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의 문턱에서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에서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면적이 11만8890㎡에 이르는 비교적 넓은 공원이다. 옥정호에 위치하고 있어서 청정하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공원 당국에서 다양한 시설을 만들고 있다. 솔숲 구절초 산책로가 3㎞나 조성되어 있어서 특히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그 외에 정자라든가. 습지 생태 학습장, 다람쥐 하늘 탑 등이 조성되어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접수 받아 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구절초 축제를 처음 펼쳤던 곳은 현재의 위치가 아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구절재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2005년에 처음 실시한 축제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니, 확장 이전하게 된 것이다. 구절재란 구절초가 자생하고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정읍 칠보면과 산내면을 이어주는 고개가 구절재이다. 고갯길에는 예전부터 사연도 많고 전설도 많다. 거기에다 구절초가 자생함으로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다가 축제로 발전하였다.

공원은 옥정호를 휘감아 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조성되어 있다. 옥정호는 그 경관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작가들의 출사 명소 중의 하나도 바로 옥정호이다. 그만큼 옥정호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전북 정읍시, 임실군을 아우르고 있는 옥정호는 상수원으로도 활용된다. 섬진강의 물줄기이기도 하며 진안과 장수 등에서 물이 흘러들어오는 다목적 댐이다. 칠보에는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옥정호 구절초 테마 공원은 자연이 주는 가을의 낭만과 서정을 느끼기에는 최적지다. 그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청정하다. 공해에 찌든 도시민들에게는 보약과도 같은 지역이다. 축제의 슬로건으로 내세운 ‘꿈에 본 듯한 감동적인 동화나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나라’ ‘지상 최고의 가을 서정’ 말귀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공원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절초는 단오 때에는 다섯 마디가 되고 9월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하여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가을의 낭만을 상징하는 야생화이기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약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여인들에게 좋은 약재로 활용되었다. 부인병에 관계되는 민간 약재로서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 외에 해열, 기침, 감기, 고혈압 등 치료약으로도 활용되었다. 병원은 멀고 약을 귀하기 어려운 산촌에서는 아주 유용한 약재로서 활용된 것이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좁았다. 들어가다가 나오는 차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낭패를 볼 정도로 좁았다. 이는 문제다. 10월에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게 들어가는 입구가 좁은 상태에서 어떻게 축제를 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을 넓히는 일은 환경을 보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무엇이 환경을 보존하는 데 좋은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옥정호를 넘어가는 다리는 2차선이다. 그런데 다리까지의 도로가 협소하니, 부조화가 심각하다. 다리 끝에는 검문소를 지어놓았다. 아마도 축제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서 입장료를 받기 위한 시설인 것 같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축제를 펼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수입을 늘리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입장료를 징수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시설을 정비하는 일이 우선이다.




다리를 건너 다시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광장 옆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공사 중이다. 아마도 공원 안 시설을 확충하는 공사인 것처럼 보인다. 공원 안은 공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내버려 둔 채, 공원 안에서 공사를 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사람들이 공원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잘 보존된 자연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공원 안에 다양한 시설을 조성하는 것은 자연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물론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명분으로 공사를 하는 것이지만, 그 것은 모순이다. 공원에 들어오는 도로를 넓히는 일은 필요하다. 공원 안에는 시설을 하지 않는 것이 환경을 보존하는 지름길이다.

광장 앞에는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바위산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규모가 작아서 바위산을 왜 만들어놓았는지,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시멘트를 이용 바위들을 붙여 만들어놓은 바위산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다. 아마도 이번 태풍으로 고인 물인 듯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고인 물 안에 이제 갓 부화한 듯한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것은 뒷다리가 막 나온 상태이고, 어떤 것들은 그 것마저도 떼어버린 상태의 올챙이였다. 아직도 올챙이인 상태로 있다면 언제 개구리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제 가을이다.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겨울이 올 것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개구리의 생태학적 발달 단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도 올챙이의 상태라면 문제는 있을 것이다. 환경을 왜 보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하게 하였다. 한가롭게 헤엄을 치고 있는 올챙이를 바라보면서 개발과 환경 보존의 상관관계를 반추하였다.



공원은 사람들의 쉼터다. 가장 좋은 공원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하여 공원을 훼손하는 일은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자연을 보존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발보다는 보존이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옥정호 구절초 테마 공원에서 개발과 보존이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공원을 조성하는데 있어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한다. 환경이 보존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여문 박 따라오는 가을

박이다. 아주 잘 여물었다. 모양도 신기하다. 박은 둥글다. 그런데 이 박은 사각이다. 메주를 닮아 있다. 정겹다. 어찌 저리도 잘 영글었을까?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한다. 이파리들은 힘을 잃었다. 박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힘을 모두 소진한 탓이리라. 말라비틀어진 줄기에 매달린 사각형의 박을 보면서 오묘한 자연의 마법을 실감한다.



여문 박 옆에는 조롱박이 열려 있다. 조롱박은 아직 덜 여문 상태다. 그러니 이파리도 생생하다. 조롱박을 여물게 하기 위해 막바지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리라. 초록색의 조롱박이 노란 색의 사각형 박과 비교된다. 조롱박 역시 때가 되면 노랗게 익어갈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잘 여물었을 때에는 세월이 덧없어지는데, 여물지 않았을 때에는 천방지축이다. 왕성한 힘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한다. 힘이 넘쳐날 때 그 힘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서 허송세월을 보낸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삶도 완전히 달라진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낭비한다. 그 힘이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아니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젊음은 언제나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젊음을 낭비하게 됨으로서 낭패를 본다. 젊음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알 수 있다. 그 것이 인생이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을 때에는 여름이 싫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건너뛰고 싶고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그 것이 얼마나 큰 어리석음인지 알지 못한다. 더위가 있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여름의 더위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 것을 사각형의 박이 말해주고 있다.

노랗게 잘 익은 사각형 박도 여름의 더위 덕분이다. 뜨거운 여름의 열정이 있었기에 여물 수 있었다. 우리가 더위를 싫어하는 것처럼 박도 여름을 피하였다면, 절대로 저리 잘 여물 수는 없다. 모두 다 여름의 힘이다. 여름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여름은 열기를 통해 오곡백과를 알차게 채워준다. 고추를 빨갛게 익혀주고, 보랏빛 가지를 통통하게 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빨간 사과며 먹음직스러운 배도 만들어준다. 들판을 황금색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바로 여름의 열기다. 여름이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여름의 열기가 넘쳐나야 세상은 풍요로워진다. 여름의 마법이 아닌가? 넘치는 열정이 있어야 자연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랬던 여름도 이젠 힘이 부치나 보다. 사각 박을 여물게 하느라 힘을 소진한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여름도 힘을 잃어간다. 더 힘을 내고 싶지만, 역부족이다. 넘치는 힘을 모두 다 사용하고 나니, 힘에 부치는 것은 당연하다.



잘 여문 박을 따라 가을이 오고 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여름이 힘을 잃어가는 것도, 가을이 다가오는 것도 선택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선택할 수 없다면 아예 그 것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여름을 미워할 것도 없고 다가오는 가을에 너무 취할 이유 역시 없다.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즐기면 되는 일이다.



여름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미워해서는 안 된다. 마음껏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가을 또한 누리면 된다. 여름이 있어서 좋고, 가을이 찾아와서 행복하다. 아∼가을이 저만큼에서 웃고 있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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