 적이 있다. 그 날도 서로 조금은 기분이 상해서 전화를 끊었다. 난 내가 양보한 부분이 이렇게나 되는데 이렇게 기분 상한 티를 팍팍 내는 오빠에 대해서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무런 대답이 불거져 나오지 않는 반면 오빠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는 열 개도 더 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머릿속 뇌수의 수온이 올라가면 뇌가 사고를 정지해 버린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난 흥분을 좀 삭히기 위해 일기장을 폈다. 이럴 땐 일기장 만한 것이 없다.

일단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지금 흥분상태인지를 적었다. 열 개도 더 될 것 같던 오빠의 잘못은 사실 몇 개 되지 않았다. ‘나도 잘못했다.’ 별로 공감되는 말은 아니지만 일단 적었다. 뒤에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아 생각 날 때까지 계속 ‘나도 잘못했다’를 반복해 적었다. 대여섯줄 정도 적고 나니 나도 딱히 잘 한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와 오빤 너무 다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대체 무엇 때문인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빠와 자주 충돌하는 부분은 바로 앞서 설명한 가치관에서의 차이이다.

선을 넘는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연인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는 오빠의 가치관은 때때로 너무 힘들다. 오빠 역시 그 부분에 대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닌 것 같다. 우리 둘 모두 분쟁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묵시적으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있긴 한데 이것조차 그렇게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지금은 오빠가 나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나는 오빠의 간섭을 일부 참고 넘기는 상황이다. 문제는 오빠가 나의 부작위에 대해서도 섭섭함을 느끼는 데에 있다. 오빠를 존중해 주기 위한 나의 행동이 ‘관심 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그 날은 이것이 폭발한 것 같았다.

오빠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니 미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딱히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서서히 나도 모르게 변해가는 건 모르겠지만 억지로 내 가치관을 바꾸려는 것은 내 관성상 거부감이 치미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조금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정말 ‘냉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흠, 그럼 진짜로 오빠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건가? 당장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의 이해심으로 오빠를 대해야겠다. 이건 오빠가 정말 싫어하는 건데, 하며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도록 해야겠다. 이기적인 나는 이 이상은 해 줄 수가 없으니까. 점점 익숙해지면 서서히 바꿀 수 있지도 않을까. 어쨌거나 그때까지는, 나 같이 이기적인 여자를 좋아한 죄로 오빠가 조금은 힘들어 줘야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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