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양푼이 한가득 막걸리, 단숨에 넘어간다
노란 양푼이 한가득 막걸리, 단숨에 넘어간다
  • 승인 2010.05.28 1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정릉→선림공원지킴터

4월 때 아닌 한파를 보낸 5월 첫 주말의 날씨는 쾌청했다. 연신내 연서시장에서 김밥과 약간의 먹거리를 사서 7211번 버스를 타고 정릉유원지 입구에서 내려 정릉 청수장가는 162번 버스를 갈아탔다.

정릉은 단릉으로 조성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에는 정동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역이 조영되었으나, 태조가 승하한 후, 원비의 태생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덕왕후는 평민으로 강등되고, 현재의 위치로 천장되었다. 따라서 왕릉제인 병풍석이나 난간석은 봉분에서 사라지고, 4각 장명등, 고석, 상석 등만이 원래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장명등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정릉의 공간은 일반 왕릉의 영역이 직선 축을 이루는 데 비해,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 축으로 조성되어 있다. 능역 입구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 터 양 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 보호수도 살펴 볼만한 가치 있는 역사경관이다.


#정릉탐방안내소


능의 역사를 살펴보면, 극진히 사랑했던 현비가 갑자기 승하하자 태조는 도성 안인 현 덕수궁 뒤편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능역을 조성하고 강 씨 봉분 우측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마련하여 능호를 정릉으로 정하였다. 아울러 능의 동편에 흥천사(興天寺)라는 절을 지어 재궁으로 삼고 능침사찰로 하였다.

그러나 잘 조성된 정릉은 신덕왕후의 왕자인 방번과 방석이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살해되고 태조의 원비 신의왕후의 다섯 번째 소생인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태종은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주택지로 정하여 세도가들이 정릉 숲의 나무를 베어 저택을 짓는 것을 허락하고, 청계천 광통교(현재의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하였다. 정릉이 있던 이 일대는 지금까지 정동(貞洞)으로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는 현종에 의해 복권되면서 그 능이 현재와 같이 재 조성되었다.


#영취사 대웅전

정릉 자연탐방안내소 앞은 날씨 덕인지 등산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시간은 오전 11시 15분.

이곳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아 자주 찾지 못하는 곳 중의 한 곳이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출발하여 영취사, 대성문, 대남문, 문수봉, 승가봉, 사모바위, 마당바위, 향로봉, 족두리봉을 거쳐 은평뉴타운 공사가 한창인 선림공원지킴터 쪽으로 하산, 불광중학교에서 종료할 예정이다.

북한산에는 초롱꽃 양지꽃 찔레꽃 술패랭이 큰까치수염꽃 물오리나무 엉컹퀴 할미꽃 붉은병꽃 용담 등이 자라고 있다.

등산로 옆의 계곡물은 여전히 맑고 깨끗하다. 흘러가는 물소리 또한 너무도 정겹다. 한 주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심호흡 크게 하고 맑은 공기 잔뜩 들이켜 본다. 계곡 따라 가다가 영취사, 대성문 방향과 삼봉사 가는 갈래 길이 나온다. 영취사, 대성문 쪽으로 발길 옮긴다. 삼삼오오 등산객들의 행보가 평화롭기만 하다. 날씨의 변화에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달라지나보다.

출발한 지 40여분이 지난 후 조계종 영취사에 도착했다. 불자들이 대웅전에서 주지스님의 설법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주변의 쉼터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준비해온 영지버섯차를 들이킨다. 냉동시킨 물이라 목 넘김이 시원하다.


#대성문 가는 길의 나무계단


다시 20여 분을 올라가니 국민대학교와 평창동에서 올라오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조계종 일선사 입구이기도 하다. 대성문 가는 나무 데크가 계속 이어진다. 숨이 가빠온다.


#칼바위능선

드디어 대성문에 다다랐다. 정릉탐방소를 출발한지 1시간 20여 분이 걸렸다. 여기저기서 식사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10여 분을 가니 대남문이 나온다. 예전엔 자주 왔었는데 최근엔 모처럼 찾은 대남문이다. 옆의 보현봉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저 멀리 남산이 우뚝 서서 위용을 뽐낸다. 아래 문수사 가는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는 오색등이 찬란하게 줄지어 매달려있다. 화사한 햇빛과 조화를 이루니 더욱 화려해 보인다.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옆 바위에 걸터앉아 식단을 차린다. 막걸리 한통, 김밥, 족발, 열무김치, 참치캔 등 제법 푸짐하다.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킨다. 발아래 깔딱고개, 힘겹게 올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전의 필자 모습이 떠오른다. 이 구간이야말로 ‘아멘’(아멘 소리가 절로 난다 해서 붙인 이름) 코스다. 머릿속은 텅 비고 무아의 경지에서 발걸음만 옮길 따름이다. 이러기를 10여 분, 청수동암문 정상에 올라서면 안도의 호흡과 함께 시원하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상쾌함을 더해준다.


#보현봉


#문수봉과 보현봉


#청수동암문

오늘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라 재미가 덜하다. 역시 산행은 오르막을 타는 맛이 제격이다. ‘아멘’ 코스를 지나오니 문수봉에서 내려오는 갈래길목이 약간 붐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산행팀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수 십 명씩 줄지어 지나간다.


#향로봉 능선

얼마 후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헬기장이 있는 사모바위다. 여러 산악회에서 기념촬영 하느라 분주하다. 오늘따라 사모바위가 살갑게 다가온다. 물 한잔 마시고 왼쪽의 승가사로 내려갈까 하다가 그냥 직진한다. 힘들 때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힘든데 애써 참아본다. 비봉을 거쳐 마당바위를 지나 향로봉으로 향한다. 눈앞에 향로봉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난다. 사진에 담고 우회하여 족두리봉으로 향한다. 다시 나타나는 양 갈래 길에서 잣나무 숲을 외면하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은평뉴타운이 보이면서 드디어 선림공원지킴터가 눈앞에 나타난다. 기나긴 산행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다. 약 4시간여가 소비된 고된 산행이었다.

불광사 아래 주점에서 메생이 지짐이에 막걸리 한 사발 청하면서 이마의 땀을 식힌다. 노란 양푼이 잔에 한가득 따른 막걸리가 단숨에 넘어간다.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 상쾌한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다.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