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자동차사고 (3)




아무래도 걸신이 들고 말았나보다. 전봇대와 부딪힌 이후 줄곧 배가 고프다. 첫날부터 그랬다. V자로 완전히 망가진 자동차를 견인차에 딸려 보내고 병원에 들러 이런저런 각종 사진이며 진찰이며 부끄럽게도 엉덩이에 아픈 주사까지 맞고 약국에서 약을 받고 돌아서는 순간 뱃속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배가 고픈지 다리가 그만 픽 부러질 것만 같았다. 살아오면서 그렇게까지 허기가 져본 적은 없었다. 도대체 이 걸신은 어디서 나타난 무슨 걸신인 것이냐.
그런데 이게 일회성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계속 배가 고픈 것이다. 먹어도 배가 고프고,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 이놈의 현상이 대체 무슨 빌어먹다 죽을 조화인가, 하고 잠깐 연구를 해보았다. 잠깐일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을, 내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체내의 어떤 것들이 사고 순간 급격하게 마치 폭탄이 터지듯이 방출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으로, 딱히 이것이다 할 만한 해답도 얻지 못했는데 벌써 다른 문제가 튀어나왔다.





대저 전봇대란 무엇이냐. 그것은 왜 거기에 서 있어야만 했는가 하는 문제가 튀어나오면서 사고 뒤에 배가 고픈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고 뭐고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전봇대에 관한 연구랄까 실태조사랄까, 하여튼 길을 나섰다.
사실은 예전부터 의구심이 있었다. 전봇대를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 년 전이었다. 술도 못하는 선배 한 분이 일기도 청명한 대낮에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맞은편에서 거대한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절반이나 침범한 채로 달려오는데 순간적으로 무서웠단다. 하긴 나도 무섭더라. 어쨌든 무서워서 순간적으로 핸들을 살짝 튼다고 틀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짝이 아니었던가. 자동차는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자동차는 천조각처럼 찢어져서 폐차를 했고, 선배는 한 달이 넘게 입원을 하고도 완쾌가 안 되어 지금도 가슴에 손을 얹고 다닌다. 그리고 또 하나, 그보다 두 달 전이었던가, 동생의 친구 하나는 모내기철에 트렉터를 몰고 지나다가 전봇대를 스쳐가게 되었다. 트렉터 뒤에 길이가 5미터나 되는 써래를 매달고 있었는데 그 써래가 전봇대를 건드린 것이었다. 그 바람에 전봇대가 상처를 입었고, 그 치료비로 전봇대 주인을 자임하는 한국전력에 20만원인가 30만원인가를 물어주어야 했다. 트렉터도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전봇대 주인이 그 치료비를 걱정해주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전봇대에 관한 문제의식이 살짝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게 워낙 살짝이었던 까닭에 그만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니니까, 남의 일이니까, 앞으로도 내가 당할 일은 없을 거라는 막연한 잠재의식이 아마도 그렇게 문제의식을 문제가 아닌 것으로 살짝 덮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 자신이 전봇대를 들이받았다기보다는 뭐랄까, 하여튼 전봇대와 부딪히고 나니 그때 덮었던 문제의식이란 녀석이 나 아직 살아 있어, 하고 벌떡 일어서준 형국이었다.
선배가 그때 들이받은 전봇대는 왕복 2차선 국도변의 살짝 경사진 곳에 서 있었고, 그 옆은 평평한 밭이었다. 그 자리에 전봇대가 없었다면 선배의 자동차는 밭으로 조금 들어가다가 말았을 터이었다. 자동차를 폐기처분해야 할 정도의 사고는 도대체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동생 친구가 트렉터로 건드린 전봇대는 차선이 없는 간선도로 옆에 바싹 붙어 있었다. 이 간선도로는 폭이 4미터로 개설목적이 농로는 아니었지만 농로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트렉터는 차체의 넓이가 2미터 남짓밖에 안 되지만 모내기철에 써래를 장착할 경우 5미터로 늘어난다. 따라서 전봇대가 바싹 붙어 있는 4미터 도로 위를 지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이란 것이 늘 깨어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어서, 가끔 전봇대를 건드려서 쓰러뜨리고 그것을 보상해주는 횡액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정리를 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시골의 도로는 대체로 갓길개념이 없다. 갓길은커녕 자전거나 보행자에 대한 배려도 없다. 어디어디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했다 해서 그곳을 가려면 자전거에 날개를 달거나 트럭에 싣고 가야만 한다. 그것이 농촌 도로의 기본처럼 되어 있다. 수풀 속으로 아스팔트나 혹은 콘크리트가 마치 어디서 들어다가 놓은 것처럼 깔려 있고, 그 가운데로 노란색 선이 구불구불 그어져 있거나 아예 그것마저도 없는 것, 그것이 농촌 도로의 전부다.
