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아빠는 박완서 작가의 책을 꼭 읽어 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이라며…. 사실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없는 게 없다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아!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품 중 ‘자전거 도둑’이 있었다. 따로 책을 읽은 게 아니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한 집안 사정에 어린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의젓하게 집안을 꾸려가는 주인공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박완서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왜 그렇게 박완서 작가에게 열광을 하는지 이 책을 보고서야 느낄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20세 한창일 무렵 6?25전쟁을 겪었다. 그는 이 책에서 6?25 전쟁 당시에 있었던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사람들, 굶주림의 나날들…. 그의 생생한 표현이 더해져 당시 사건들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 나의 마음을 더 시리게 했다. 그는 “6?25가 없었다면 나는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그가 제일 많이 배우고, 느끼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다.
작가는 집 앞 잔디 가꾸는 일에 온 신경을 쏟는다. 잔디 사이에 자라는 잡초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하지만 뽑아내야만 하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냉이나 쑥 등 먹을 수 있는 식용식물도 그의 눈에는 그저 다 같은 잡초일 뿐이다. 그것들이 혹시나 한창 자라고 있는 잔디의 영양분을 빼앗아먹는 건 아닌가 걱정도 한다. 그렇게 잡초를 뽑고 나면 큰일이라도 한 듯이 땀이 뻘뻘 난다. 손톱에 낀 흙이 매니큐어라도 바른 것 같다.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새삼 발견하게 된 기쁨과 경탄, 그로 인한 감사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꿈틀대는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담아 “내 몸이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라며 죽음과 가까워진 생에 대해 거침없이 고백한다. 죽음을 초월한 숨결이 느껴지는 이 말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체험한 후 고통에의 의지로 죽음을 인정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생명’이란 존재에 이르는 삶을 체험하게 된 고백이다. 이어서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보듬고 다독여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2008년 한 해 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책 너머 본 세상’이란 제목의 서평을 함께 실었다. 그는 이 글을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을 골라 읽다가 오솔길로 새어버린 이야기”들이라고 했지만, 책 한 권 한 권마다 제각각 다른 삶의 자국들을 새겨놓은 글이어서 ‘박완서가 책과 소통하는 세계’의 색다른 재미와 깊이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책에서 감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표현이다. 그저 말 한마디지만 시적인 표현이 더해져 그 상황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냥 박완서 작가의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너져 버린 남대문, 천안함 침몰 사건 등 최근 일어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예로 들며 경제적인 것에만 치우치는 사회 현실에 대해 날선 비판도 잊지 않았다.
기자가 ‘못 가본 길’은 어쩌면 지금 박완서 작가가 살고 있는 그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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