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산사와 상사화, 꽃무릇

강천사의 여름

덥다. 시원한 계곡이 그리워진다. 여름이니, 더운 것이 당연하지만, 너무 하다. 견딜 수 없다. 한바탕 기습 폭우로 강산을 할퀴고 간 뒤의 폭염은 더 잔인하다. 이재민을 생각하면 덥다고 느끼는 것도 사치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쩌란 말인가?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피하고 싶다.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인 강천산 강천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그 곳이란 생각이다.



강천산 군립공원. 전북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용천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세가 용을 닮았기 때문이란다. 용 두 마리가 꼬리를 치면서 승천하는 형상이라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노령산맥의 끝자락인 강천사는 다양한 계곡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선녀계곡과 금강 계곡을 비롯 무려 열두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 산세가 얼마나 오밀조밀한 것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각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들은 모두 다 강천호로 모여서 장관을 이룬다.

강천산이란 이름은 강천사라는 절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강천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 사찰이다. 그러나 그 예전의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보이는 사찰 건물은 요 근래에 세워진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은 강천사 오층석탑(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92호)뿐이다. 강천사 앞 삼인대 옆에는 수령이 300년이나 된 모과나무가 있다. 연리목(두 나무가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가 된 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찾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만차’라는 안내표지가 보인다. 더위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에는 주차료를 따로 받았는데, 입장료(2000원)를 올리고 주차료는 받지 않는다. 자동차 사이를 곡예 비행하듯 해서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주차할 곳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뜨거운 열기다. 이곳에서도 더위는 피해갈 수 없다. 더위를 피해 왔는데 짜증이 솟구친다. 정말 시원한 곳은 없다는 말인가?



잠시 뒤 그런 짜증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폭포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름하여 병풍 폭포다. 자연 폭포라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폭포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올려서 다시 떨어뜨리는 폭포다.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폭포이지만 시원하다. 높이가 40m나 되니 그 웅장함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물의 폭만 15m다. 장관이다. 물이 떨어지면서 날리는 물보라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더위란 놈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만다. 병풍 폭포의 위용 앞에서 시원함을 만끽한다.

병풍 폭포에서는 음이온이 발생한다. 건강에 유익한 음이온이 대량 발생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건강도 얻고 더위도 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환경의 중요성이 새삼 떠오른다. 아름다운 환경을 관광 상품으로 팔고 있는 현장이다. 부서지는 물보라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도 병풍 폭포의 물을 맞으면 깨끗해진다고 한단다. 폭포 앞에 앉아 있으니, 탐욕으로 찌든 내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땅 위에는 웰빙 건강로가 있다. 웰빙 건강로는 신발을 벗고 걸어가는 산책로를 말한다. 바닥은 고운 모래로 되어 있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을 준다. 아름다운 환경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는 두 번째 현장이다. 다른 비용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신발을 벗으면 된다. 신발을 벗고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면 된다. 번거로울 일도 없다. 그냥 맨발로 걸어가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걷고 내려오면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까지 완비되어 있다.



안내판은 발의 건강이 우리 몸의 건강과 직결이 된다는 점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탐욕으로 인해 발을 신발 등으로 무장함으로서 우리 스스로 건강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그런데 이곳 강천사에서 원래 우리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접하니 얼마나 좋은가? 걱정할 이유는 없다. 이곳에서 공해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어디를 보아도 맑고 깨끗하다. 그러니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 강천사는 환경을 관광 상품화한 실증 사례다.

비단 이뿐 아니다. 산림휴양 산책로도 숲 속에 만들어놓았다. 나무를 이용하여 산책로를 개설해 놓았다. 계곡으로 길이 막히면 나무다리를 이용할 수 있고, 높은 곳도 걷기 쉽게 해놓았다. 산림 산책로를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 길이가 짧지 않다. 나무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흡수할 수 있다. 그 양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이다. 올라갈 때에는 웰빙 건강로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산림 산책로를 이용하면 아주 편리하다.