아스팔트는 보수에 보수를 거듭한 까닭으로 어떤 경우에는 지면과 20센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렇듯 농촌의 도로는 완전히 자동차 위주로 되어 있다. 자동차 위주로 되어 있는 도로 양쪽에 전봇대가 4,50미터 간격으로 서 있다. 이것은 일반국도나 지방도로나 간선도로나 모두 같은 현상이다.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양쪽에서 자동차가 오는 상황에 처하면 부득이 자전거를 세우고 수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죽는다. 양쪽에서 동시에 자동차가 오지 않더라도,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이 지나갈 때면 마치 허리케인이라도 만난 듯이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린다. 그때 만일 전봇대라도 옆에 있다면, 그대로 꽝, 하게 된다.
이것도 아마 학습효과일 것이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자동차가 오면 도로변으로 비켜줄 생각을 아예 안 해버린다. 비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중앙으로 더 들어가서 달린다. 자동차가 스스로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해 가라는 것이다. 도로변으로 피하다가는 전봇대에 부딪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수풀 속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전봇대는 대단한 독재자요 파시스트라 할 만하다. 그는 아무 데나 자기가 편리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여기는 내 땅, 하고 서서 두 팔을 크게 벌린다. 그렇게 제 멋대로 서 있으면서도 누구든, 무엇이든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어떤 전봇대는 아예 도로 위에 보란 듯이 서 있기도 한다. 아무리 농로라고 하지만, 농로이기 때문에 경운기와 트렉터 등 각종 농기구들이 드나드는 곳에 전봇대가 도로의 삼분의 일쯤 가운데 세워져 있어야만 하는가. 농민들은 역시 순박하구나. 아니 미련곰탱이 같구나. 그동안 저놈의 전봇대를 피해 다니느라 얼마나 조마조마했을 것인가.
전봇대는 전기를 공급하는 여러 가지 장치 중에 하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 전기는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요금을 받아간다. 따라서 전기는 서비스 산업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도 한국전력은 이미 민영화단계에 들어서 있다. 한때는 우리 모두의 재산이었지만, 이제는 이익의 대부분을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나눠먹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공기업을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할까. 문제는 서비스 산업이 서비스에 대한 개념을 전혀 탑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광양인가 어딘가에서 소위 유력자의 말 한 마디에 전봇대를 옮겼다는 뉴스가 온 나라를 한동안 시끄럽게 하기도 했었다. 그런 것이 뉴스가 되어야만 하는 나라, 이렇게도 우스꽝스러운, 아니 아름다운 나라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나 씹고 있기에는 사안이 너무 가볍지가 못하다.
같은 공기업이었지만 케이티의 경우 농촌의 도로변에서는 광케이블을 이미 땅에 묻었거나 묻고 있는 중이다. 전선이라 해서 안 될 이유가 없다. 소위 4대강 예산의 절반만 투자를 한다 해도 심각하게 위험한 지역의 전선지중화 작업은 가능할 것이다. 도로를 넓힌다거나 없는 인도를 따로 설치하자면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등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하지만 전선지중화는 그런 예산조차도 필요가 없다.
미래의 결과가 영 예측불허인 4대강에 비하면 전선지중화 작업은 너무나도 그 미래가 확연하게 보이는 사업이다. 게다가 지중화가 이루어진다면 해마다 벌이는 까치들과의 전쟁에서 오는 위험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프라 구축이 아닐까. 더욱이나 4대강 사업은 대부분 중장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이 도대체 미미하지만 전선지중화 작업은 중장비로는 오히려 안 되고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아예 도로위로 올라온 전봇대


크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아주 작은 일일 수 있고, 작다고 생각하고 무시한 일들이 실제로는 아주 큰 일일 수도 있다는 역설의 진실을 이제 우리의 대통령도 눈치를 챈다면 아 참,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볼 때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이익이 클 테니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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