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들풀 나에게 와서 순한 꽃 되었듯, 집나간 호랑이 고향 그리워 돌아왔으니…
거친 들풀 나에게 와서 순한 꽃 되었듯, 집나간 호랑이 고향 그리워 돌아왔으니…
  • 승인 2010.07.0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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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의 서울 인근산 샅샅이 훑기> 인왕산

지난주 남산 순례길을 다녀본 바, 서울 장안에도 아름다운 산이 즐비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여 이번 주는 청와대 뒤편의 북악산과 연결되는 서울의 명산 인왕산을 찾았다. 예상 소요시간은 약 3시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출발하여 사직공원, 황학정, 만수천약수터, 기차바위, 성벽길, 정상 삿갓바위를 찍고 인왕사, 독립문역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 사직공원과 배화여대 가는 방면이다. 오늘도 며칠 째 계속되는 불볕더위. 정오를 약간 지난 시간인지라 무척 덥다.

사직공원 입구의 사직단과 사직공원관리사무소 중간 길로 접어드니 가까이 종로도서관이 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햇살과 짝을 이뤄 사이좋게 도서관 담벼락을 따라간다. 도서관 끝나는 지점에 인왕산 안내판이 붙어있고 좁은 골목의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니 비로소 인왕산 들머리 쪽이다.


#등과정터

얼마 후 국궁 연습장인 ‘황학정’이 나온다. 조선시대 무사들 궁술연습장인 오사정의 하나였던 ‘등과정’ 터에 자리한 황학정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다.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지어진 궁술연습을 하던 사정(활터에 있는 정자)이다. 고종 광무 2년(1898년)에 지어졌으며, 19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오사정이란 도성 안 서쪽에 다섯 개의 활터에 세워진 정자를 일컫는데, 옥동의 등룡정, 삼청동의 운룡정, 사직동의 대송정, 누상동의 풍소정, 필운동의 등과정이 그것이다. 지금은 오사정이 모두 없어졌으며 이곳에서 가끔 열리는 궁술행사를 통해 옛 무인들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인왕산호랑이 금동산

다시 얼마를 올라가니 인왕배드민턴클럽을 지나 인왕산 호랑이 금 동상이 나타난다. 금색 바탕에 목부터 꼬리까지 이어지는 밤색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호랑이 상 밑 왼쪽에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지키는 호랑이’, 오른쪽에는 ‘인왕산에 호랑이가 돌아왔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거친 들풀들이 나에게 와서 비로소 순한 꽃이 되었듯, 집나간 호랑이가 고향이 그리워 인왕산에 돌아왔으니, 가히 기호지세(騎虎之勢),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 나중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 명예를 간직함이 옳지 않겠는가.


#석굴암 입구

호랑이 동상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석굴암 입구’라고 쓰여 진 조그마한 입석이 있다. 이곳 계단을 오르면서 초소 우측으로 꺾어 들면 숲속길이 나타나는데 바야흐로 인왕산 등반의 시작이다. 이쪽 코스 외에도 인왕산을 오르는 길은 많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인왕사일주문, 국사당, 선바위, 선바위약수, 철조망문, 범바위, 인왕천갈림길, 인왕산정상 내지는 청운동 코스인 경복궁역, 자하문길, 영추문, 청와대 앞길, 청운중학, 최규식 경무관 동상, 청운아파트 방면 골목길 또는 자하문을 경유, 성곽 길을 타고 기차바위 남쪽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도 있고, 부암동사무소와 하림각, 옥인동 버스종점 등에서 시작하는 길 등도 있다.


#만수천약수터

숲속에 들어서니 평행봉과 각종 머신 등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는 체력단련장이 나오고 계단 길이 이어진다. 강렬한 태양광선이 직선으로 내리쪼이는 공간을 지날 때는 괴롭기도 하지만, 인왕산에 무리지어 사는 팥배나무와 때죽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은 고맙기 그지없다. 오후 1시 가까운 시간, 이름 없는 큰 바위 옆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 ‘만수천약수터’다. 냉장고에서 물을 얼려 왔건만, 그래도 산수에 비교되랴. 두 잔을 단숨에 들이킨다.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처절한 몸부림…. 나그네, 약수물 뒤로 한 채 끙끙대며 올라간다. 보약 먹었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정상을 700여 미터 남긴 산 중간능선에 시야가 확 트이는 바위가 서 있다. 중앙에는 북악산과 청와대, 경복궁이 우측 멀리엔 N서울타워, 좌측으로 사자능선, 보현봉, 문수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이 차례로 보인다. 북한산 비봉능선을 보니 백년지기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바위에 앉아 갈증을 해소한다. 차디찬 캔 맥주가 기꺼이 산화한다. 뱃속이 시원하다. 인왕산을 생각한다.



