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연속기획> 다시 남발하는 재개발․뉴타운-3회

재개발․뉴타운 사업이 서민들의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자, 또한 노후주택 소유자들에게 저렴하게 아파트 입주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던 뉴타운.

하지만 뉴타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환상이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뉴타운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한때 재개발․뉴타운 지정을 축하한다고 내걸었던 현수막들은 ‘뉴타운 사기극 규탄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변했다. 곳곳에서 소송이 이어지면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른바 바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또 많은 조합과 시공사 등 재개발․뉴타운 관련 관계자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지난해 1월에는 용산4구역 재개발과 관련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는 ‘용산참사’가 벌어졌다. 또 재개발 현장에서 사고로 죽거나 다치고 공사 현장을 방치해 놀던 어린이가 죽는 사고 등도 비일비재하다.

올 1월에는 왕십리뉴타운 1구역 조합원이 법원에 성동구청과 재개발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 설립인가 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개발.뉴타운 사업은 단순히 부동산 경기가 하락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경기의 불황 때문이 아닌 민간의 수익성 위주 프로그램으로 사업성이 없는 지역들을 개발하려 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같은 정부 정책을 우려하면서 대안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 정책에 주거연합·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불교인권위.참여연대 등 21개 종교, 시민사회, 지역 풀뿌리단체가 모인 ‘재개발행정개혁포럼(재개발포럼)’은 재개발 행정의 전면개혁을 촉구했다. 이 단체는 재개발․뉴타운에 대한 행정이 주민보다 개발이익 위주에 폭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대안 모색에 나섰다.

<위클리서울>은 재개발․뉴타운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집중 분석해본다.

▲정부의 뉴타운 카드 다시 꺼내들기 ▲은평․왕십리․길음 등 3곳의 시범지구 뉴타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30여 곳 지정된 2.3차 뉴타운 주요지역 탐방 ▲향후 뉴타운․재개발 대안은 무엇인가 순이다.

이번호는 재개발․뉴타운 문제점과 대안 시리즈 3편으로 ‘30여 곳 지정된 2․3차 뉴타운 주요지역 탐방-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에 대해 살펴본다.

현수막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썰렁’

3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흑석뉴타운은 흑석 1, 2, 3동 지역 89만4933㎡(27만716평) 규모다. 국립현충원과 중앙대 사이에 위치한 흑석뉴타운은 단독, 다세대․다가구 주택 밀집지역이다.

9개 구역으로 구성된 흑석뉴타운은 2015년까지 1만627가구(임대 1249가구 포함)가 들어설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으로는 사업 마무리 시기는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분양한 흑석 5구역과 지난 2월부터 분양중인 4구역 등 2개 구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소송 등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10일 흑석뉴타운은 사업을 알리는 현수막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동부건설이 지난해 6월 분양한 5구역 아파트 공사 현장만이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5구역 뒤편 4구역도 대우건설이 상반기 분양을 앞두고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대우건설과 비슷한 시기에 분양할 예정이었던 6구역은 철거 마무리 단계에서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조합원들의 소송을 비롯해 업무협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관계자는 “6구역은 조합원이 소송을 했지만 패소하고 지금은 항소한 상태”라며 “건설사 공정상 문제 일 뿐 공사가 중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주도권 쟁탈로 조합과 조합원 다툼 발생

재개발․뉴타운 사업은 ‘주거환경개선’이라는 공익적 성격이 있지만 조합과 지주 등 관련자 처지에서는 ‘자본이익’을 창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손해를 보거나 더 이익을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는 조합장 비리와 조합원 간 다툼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분쟁 유형은 재개발 사업 주도권을 잡아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먹으려는 싸움이다. 많은 재개발 지역에서는 초기 단계부터 추진위원회가 난립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흑석뉴타운 3구역은 한때 5개까지 분열됐다가 현재 2개가 대립해 서로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분열은 각종 소송으로 비화하면서 큰 후유증을 남긴다.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 조합 내 의결기구인 총회와 대의원회, 추진위원회는 형식적인 조직으로 전락하고 소수 집행부가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조합장이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뒷돈을 받는 등 비리가 생기는 것은 이런 구조에서 비롯된다.



흑석뉴타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공사가 진행중인 3개 구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역에서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가 대립하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또 뉴타운 지정을 아예 취소해달라고 주민이 소송을 내기도 했다.

흑석7구역 관계자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개발을 위한 개발로 주민 권익은 물론 다수를 위해 소수를 무시하면서 추진하고 있다”며 “현지 주민 정착률이 10%대로 낮기 때문에 우리 구역이 1998년에 처음으로 지구지정 취소를 요구하면서 1999년부터 서울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도정법 등 뉴타운․재개발 관련 모든 법이 잘못됐다”며 “일부 건설사들은 법도 무시하면서 주민들을 회유와 협박 양면 작전을 쓰면서 자기들 이익을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7구역은 법원에 구청 공무원 비리를 고발한 상태”라며 “정부나 공무원들의 밀어붙이기식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지금 서울․수도권 뉴타운․재개발 사업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흑석9구역 비대위 관계자는 “우리가 무작정 뉴타운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합원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자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가 진행 중인 3개 구역을 제외한 6개 구역은 조합과 조합원 간에 전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재개발․뉴타운 지역은 조합원들의 소송이 걸려있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거의 대부분 소송이 걸려있다”며 “각종 소송으로 재개발 사업을 하는데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재정착 확대 위해 장기 저리융자․중소형 확대해야

뉴타운 정책은 강남·북 지역간 격차 해소라는 필요성에 의해 시작됐다. 뉴타운이 시작된 2002년 당시 주택노후도(30년 경과주택)는 종로구가 23.4%였던 반면 강남구는 0.1%일 정도로 차이가 컸다.

즉 ‘달동네’가 많은 강북지역의 체계적인 균형 개발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뉴타운의 목표다.

그러나 뉴타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왔다. 뉴타운 지정 소식이 들리기만 하면 집값 땅값이 뛰는 등 부동산 투기가 성행했다 또 소형저가주택이 사라짐에 따라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동네를 떠나게 됐다. 새로 뉴타운이 만들어진 곳도 고층 아파트 일색이어서 도시의 미관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초 주거환경개선정책자문위가 조사한 결과 뉴타운·재개발 사업 후 재정착률은 매우 낮았다. 서울 성북구 길음4구역 내 원주민 재정착률은 4구역 내에서는 10.9%(세입자 포함), 성북구 내에서는 35.1%에 머물렀다.

또 월평균 소득이 653만원은 돼야 뉴타운·재개발 지역에 신규 주택을 공급받아 거주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휘경2구역, 답십리12구역 등의 재개발 사업 평균 분양가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자기자본 2억원을 가진 사람이 대출 3억3702만원(연 7% 금리 적용, 월이자 196만원)을 받아 5억3702만원 짜리 집을 살 경우 대출이자 상환 등을 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소득수준이 월 653만4000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 원주민들이 살기에는 너무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에 ‘서민들을 내모는 뉴타운’이라는 오명이 붙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뉴타운 사업은 공공성을 확보한 주거환경 정비에 초점을 맞춰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 재정착률 제고를 위해 필요한 대표적 정책으로 조합원 아파트 추가비용에 대해 장기 저리의 융자를 제공하는 방법과, 저렴한 중소형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들 고 있다. 강성철 기자 steel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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