강천사로 올라가는 길,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을 한껏 감상하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계곡 물에 뛰어들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욕구를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물속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더위는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한다. 아름다운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한다.

강천문을 지나 강천사에 도착하니 다리가 아프다. 오층석탑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강천사의 아름다운 환경에 감사한다. 제대로 된 등산길은 이제부터다. 구름다리가 있는 쪽으로 올라가면 조각공원도 조성되어 있고, 아름다운 호남의 금강 강천사의 비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왔기에 먼 산행은 포기하였다. 강천사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환경을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절감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강천사처럼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삼천리금수강산이 아니라 쓰레기 천지강산이 되었다. 보존되지 못하는 환경은 무작위로 오염되었다. 환경을 지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손에게서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보존이 잘 되고 아름다운 환경이 관광 상품이 된 강천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환경이 상품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인지를 반증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상품화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강산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늦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체를 강천사처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다. 삼천리금수강산으로 되돌릴 의무와 책임이 있다. 강천사는 아름답다.

상사화와 꽃무릇

분홍 색깔의 꽃이 활짝 피었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있다. 연한 색깔이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 산사(전북 남원 실상사) 마당의 한 구석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꽃이 사랑스럽다. 모래뿐인 절 마당에 꽃대를 내밀었다. 꽃대 주변에는 풀 한포기 찾아볼 수 없다. 척박한 땅에서 꽃대를 밀어내느라 고생이 많았을 게 분명하다.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맨땅에서 꽃대를 솟아나게 하였고,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어냈다. 가히 사랑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상사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초록의 이파리와 아름다운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파리는 꽃이 다 지고 난 뒤에서야 세상에 나타난다. 꽃과 이파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당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얼마나 애틋한가? 상사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만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상사병에는 약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유일무이한 약이다. 상사병을 이겨내려면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사병의 대표적인 사례가 황진이를 사랑한 총각의 이야기다. 신분의 구별이 분명하던 시절 사랑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다. 같은 계급끼리라 하여도 사랑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물며 신분의 차이가 나는 사람들의 사랑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첫눈에 반한 총각은 신분의 차이를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비극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총각은 결국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고, 죽음에 이르고 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틋하다. 그 결말이 비극적이어서 더욱 더 그렇다.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도 한번 쯤은 해보아야 한다. 사랑의 쓴 맛을 맛보아야 비로소 그 참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통해 사랑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에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참맛을 알지 못한다.



상사화에는 첫사랑 여인이 배어 있다. 가슴 깊이 침잠되어 있는 여인이다. 잊을 수 없는 여인이다.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이루어질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가슴이 저려온다. 가슴에 살아 있는 첫사랑 여인이 상사화를 통해 어른거린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만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지만 마음뿐이다. 다 부질 없는 일 아닌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9월에 빨갛게 피어나는 꽃무릇을 보고 사람들은 상사화라고 생각한다. 8월에 피는 연분홍 상사화는 생각하지 못한다. 상사화하면 대개는 9월의 꽃무릇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것은 잘못이다. 9월에 피어나는 꽃무릇은 한자로 쓰면 석산(石蒜)이다. 돌 석(石)에 미나리 산(蒜)이다. 꽃무릇도 상사화처럼 만날 수 없다. 초록의 이파리와 빨간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9월에 꽃을 피우고 나면 속절없이 져버린다. 그리고 한 겨울에는 초록 이파리로 남아 외로워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을 엔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무릇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사화는 꽃무릇이 아니다.



상사화면 어떻고 꽃무릇이면 어떠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애틋할 뿐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숙명은 비극이다.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없으니, 그 아픔을 주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통해서 성숙된 사랑을 이룰 수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바탕이 되어 사랑을 완성해갈 수 있다. 그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욱 더 소중해진다. 아름다운 사랑의 완성을 위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상사화가 손짓하며 웃는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