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바로 이곳이 극락세계인 걸…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바로 이곳이 극락세계인 걸…
  • 승인 2010.08.23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덥다, 이제라도 떠나자

회문산 자연휴양림에서

덥다. 더위를 피하고 싶다. 그런데 마땅한 곳이 없다. 전국이 용광로처럼 타오르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전국의 100여개 군에 발령되었다. 폭염 망에 걸리지 않는 지역을 찾기가 어렵다. 열대야가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어디로 가야 시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여 가까운 물가에 갈 수도 없다. 다리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쓰레기 문제를 비롯하여 냄새 그리고 위생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더위를 쫓기는커녕 스트레스만 더 받을 뿐이다.


“자연휴양림으로 가면 어때요?” 집사람이 거든다. 왜 진즉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까? 지도를 가져다 놓고 찾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국립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으니, 낯설지도 않다. 거리도 멀지 않아 적당하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다. 망설일 것이 없다. 더위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서두른다. 집사람은 도시락을 준비하자고 하는데 막았다. 점심이야 부근의 식당을 이용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출발하니, 가벼워서 좋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지만, 감내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의 시원한 산바람을 생각하니, 저절로 즐거워졌다.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던 더위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초록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달렸다. 옥정호를 지나는데, 호수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 올해 비가 적게 온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물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옥정호를 지나 강진으로 향하였다. 강진에서 회문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좁은 도로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다.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다. 길가의 식당에도 자동차로 넘쳐난다.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식도락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좁은 도로가에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으니, 길이 더욱 좁아진다. 좁은 길을 얼마나 올라갔을까? 휴양림이 입구에 도착하였다.

국립 회문산 자연휴양림은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위치하고 있다. 1993년에 개장한 자연휴양림으로서 산림청 국립 자연휴양림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회문산은 의병들의 활동 무대였으며, 빨치산들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최익현, 임병찬, 양윤숙 등이 항일 투쟁을 한 근거지였다. 또한 6.25 전쟁 때에는 남부군 총사령부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780m의 장군봉 아래에 조성된 자연휴양림에는 빨치산의 간부 훈련장이었던 노력학원이 있었다. 그 자리에 지금은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노령문 옆에 폭포가 있어 아주 시원하다. 교육시설로는 비목공원과 빨치산 사령부가 있고 체육시설로는 물놀이장, 체력단련시설, 배구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 외의 시설로는 대피소, 정자, 다목적 광장, 산책로, 등산로, 출렁 다리 등이 있다. 자연휴양림의 수목은 자연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나무로서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 외에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고 있다. 산림속에는 꾀꼬리, 산비둘기, 뜸부기, 까투리, 장끼 등 다양한 조류들도 서식하고 있다. 자연휴양림에 들어서게 되면 이들의 환영을 받게 된다.



요금소를 지나니 길이 가파르다. 잘 포장된 도로를 올라가니, 시원한 물줄기가 들어온다. 하얀 물보라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자동차가 무리 없이 올라가니, 편안하다. 하얀 포말이 더위를 모두 가져가버린다. 바깥세상이 더위의 지옥이라면 이곳은 극락이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회문산은 의병들의 활동 무대였으며, 빨치산들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바닥까지 훤하게 드러나는 계곡의 물에 풍덩 빠지고 싶다.



북서쪽에는 장군봉(일명 투구봉), 북쪽에는 회문봉 등이 우뚝 솟아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의 산줄기에는 암석군으로 다양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돌곳, 시루바위 등 멋진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남동쪽으로는 천마봉, 깃대봉이 있어 우람한 산세를 자랑한다. 참나무를 비롯하여 단풍나무 산벚나무 사이를 걷고 있으니, 나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어찌나 맑은지,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맑아지는 정신으로 산책로 돌아나오니, 참전 16개국 국기가 다정하게 맞이해준다.



잠자리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다. 그 아래로는 시원한 물이 흐른다. 물에는 개구쟁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물장구치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함께 하면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던가? 더위를 몰아내며 마음껏 놀고 있는 모습에서 밝은 내일을 본다. 더위에 찌든 일상은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나 또한 체면은 모두 벗어버리고 달려 들어가고 싶다. 그렇지만 세속의 먼지에 찌들어 있어서인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편안하다. 산이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우주를 마음에 품었다고 생각하니,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장자의 말이 떠오른다. 마음을 넓게 가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품안에 들어온다고 하였다. 책을 읽을 때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앉아 있으니, 알 수 있다. 세상 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세상을 가슴에 담으면 세상이 내 것이 된다. 우주를 담으면 우주 또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좋다. 번다한 일상을 잊었다. 털어버리니, 더위와 함께 모든 것이 함께 사라진다. 왜 진즉 몰랐을까? 내려놓으면 이렇게 편안한 것을 왜 몰랐을까? 후회가 앞선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하면 될 일이었다. 행동하기 어렵지도 않다.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이다. 자연휴양림이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줄은 알았지만, 예상 이상이다. 직접 체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오관이 열린다. 눈과 귀 코와 맛 그리고 촉감이 열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보는 것 모두가 즐거움이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면서 흘러가는 시냇물이 아름답다. 귀로 듣는 물소리 또한 마음을 기쁘게 한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들을 수 있으니, 그 것으로 충분하다. 오관을 통해서 우주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좋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니, 하나가 된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고마운 일이다. 무엇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산속에 몸을 맡기니,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집사람이 배가 고프다 한다.

