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 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 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 승인 2010.03.1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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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 서부능선


#불광역에서 구기터널 가는 길

평일 산행은 항상 마음이 설렌다. 발길 닿는 대로 코스를 정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은 북한산 탕춘대 능선은 언제 봐도 정겹다.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아지랑이와 주변에 쌓인 눈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봄을 재촉하고 있다. 결코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한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를 나와서 구기터널 방향으로 가다보면 건너편에 약수터가 나온다. 그곳 계단을 올라서면 탕춘대 능선의 출발점이다. 약 10분에 걸쳐 땀나는 오르막을 오르면 팔각정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이 이어지면서 마치 병풍으로 비봉능선을 감싸고 있는듯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전율이 느껴진다.


#구기터널


#구기터널 인근 폭포


능선을 따라 계속 가노라면 탕춘대로 접어드는 성벽이 나온다. 성문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탕춘대 능선이 시작된다. 곳곳에 눈이 녹아 질펀한 황토 길로 변하기도 한다. 등산화 밑 부분이 지저분해진다. 주변에 구절초 산벚나무 등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미동산 오르는 길


#멀리 향로봉 능선이 보인다

탕춘대 능선이 거의 끝나갈 지점에 우측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이북오도청 못 미쳐 ‘장독대’(주인 정길화 02-3216-0122)란 주점이 있다.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운치 있는 곳이다. 등산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이곳은 동래산성 막걸리와 동래파전으로 꽤 유명한 집이다. 황산성 변호사와 탤런트 김영애 씨 등이 인근에 사는 관계로 자주 오는 단골들이다.


#족두리봉

오늘은 대남문까지 코스를 정했기에 마음속으로만 산성막걸리를 그리워하면서 탕춘대 매표소를 지난다. 불광역을 출발한 지 약 1시간이 흐른 시점이다.


#정상 능선들

약 10여 분을 더 올라가면 앞방향은 향로봉, 왼쪽은 산성 밖 족두리봉, 오른쪽은 포금정사터를 지나 비봉으로 오르는 세갈래 길이다. 포금정사와 비봉으로 가는 코스로 접어든다. 배낭에서 물통을 꺼내 쭉 들이킨다. 너무 시원하다. 날씨도 완연한 봄이다. 편집장의 등살에 떠밀리다시피 산행 길에 나섰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평소 시어머니처럼 이것저것 조잘대는 편집장이지만 그래도 오늘 이 상쾌함을 선사한 덕분에 감사한 마음을 느껴본다.



#사모바위

아니지. 이 부문은 편집돼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산으로 몰아내면 그 또한 낭패 아닌가.

포금정사에 도착하니 등산객들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다. 옛 절터라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는 관계로 식사장소로 많이 애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배낭속의 막걸리와 김밥이 호시탐탐 외출준비를 노리고 있다. 그래도 참아! 갈 길이 멀다.

다시 땀을 낸다. 그리고 나타나는 능선정상. 왼쪽은 족두리봉, 오른쪽 비봉과 사모바위 가는 비봉능선에 비로소 접어든다. 때마침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땀에 젖은 온 몸을 식혀준다. 초콜릿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비봉 정상에서 기념 촬영하는 모습들이 들어온다. 비봉을 뒤로하고 10여 분을 더 가니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사모바위가 날 반겨준다. 수 십년지기 친구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친근한 바위다.

승가사가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는다. 막걸리, 김밥, 사과, 컵라면이 답답함을 못 견뎌 뛰쳐나온다. 알루미늄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부어 쭉 들이킨다. 당연히 원 샷이다.


#청수동암문


컵라면에 김밥 담아 함께 넘긴다. 어느덧 시장기가 사라진다. 시선 저쪽에 남산이 들어온다.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속의 산이다.

장철문 시인의 ‘꽃 몸살’이 떠오른다.

몸살 한번 되게 앓은 뒤에

산길 간다

이 화창한 날을 보려고

되게 한번 튼 것인가

볕살만큼이나 가벼운 몸이다

배꽃보다

거름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오늘이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시소 타는 그날인가

당신만 늙어가는 것 같다고

취로사업도 잃은 아버지는

백주에 약주

아직도 아버지와 적대하는 내게

형님은 나무라는 전화 넣고

당신이 그랬듯이

이쪽에서 당신을 품어야 할 나이인가

배꽃보다

분뇨 냄새 짙게 흩어진 날인데

갓 피어나는 것들은

갓 피어나는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것인가

몸살 지난 몸처럼이나

가벼운 봄날

바람 깃 같은 몸 데리고

산길 간다

약 30여 분을 지체하다 대남문을 향한다. 사모바위에서 대남문까지는 약 40여 분이 소요된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혼자 하는 산행은 마음대로 속도를 낼 수 있어 편리하다. 일행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참을 가니 문수봉 암벽으로 가는 양 갈래 길이 나타난다. 오늘도 우회다. 청수동암문의 지긋지긋한 코스를 알면서도 위험한 길보다는 한결 마음 편한 쪽을 택한다. 기자도 어느덧 모험할 나이는 지났나보다. 최근 어느 지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70세가 넘어서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대남문

우리 국민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한 코미디언 배삼룡 선생이 얼마 전 작고했다. ‘웃음은 남에게 주고 한숨은 내가 갖는다’는 명언을 남긴 배삼룡 선생. 선생의 영전에 삼가명복을 빈다.

청수동암문의 마지막 관문을 힘차게 오른다. 이곳은 올 때마다 힘든 곳이다. 마의 10분, 아무 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청수동암문 정상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맞바람을 기대하면서.

오랜만에 찾은 대남문은 평화롭기만 하다.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아 분주하게 오간다. 커피 향을 따라 저 멀리 백운대 인수봉 노적봉이 차례로 들어온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인근 문수사에 들렀다. 불자들로 북적인다. 부처님께 큰절 올리고 하산한다. 불광역에서 출발한지 약 3시간 남짓 소요됐다. 눈이 녹은 개울물은 재잘재잘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적성교와 우정교

 
#버들치교와 박새교


대남교 양 옆에는 각종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꽃은 배꽃처럼 희고 열매는 팥 같이 작다고 붙여진 팥배나무, 옛날 짚신바닥이 헤어지면 이 나뭇잎을 깔았다는 신갈나무, 물속에 가지를 넣으면 물을 푸르게 한다는 물푸레나무, 낙엽을 태우면 노란재가 남는다는 노린재나무, 열매가 새들의 먹이가 되는 귀룽나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는 다릅나무와 광대싸리나무, 생강나무, 물오리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구기동 시인마을

대남교를 시작으로 고광교 국수교 철쭉교 돌단풍교 우정교 귀룽교 적송교 버들치교 박새교를 지나 내려오니 구기동지킴터가 나타난다. 입구의 자주 찾는 산유화에서 동동주에 파전을 주문하여 시원하게 한 잔 하니 하루 산행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든다.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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