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자연의 향기 속에서

빗방울

빗방울이 이파리에 맺혀 있다. 어찌나 영롱한지 이파리의 초록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니 빗방울이 돋보기가 되어 이파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빗방울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물맥이 선명하게 드러난 이파리를 바라보면서 생명력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이파리가 초록으로 빛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본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생명력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도 생명은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초록으로 빛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었다.



올 봄은 실종되었다. 어디에서도 봄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무는 힘을 모아 싹을 틔워냈다.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찬바람에도 꿋꿋하게 바로 섰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생명력은 위대하였다.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대처하였다. 초록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모든 역경을 받아들이고 극복해냈다.

빗방울에 드러난 초록 이파리에서 나를 본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반성해본다. 살아오면서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기만 하였다. 부족하다 하소연하였고, 나에게만 불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었다. 해내지 못하였을 때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하였다. 그런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리석고 초라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물맥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동안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잘못을 깨달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우기면서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커진다.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해진다. 빗방울에 드러나고 있는 초록 이파리는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해준다.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며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진다.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면서 부족한 것에 대한 불만의 마음이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물맥을 보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결핍감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배고픔도 마찬가지이고 어리석은 마음마저도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배부른 돼지에게선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풍요로운 상태에서는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부족할 때 욕구가 발동하고 배가 고플 때 의지가 불타오를 수 있다. 변명의 대상이 아니라 발전의 동기유발이 될 수 있다. 삶을 더욱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고 좀 더 사람다워질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가 된다. 불만과 불평만을 앞세우면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장애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악조건으로만 여기고 실의에 빠진다면 그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그 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만큼 그 것을 극복하고 살아가게 된다면 새로운 인생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장애가 방해물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초록 이파리에 떨어진 빗방울을 보면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다보았다. 올 같은 봄에도 초록으로 빛나고 있는 이파리들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게 된다. 생명력이 없다면 그 누가 이런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위대한 생명력만이 해낼 수 있다. 생명에 대한 경이감을 절감한다. 겸손한 자세로 생명의 위대성에 고개 숙이게 된다. 우주는 초록 향으로 그득하다. 봄은 실종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초록의 행운

초록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 있으니, 참 좋다. 무엇보다도 머리가 맑아져서 좋다. 신선함이 온 몸으로 배어들어온다. 세포마다 향기로움이 가득 차오른다. 일상의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그런데 초록으로부터 맑은 공기를 선물 받게 되니, 참으로 좋다. 온 몸이 가벼워져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다. 생활의 무게로 인해 짓눌리고 있던 영혼이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아파트 단지는 꽃과 신록으로 넘쳐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그들은 커다란 선물을 주고 있다.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표정이다. 내면에 넘쳐나고 있는 기쁨을 혼자 누리지 않고 나눈다. 아낌없이 모두에게 골고루 공유하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란 말인가? 기쁨을 나누고 공유하니 이렇게 좋은데, 왜 진즉 실천하지 못하였을까?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것은 욕심의 허망함 때문이다.



아파트에 산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지고 난 뒤에 강산이 변할 만큼의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몰랐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고 앞마당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의 주인이 나인지, 아니면 나의 주인이 아파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누리지 못하고 얽매인 채 살아온 날들이었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귀가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초록의 싱그러운 향을 심호흡을 통해서 들이마신다. 그 동안 아파트 주변의 나무와 꽃들이 얼마나 서운하였을까?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함께 누려야 할 나는 찾지 않았으니 얼마나 실망하였을까? 신록들의 마음을 유추해본다. 찾아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일은 처연하고 서글픈 일이다. 차라리 포기하면 좋으련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싱그러운 향이 그 것을 말하고 있다.



신록의 향을 선물 받은 나는 분명 행운아다. 저절로 눈이 감겨지고 고운 향이 온 몸으로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심호흡을 통해서 신록의 맑은 향을 마음껏 누려본다. 향이 온몸에 배어드는 것을 확인하다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다. 행운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게을러 찾지 않았지만, 오늘 이렇게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얻은 것은 아닐까?

행운이 공짜가 아니라 노력의 보답이라고 생각하니, 여러 생각들이 끌려나온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유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나만의 행운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행운을 확장시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운을 나눠줄 때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 나와 함께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행운을 가질 권리가 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라도 행운을 누릴 수 있다. 행운은 누구라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 차별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간혹 행운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다른 사람은 없다. 사람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은 있을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아파트 단지 안의 신록 속에서 마음껏 행운을 누린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한정 가질 수 있다니,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왜 진즉 몰랐을까? 그 것이 아쉬울 뿐이다. 공유함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욱 더 풍요롭게 해준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싱그러운 향에 마음껏 취한다. 일상의 무거움을 모두 다 털어낼 수 있어서 좋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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