#소나무 뒤로 비봉능선이...

인왕산은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338.2m이며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다.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이어지며 동쪽 산허리로 북악(北岳)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조선 초에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곳곳에 약수와 누대(樓臺)가 있다.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仁旺’이라 하였으나, 1995년 ‘仁王’으로 옛 지명이 환원되었다. 군사적인 이유로 1968년 1월 21일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3월 25일 정오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의 서 너 군데 명소를 보자면, 자하문 고개에서 인왕산에 오르는 골목길에 ‘현진건 집터’가 있다. 고인(故人)이 된 언론 대선배 현진건은 근대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기자시절 베를린올림픽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올곧은 삶을 살다가 1943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진건 집터 옆에는 ‘무계정사(武溪精舍)’터가 있는데, 무계정사는 안평대군이 중앙정치의 혼탁함을 피해 풍류를 즐기면서 살던 별장이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찾다가 이곳에 당도하여 꿈에 본 그곳이라 여겨 정자를 세우고 글도 읽고 활도 쏘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한다.

인왕산 서편 중턱에는 ‘국사당(國師堂)’이 있다. 국사당은 무속신앙을 대표하는 곳으로, 원래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1925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무속인 들이 굿을 하고 있다.

국사당 뒤에 있는 ‘선바위(禪庵)’는 부인들이 아기 갖기를 기원하는 기자암(祈子岩)으로 유명하다. 선바위라는 이름은 바위모습이 마치 두 스님이 장삼을 입고 참선하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졌다.


#단군성전

선바위 쪽에 재미있게 생긴 ‘해골바위’가 있다. 해골바위는 묘하게도 바위의 특정부위에만 침식작용이 일어나 구멍이 뚫려서 생긴 이름이다. 인왕산에는 희한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이 있으나, 기자의 오늘 코스와는 상반되는 곳에 있다.

비교적 긴 휴식을 끝내고 성곽을 따라 계속 올라간다. 날씨 정말 덥다. 땀으로 아예 세수를 한다. 그래도 산이기에 기분은 매우 좋다. 좌측방향 정상을 500여 미터 남긴 지점에 당도하니 우측으로 창의문(자하문) 1.16㎞라는 푯말이 있고 그 위에 초소가 버티고 섰다. 인왕산은 현재도 청와대 외곽경비를 담당하는 X경비단의 초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이 초소에 붙어있는 성벽에서 밖으로 나서면 기차바위다. 길게 뻗어 있는 게 영락없는 기차의 모습이다. 다부지게 생긴 기개가 KTX급이다. 기차바위 저 멀리 비봉능선이 더욱더 선명히 다가온다.


#기차바위(앞) 뒤로 보이는 북한산 보현능선



#정상 가는 길


#정상의 삿갓바위


#멀리 보이는 청와대


#남산도 보이고...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철제계단을 오르고 또 오른다. 2시 가까운 시각. 삿갓바위가 있는 정상에 도달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사통팔달 트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하게 물 한잔 들이 키고 이마의 땀을 훔친다. 하산 길로 예정한 독립문공원 방향의 우측 길은 공사로 출입통제다. 정상 초소의 경비병이 지키고 서 통행을 막고 있다. 다시 사직공원으로 내려간다. 독립문 인근 식당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한 선약 때문에 창의문(자하문) 방향은 힘들기 때문이다. 사직공원을 지나 사직터널을 걸어서 통과하니 축구와 배구로 유명한 대신고등학교가 나온다. 독립문 전철역 2번 출구를 나와 좌측골목으로 들어가면 ‘인왕산 아구찜(주인 장예순 02-732-2669)’집이 있다. 기자가 지인을 만나기로 한 식당이다. 비교적 저렴한 30000원(4인 기준)에 아구찜(大)을 푸짐히 먹을 수 있다. 낮 시간 식사로 나오는 ‘복 지리’와 ‘복 매운탕’은 주변은 물론, 서울 장안의 인기메뉴다. 값도 6000원 실비다. 이곳 사장만의 특별비법인 육수 맛이 손님의 발길을 끄는 일등 요인이다. 곁들여 나오는 깔끔한 밑반찬이, 인심 좋은 장 여사의 넉넉함과 어우러져 한층 입맛을 돋운다. 마침 식당에는 단체모임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입소문이 천리를 간다더니. 아구찜과 복지리 주문하여 시원한 막걸리 한잔 마시는데 우리 편집장에게서 문자온다.

“형님, 하산하셨으면 숭인동으로 오시죠. 방송국 이 선배도 오기로 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 해설위원으로 있는 후배가, 기자가 보고 싶어 온단다.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르니….^^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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