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자동차사고-2회




조개를 캔다고 전북 고창군 구시포해수욕장 옆 명사십리를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몰고 갯벌을 마구 달리는 것일까. 나쁜 사람들이네 저거.
자동차뿐만이 아니었다. 경운기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발에 밟혀서도 으석으석 깨지는 것이 조개인데 저 커다란 바퀴에 얼마나 많은 조개들이 압사를 당할 것인가, 생각을 하면 끔찍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이 바로 그런 ‘나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이야 당연히 몰랐었다.


# 푹잠겨버린 바퀴


# 그림같은 어머니


전봇대를 들이받고 자동차를 폐차 처분하기 한 달여 전의 일이었다. 그날이 6월 2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투표장에 들러 투표를 마치고 조개잡이를 나서기로 했다. 어머니에게는 일종의 체험학습인 셈이었다. 서서 잘 걷지도 못하시는 어머니가 물론 손수 조개를 잡을 수는 없었다. 옆에 앉아서 아들이 조개를 잡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으로 동행을 결정한 것일 뿐이었다.
사실은 며칠 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다. 때문에 낚시점에 들러 접이식 간이의자도 하나 사 두었었다. 농협에서 배포한 달력에 적힌 물때를 보니 10시에 집을 나서서 투표장에 들렀다가 구시포로 가면 갯벌에 물이 다 빠져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투표장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하고 말았다. 8장의 투표용지를 모두 무효표로 만든 어머니께서 사람들을 너무 많이 웃겨주셨다. 그랬다. 그것은 어머니가 만든 어머니의 작품이었다. 찍어야 할 자리에는 동그라미가 하나도 없고 찍어서는 안 될 자리에만 동그라미가 세 개씩 혹은 다섯 개씩 찍힌 기표용지, 그런 작품을 만드느라 어머니는 삼십 분도 넘게 시간을 썼다. 그리고는 또 보는 사람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말을 거느라 삼십 분 이상을 소비했다.
아, 이것이 치매라는 것이로구나, 새삼스런 덩어리 하나가 목구멍에서 쿨럭거렸다. 집에서는 알 수 없었던,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덩어리의 무게가 그 순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일종의 슬픔 같은 것을 지그시 깨물어 가며 약간의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구시포로 갔다. 갯벌은 이미 드러나 있었고, 언제나처럼 자동차도 몇 대 갯벌 위에 서 있었다.
아뿔사, 그때까지도 까맣게 생각을 못한 문제 하나가 튀어나왔다. 해변에서 조개가 있는 갯벌까지는 적어도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다. 한 걸음을 떼는 데도 3초 이상 걸리는 어머니와 함께 그 거리를 걷노라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마 밀물이 들어올 터였다. 왜 그 생각을 미처 못했는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불가항력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가면서 차를 몰고 갯벌로 들어갔다. 그나마도 조개가 있는 곳까지는 차마 들어갈 수 없어 중간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 조개를 잡는 모습이나 멀리서 구경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차 안에서 간식거리를 먹어가며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멀리 너울거리는 갈매기며 바닷물 같은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느낌이 영 이상하다.