주변에는 관광지가 아주 많다. 강천산 군립공원이 있고 추월산도 있다. 금성산성도 있고 담양호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옥정호도 있고 사선대 국민관광지도 있다. 모두 자연휴양림에서 멀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가서 보고 즐길 수 있다. 배가 고프다는 집사람의 요구에 내장사로 향하기로 하였다. 내장산 국립공원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 곳으로 정하였다. 신선이 된 기분을 좀 더 누리고 싶었지만, 이 또한 욕심이란 생각이 들어 일어섰다.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담양호가 보인다. 그 곳도 옥정호처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담양을 지나니, 순창 복흥이다. 복흥에는 가인 김병로 선생 기념 사법 연수원이 있다. 안내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정읍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 되지 않아 내장산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서래봉의 운치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내장사 쪽으로 향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선 먹어야 하였다.

내장사 부근의 음식점들의 음식 맛이 아주 뛰어나다. 특히 산채 정식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 그런데 산채가 나는 철이 아니라서 제육보쌈으로 정하였다. 신선한 채소로 쌈밥을 먹었다. 맑은 공기에 취하였다가 먹는 음식의 맛은 최고다. 부러울 것이 없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자연휴양림이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더위를 피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적은 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냈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존해야겠다. 즐거운 하루였다.

추억의 뒤안길 

스멀스멀 땀이 배어나온다. 차라리 줄줄 흘렀으면 좋겠다. 끈적끈적한 기분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참아내기가 힘들어 공간을 바꿔본다.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다시 베란다로 이동해 보지만, 마찬가지다. 여름의 열기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짜증이 난다. 감정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폭발시킬 대상을 찾을 수 없다. 이 또한 화가 나는 일이다. 구실을 찾아본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텅 빈 집안에 홀로 앉아 있으니, 더욱 더 답답하다. 더위가 싫다. 참을 수가 없다. 뭔가 대책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집밖이라 하여 열기의 기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텁텁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파트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여름의 열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햇볕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기가 감지된다. 이내 그늘을 찾았다. 그늘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땡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면 어떠하였을까? 그늘 아래로 들어서니, 숨을 쉴 수 있다. 열기의 폭력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 소나기는 피해가라고 하였던가? 나무 그늘은 폭염의 횡포를 막아주는 오아시스가 분명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으니,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폭염의 횡포를 막아주고 있는 그늘은 감나무가 만들어낸 오아시스다. 넓적한 이파리들이 햇볕을 가로막고 서 있다. 넓적한 이파리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감사한 마음으로 자세하게 바라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바로 감이다. 초록 빛깔로 빛나고 있다. 이파리의 색깔과 똑같은 초록이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줍은 색시의 모습으로 빙그레 웃고 있다. 만나서 반갑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감을 보니, 고향의 집이 생각난다. 이제는 길이 되어버렸지만, 고향의 집에는 감나무가 서너 그루 있었다. 더 필요도 없었다. 그 것으로 충분하였다. 우리 식구들이 일 년 내내 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꽃이 필 때에는 그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었고, 바람이 불어 초록 감이 떨어질 때에는 그 것을 우려서 간식으로 먹곤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져 그 아래에서 방학 숙제를 하였고, 가을이 되면 빨간 홍시를 먹으면서 자랐다.



모든 일들이 분홍 빛깔의 추억이 되었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아련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실제의 일인지, 꿈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워졌다는 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분명 겪었던 일임에도 전설이 되니, 아스라해진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록 감은 빙긋이 웃고만 있다. 인생이란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라 한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이순을 바라보게 되니, 모든 것이 허망하다. 고향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눈앞에 생생한데, 전설이 되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회색 고독을 즐겨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엇을 보아도 분홍 빛깔이 아닌 회색으로 보이는 까닭일까? 초록 감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있던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체유심조라 하였던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분홍 추억에 잠겨 있으니,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추억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는 즐거움도 컸다. 왜 진즉 알지 못하였을까? 초록 감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살려냈다. 회색의 고독마저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한다. 고독을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그러나 고독 또한 친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고독과 친구할 수 있는 여유도 가져야 한다. 초록 감의 안내를 받아 추억의 뒤안길을 오랫동안 서성였다.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