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부처님 오신 날, 승가사에 오르다

초파일, 20년 만의 최고 더위란다. 정말 무더운 날씨다. 불광역에서 도보로 구기터널을 지나 구기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다. 입구에서 전투경찰 두 명이 ‘문수사’를 가기 위해 길을 물어온다. 혼잡한 사찰에서 행여나 사고라도 생길까봐 순찰 간단다. 평상시의 근무복장으로 산에 오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며칠 전 내린 비로 계곡에는 맑은 물이 힘 있게 흘러내린다. 구기탐방센터에서 20여분, 구기삼거리에 도착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다. 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부근 물가에는 올챙이들이 옹기종기 짝을 이뤄 물속을 헤집고 다닌다. 버들치도 보인다. 신기해하는 아이들 옆에서 아빠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부처님 오신 날, 모든 사람들이 넉넉해 보인다.





쉼터에 바로 갈래길이 있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문수사 방향이다. 문수사를 거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 나무 계단을 이용하면 바로 대남문에 닿을 수 있다. 잠깐 갈등한다. 오른쪽으로 빠질까. 이내 생각을 접는다. 바로 그 나무 계단 때문이다.

왼쪽은 승가사 방향이다. 경사가 급한 길이 이어진다. 바로 옆에는 작은 계곡이다. 무더운 날씨,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다. 드문드문 하산객들이 계곡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에서 한여름이 떠올려진다.

한참을 올라 가쁜 숨이 턱을 넘어가려고 하는 찰나, 차가 올라오는 도로와 만난다. 다행이다. 부처님의 은덕이다. 산은 욕심을 버리고 한발 한발 천천히 올라야 제 맛인데 아직도 이눔의 급한 성정에서 벗어나질 못해 애를 먹곤 한다.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 하는데…나무아미타부울 관세음보사알!!

바로 옆엔 약수터가 있다. 그 바로 오른쪽이 승가사다. 입구에서부터 연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며 도열해있다. 그 연등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산사로 향한다. 탑돌이 주변엔 삼색의 화려한 찔레꽃이 만발했다. 눈이 부셔 차마 쳐다보고 있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여기저기서 찔레꽃을 배경삼아 기념사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다.



승가사 경내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다. 대웅전 앞 아기 부처를 보기 위해 신도들이 꽃을 든 채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석가모니 탄생일 즉, 불탄일(佛誕日)이자 욕불일(浴佛日)이다. 민간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 되기에 이르렀다.

사월 초파일은, 불교의 축의행사로 전래되었다가 민간의 세시풍속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은 관등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날을 관등절, 연등절 또는 등석(燈夕)이라고도 한다. 초파일을 여러 날 앞두고 가정이나 절에서는 여러 가지 등을 만든다. 이 때 가정에서는 가족의 수대로 등을 만든다. 초파일 며칠 전부터 뜰에 등간(燈竿)을 세워 두고 간상(竿上)에 꿩 꼬리털을 꽂고 물들인 비단으로 기를 만들어 다는데,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 이 호기에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매단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등간을 만들지 못하는 집에서는 나뭇가지나 혹은 추녀 끝에 빨래 줄처럼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매달아 두기도 한다.

그리고 초파일 저녁이 되면 등에 불을 밝힌다. 이 ‘등석’ 행사는 그 이튿날인 9일에 그치는데, 부유한 집에서는 큰 대를 수십 개씩 얽어매어 쓰기도 하고 해와 달의 형상으로 만들어 꽂아서 바람에 따라 굴러 돌게 하기도 한다. 등의 모양은 과실, 꽃, 어류 또는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본떠서 만들기 때문에 그 이름만 해도 수박등·마늘등· 참외등·연화등·목단등(牧丹燈)·잉어등(鯉魚燈)·거북등·봉등(鳳燈)·계등(鷄燈)·학등(鶴燈)·오리등·일월등(日月燈)·선인등(仙人燈)·칠성등(七星燈)·고등(鼓燈)·누각등(樓閣燈)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등에는 ‘태평만세(太平萬歲)’ ‘수복(壽福)’ 등의 글을 쓰기도 하고, 기마장군상(騎馬將軍像)이나 선인상(仙人像)을 그리기도 한다. 등을 달았을 때 불이 환하게 밝으면 길조로 해석한다.



승가사 내 식당도 초만원이다. 조리실 한 편에서는 봄나물을 무치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식기에는 콩나물 고사리나물 취나물 등이 준비되어 있고, 여기에다 밥과 고추장을 비벼 무국과 함께 먹는다. 이때 고추장을 담아 주는 아주머니가 절편을 한 봉씩 나눠준다.

옆에 준비된 무국을 한 사발 받아 들고 식탁을 향한다. 식탁은 길게 놓여 져 있는데 사람들로 꽉 차있다. 빈자리가 하나 생겨 겨우 자리 잡고 앉는다. 기자는 혼자 왔지만 함께 온 일행들은 각자 떨어져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비빔밥 맛이 기가 막히다. 여기에 담백하고 시원한 무국을 곁들이니 별미중의 별미다. 모처럼 절밥을 먹으면서 색다른 감흥에 취해본다. 애석하지만 오늘 이곳에서의 곡주는 사절이다.



꿀맛 같은 공양을 끝낸 후 108계단에 올라 부처님께 큰 절 올리고 사찰을 나와 사모바위로 향한다.

승가사를 벗어나자마자 깔딱고개가 시작된다. 이리저리 굽어진 급경사의 좁은 길을 끊임없이 올라야 한다. 헉헉, 헉헉…기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쁜 숨결까지 더해져 등산길은 뜨겁기만 하다. 그렇게 15분여를 오르니 그제서야 시야가 트인다. 살았다….



한숨 돌리고 난 뒤 바로 옆 공터에 세워놓은 전망표지판 너머로 승가봉과 문수봉, 북한산 주봉들을 주욱 둘러본다. 비봉에서 사모바위 가는 북한산 주능선 길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연휴가 끼어서인지 평소 그렇게 북적이던 사모바위 주변이 한가롭다. 나무그늘 아래서 드문드문 밥 먹는 모습들이 보일 따름이다. 다시 비봉으로 턴. 중간에 나오는 포금정사지 하산 길로 내려섰다. 이곳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워낙 경사가 급한 탓이다. 조금 내려가면 왼편으로 나오는 물개바위의 변함없는 모습이 다정하기만 하다.



포금정사지에 이르니 사람들이 제법 북적인다. 군데군데 막걸리 통들이 나 뒹군다. 군침을 삼키면서 발걸음을 탕춘대 능선으로 옮긴다. 한 시간 후 불광전철역 인근 먹자골목 ‘목포세발낙지’ 집. 연락이 된 몇몇 지인들과 산낙지와 연포탕에 걸쭉한 막걸리로 대미를 장식한다. 결국은 곡주로 마감하는 초파일 오후의 단상이다. 선임 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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