# 여긴 확실한 아줌마고


# 아줌마도 같고 아저씨도 같고


“안 되겠네, 오늘은 그냥 갑시다.” 혼잣말을 해대며 시동을 걸고 후진을 하려 하는데 차가 안 움직였다. 앞으로 가자 해도 반응이 없었다. 기어가 잘못 들어갔나? 주차 브레이크가 안 풀렸나? 이것저것 만져볼 만한 것 다 만져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 뭐냐 이거. 다시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두 손을 높이 들고 마구 흔들어댄다. 예? 뭐라고요?
오 이런, 그제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미처 못 하고 있었던가. 왜, 왜. 이상하다. 희한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는가. 앞바퀴는 멀쩡하게 모래 위에 서 있는데 뒷바퀴는 수렁 속에 잠겨 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되어서 아주머니를 쳐다보는데 아주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이렇게 되면 못 나가요. 그래도 4륜인게 4륜 넣고 다시 한 번 해보시오.”
오오 그렇지 참, 내 차가 4륜 구동이었지. 아주머니의 충고를 따라 그렇게 해보는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4륜조차 말을 안 들어준다. 하도 오래 사용을 안 했던 것이라 제 기능을 망각해 버렸나보다. 그나저나 이게 뭐냐. 갯벌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차들은 다 멀쩡하게 서 있는데 왜 내 차만 모래수렁에 빠져야 하는가 말이다.
“아따 아저씨도 참, 내가 으찌케 그것을 알 것이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한 말씀 뒤로 떨구고는 종종걸음을 친다. 바쁘신가보다. 갑자기 외로워져 버린다. 낯설지만 아주머니가 옆에서 뭐라고 아는 체를 해주실 때는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 버리니까, 그나마 있었던 희망 같은 것이 떠나버렸다는 느낌이다.
덥다. 땀이 마구 흐른다. 그러고 보니 날씨도 참 더럽게 좋다. 뭐냐 이거. 저놈의 태양은 왜 저렇게도 이글이글하게 타는 것이냐. 느닷없이 한 남자가 생각난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남자, 뫼르쏘. 아 그래, 내가 아무래도 태양 때문에 길을 잃었나보다. 눕고 싶다. 갯벌에 발랑 드러누워 태양과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 그런데 뭘? 뭘 목적으로?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허둥거렸다. 그랬다. 나는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다른 차들은 다 멀쩡한데 왜 내 차만 빠져야 하는가. 이해를 못한 채로 일단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차가 빠졌어요. 꺼내주세요. 견인차는 40분이 걸린다고 했다. 멀리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조개를 잡던 사람들이 하나둘 뒤돌아 나오고 있었다. 잘못하면 어머니와 함께 바닷물 속에 갇힐 수도 있었다.
우선 어머니부터 피신을 시키기로 했다. 낚시의자를 꺼내서 들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만하면 되겠지, 싶은 곳까지 뒤로 물러서는 데만 이십여 분이 걸렸다. 낚시의자를 펴서 어머니를 앉히고 과자봉지를 안겨드리고 돌아서는데 무쏘 한 대가 빠져 있는 내 차 앞에서 멈추더니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꺼내드릴 테니 한 삼만원 주실라요?” 이곳저곳 둘러보던 남자가 계산 다 나왔다는 듯이 말했다. 견인차가 오기로 했는데 무슨 삼 만원 버릴 일 있겠습니까. 그보다도 나를 좀 이해시켜 주시오. 도대체 내 차가 왜 빠진 거요? 나보다 더 깊이 들어간 차들은 멀쩡한데 내 차는 왜 빠져야 하는 것인지 설명 좀 해주시오.
남자가 말했다. “에이 여보슈,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에요. 갯벌에도 길이 있다니까.” 남자는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뭐라고, 뭐라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갯벌에도 길이 있다는 대목에서 내 귀는 정지되고 있었다. 갯벌에도 길이 있다고?


# 저마다의 취향대로 자유롭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자는 어느새 가버리고 없었다. 잠시 뒤에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다. 오토바이는 내 차를 두 바퀴 정도 돌았다. 그리고는 멈췄다. 그 남자 역시 계산 다 나왔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견인차로도 못 꺼내요.”
4륜 구동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자리에 내 차가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견인차는 4륜이 아니고, 때문에 아예 들어올 생각을 안 할 거라는 것이었다. 뭐야, 당신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오토바이 남자는 낄낄대고 웃었다.
“며칠 전에 말이에요. 광주에서 온 아반테 신형이 꼭 이 자리에서 빠졌어요. 트렉터가 아니면 못 꺼낸다고. 근데 트렉터가 백 만원 달라고 했거든. 아반테 기사가 놀래서 포기했는데, 물이 들어와서 잠겨 버렸지 뭘.”
백 만원이라는 말이 내 귀에서 매미처럼 잉잉거렸다. 내 차가 백 만원짜리도 안 되는데 백 만원이라고?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나 웃고 있는데 오토바이는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견인차가 왔다. 차는 아예 멀리 세워두고 밧줄만 두어 개 들고 왔다. 역시 못 들어온다는 거였다.
그는 어머니를 주목하고 있었다. “이런 데 빠지는 사람들은 대개 젊은 남녀들이거든요. 근데 아저씨는, 아 참, 내 마음이 약해지네.” 그는 한참을 뭐라고 중언부언하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와 역시 늙어가는 아들이 갯벌에 빠져서 실망했다는 것도 같고, 감동을 했다는 것도 같고, 알쏭달쏭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리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한참 뒤에 트렉터가 왔다. 백 만원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오면 포기하고 그냥 돌아갈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십 만원도 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 충고를 했다. “갯벌에 차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 귀에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갯벌에도 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 길은 아니에요. 자동차 길은 따로 있는데 왜 갯벌 속으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요?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세요, 알았지요?
아 참, 부끄러운 날이었다. 한 달 뒤에 있을 본격적인(?) 자동차 사고가 그렇게 예시되고 있었다고나 할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