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오일장에서 전설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다!
시골 오일장에서 전설이 된 어머니를 떠올리다!
  • 승인 2010.07.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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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오일장, 여름풀꽃, 한정식

5일장의 향기

“옛날 5일장의 활기는 없네.” 한가하다. 분명 5일만에 서는 시장인데 찾는 사람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물건을 팔려고 전시해놓고 있는 상인들의 수와 엇비슷하다.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갔다.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물건을 팔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의 표정이다. 초조하거나 당황해하는 빛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유가 넘치는 얼굴에 인상적이다.



강진장.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 서는 장이다. 시장 풍경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요란하지도, 붐비지도 않는다. 사람들의 행동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어머니가 떠오른다. 필요할 때 돌아다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계시는 어머니와 같다는 느낌이다.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다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5일장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물건을 사려고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넉넉해진다. 편안해진다.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도 않다. 신기하다. 북적거리지도 않는 시장에서 마음이 느긋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였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5일장은 그리움의 보고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의 삶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시장은 그리움의 창고다. 아무리 사용하여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과 같다. 시장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피어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아닐까? 장사를 해서 재산을 축적한다는 생각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시장에서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모은다는 일은 전설이 되었다. 5일장은 축재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맛을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정감이 넘쳐난다.



한가한 시장의 풍경, 세월을 생각해본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인해 노인이 설 자리가 상실돼가고 있다. 노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졌다. 젊은이들의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자꾸만 희석되어지는 현실 속에서 노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여기에 무시까지 당하고 있는 현실이 시장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고려장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이를 먹은 노인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고려장 이야기가 펼쳐진 고대 사회나 작금의 현실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노인을 경시하는 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없다. 노인이 설자리를 잃어버린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다. 노인이 존중되고 노인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이다.



늙어간다는 게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관적이지도, 초라하지도 않다. 노인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런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비판받아서도 안 된다. 노인은, 사회 발전에 헌신한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존경받고 공경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있기에 사회는 발전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의 사회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노인과 젊은이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아름답다. 젊은이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를 사랑하는 사회 말이다. 5일장의 모습이 바로 그런 사회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붐비지 않는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5일장의 넉넉한 모습을 보면서 노인과 젊은이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빛깔

곱다. 꽃의 색깔이 곱다. 다양한 색깔들이 선명하다. 여러 가지 색깔들이 서로 더 예쁘다고 자랑한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별이 된다. 오색영롱한 색깔로 밝게 빛난다. 어찌 저리도 고울 수 있을까? 여름이다. 가슴에 가득 차는 여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깊은 곳 내면에 침잠되어 있던 힘을 깨워낸다. 꿈틀거리는 열정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 꽃을 통해 여름의 열정을 확인한다.

분홍의 패랭이꽃도 있고 하얀 망초도 있다. 노란 천인국도, 역시 노란 어리연도 있다. 한두 송이가 아니다. 무더기로 피어 있다.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춤을 춘다. 홀로 피어난 꽃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여름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다. 눈을 감고 여름 풀꽃의 느낌을 만끽한다. 이렇게 좋을 수 없다.



봄꽃과는 다르다. 봄꽃은 청순하고 순수하다. 가냘프고 약하다. 바라보면 도와주고 싶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한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모성 본능이 발동한다. 봄꽃은 그래서 아름답고 세상을 빛나게 한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의 외로움을 털어버릴 수 있게 해주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다르다. 눈앞에 펼쳐진 여름 풀꽃들은 봄꽃과는 사뭇 다르다. 모성본능은 조금도 의식할 수 없다. 여름의 힘을 느낀다. 가라앉아 있던 열정이 되살아난다. 힘을 발산하고 싶다. 내면에서 폭발하는 힘을 주체하기 어렵다. 풀꽃의 매력에 푹 젖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새로운 느낌이어서 좋다. 세포마다 벌떡벌떡 일어나는 힘을 느낀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빛깔이다. 분홍은 분홍대로의 힘을, 하얀 색깔은 하얀 색깔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노란 색깔은 노랑 특유의 힘을 발산하고 있어 좋다. 각 색깔마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받는 느낌이 다양하다. 하나 같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빛깔들이다. 그들은 각각 상징이 되어 가슴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쏟아져 들어온 빛깔들은 세포들을 하나하나 곱게 물들인다. 그 것들이 하나의 씨앗이 된다. 물들여진 씨앗은 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내려 커다랗게 자라고 온 몸으로 번져난다. 고운 색깔이 모여서 오늘을 이룬다. 오늘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가슴에 들어온 빛깔들은 내 안의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여름 풀꽃과의 정말 아름다운 만남의 순간이다. 왜 진즉 알지 못하였을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숱한 여름을 보냈다. 수많은 꽃들을 보았지만, 여름 풀꽃의 매력은 찾아보지 못하였다. 오늘 새롭게 여름 풀꽃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는 분명 아름다운 만남이다. 새로운 인연을 맺었으니, 방향을 바로 잡은 것이다. 속도는 의미가 없다. 여름 풀꽃의 힘을 통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겠다.





