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세스 노터봄/ 옮긴이 이희재/ 민음사

 벨라스케스의 도시 마드리드에서 로마네스크의 도시 소리아까지, 무데하르 양식이 탄생한 테루엘에서 돈 키호테의 고장 라 만차까지, 영적인 고딕 풍과 관능적인 아랍 풍이 공존하는 과달루페, 고딕 미술이 시작되는 올리바 수도원과 은세공 양식의 걸작 산 마르코스. 질러가기보다는 둘러가고 책에 코를 파묻고 샛길을 찾아 여행과 집필을 반복한 평생에 걸친 순례. 텅 빈 스페인에서 보물찾기에 푹 빠진 네덜란드 대표 작가 세스 노터봄 특유의 명문으로 기록한 환희의 순간과 깊은 통찰을 통해 독자는 또 다른 독창적인 스페인 여행을 경험할 것이다.
세스 노터봄의 여행은 세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첫째, 공간 여행뿐 아니라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베루엘라 수도원에서는 독살당할 뻔했던 성 베네딕투스를 떠올리는가 하면, 소리아에서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슬픈 투쟁사를 꺼내기도 하고, 세고비아에서 이사벨라 여왕이 페르난도와 결혼한 속사정을, 오비에도에서 스페인의 별난 왕들의 에피소드들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할 때, 그리고 트루히요에서 피사로와 잉카 제국이 몰락하게 된 엉뚱한 오해를 들려줄 때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된다. “나는 이중의 여행을 한다. 하나는 렌트카를 몰고 다니는 여행이고, 하나는 요새와 성과 수도원이, 또 그곳에서 마주친 문서와 전설이 불러일으키는 과거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이다.”
둘째, 이제는 여행 상품이 된 잘 알려진 길만 따라가지 않고, ‘샛길의 유혹’을 과감하게 수용한다. “나에게 여행은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둘러가는 길이다. 나그네는 옆길로, 시골길로, 큰길에서 샛길로 빠지는 유혹,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을 가리키는 표지판의 유혹, 오솔길 하나만 난 저 멀리 성채의 윤곽이 주는 유혹, 저 언덕이나 산맥의 맞은편에서 나그네를 기다릴지도 모를 수려한 장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발로 일부러 영원한 미로를 만들어 간다.”
셋째, 작가의 여정은 중세의 영적인 순례와도 다르고 현대판 걷기 여행과도 다르다.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훌륭한 로마네스크 건축 기행서이면서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과 같은 바로크 화가들에 대한 멋진 미술 에세이이기도 하다.
552면/ 20000원  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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