한식의 매력

“상다리 휘어지겠다….”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저절로 나오는 말이다.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다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다양한 반찬의 종류에 놀라고 또 놀란다. 우리는 날마다 밥을 먹는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상 앞에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그런데 늘 받는 밥상하고는 분명 차이가 난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당연 감탄사를 남발할 수밖에 없다. 눈앞에 펼쳐진 산해진미,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다.

바다에서 나는 것은 물론이고 산에서 나는 것 논밭에서 나는 것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바다에서 나는 반찬으로는 낙지를 비롯 젓갈류, 굴비와 홍어 무침 등이 입맛을 돋운다. 산에서 나는 반찬은 고사리를 비롯 다양한 나물들이다. 논밭에서 나는 반찬으로는 연근을 비롯하여 무와 김치 등 바라보기만 하여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전주에서부터 이곳 순창의 한정식집까지 맛을 찾아왔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하늘을 바라보니, 무거운 구름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울상이다. 사람의 감정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날씨가 미치는 힘은 아주 대단하다. 장마는 정서를 가라앉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장마의 덫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벗어나기 위하여 미각을 선택하였다. 미각의 미묘함에 젖으면 극복할 수 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였던가? 기분이 우울해지고 가라앉는 것도 마음에 달려있다. 지루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아지게 되니, 다양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살다가 문득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난감해진다. 그럴 때마다 이유를 찾아보지만, 분명한 까닭을 찾기 어렵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같은 날들이다. 신바람이 나고 흥분하는 날이나 단조로움으로 가득 차 있어 지루한 날이라 하여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찾을 수 없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른 점을 찾기란 어렵다. 결국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마음이다. 같은 날이지만 흥미를 찾지 못하면 지루하고, 특별한 의미를 찾게 되면 신바람이 난다. 결국 차이는 살아가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 흥미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미각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맛을 즐기기 위해서 먹는 음식은 특별하다. 혀끝에 감도는 미세한 맛의 세계에 빠져들면 특별한 흥미가 생겨난다. 오묘한 맛을 구분해가면서 맛을 즐기고 있노라면 세상이 따뜻해진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일어난다. 세상이 말을 걸어오고 갑자기 활기가 넘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달라진 세상의 모습에 흥분하게 된다.



살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어디서 왔고,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업다. 커지는 화두에도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답답한 마음만 앞서게 된다. 이럴 때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다. 이런 참담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도 바로 미각이다. 새로운 삶의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미각이다.

미각을 감지하는 기관은 혀다. 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느끼는 맛이지만, 그 영향력은 온 몸을 지배한다. 아픈 가슴을 치유할 수도 있고, 침잠되어 있는 기분을 되살려내기도 한다. 맛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생활 자체를 다르게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맛 집을 찾아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음식점이라면 불원천리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창의 한식집은 결코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이 아니다. 그러나 찾는 이유는 미각의 세계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반찬의 가지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오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순창은 발효식품의 고장이다. 고추장을 비롯하여 된장 간장 등 다양한 음식 문화가 발전되어 있는 고장이다. 이런 고장의 특성에 맞추어 한식집의 묘미는 크다.



미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나니, 삶의 힘이 생긴다. 든든한 배는 기본이고 맛의 오묘한 맛이 기분을 바꿔 놓았다. 바로 이 맛이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혼란은 없다. 포만감이 불안감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연다. 맛의 오묘함을 통해 삶의 행복을 만끽하였다. 순천의 한식집을 찾고 나면 새로운 기분이 된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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