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중요한 에너지? 개똥이라니까요∼
제 삶의 중요한 에너지? 개똥이라니까요∼
  • 승인 2010.10.0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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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개똥에 푹 빠진 나날들

요새는 집에 사람이 찾아오면 데리고 다니며 자랑할 꺼리가 너무 많다. 하나를 따 먹고 돌아서면 어느새 두 개가 열려 있는 오이도 자랑해야 하고 수세미도 자랑해야 하고 호박도 자랑을 해야 한다. 하얀 꽃이 너무도 청순해 보이는 조롱박도 자랑해야 하고 옥수수도 자랑해야 하고 가지며 고추며 손을 대면 톡하고 터지는 봉선화 씨방도 자랑해야 한다.


# 거대한 수세미

이 모든 것들이 만약에 무더기로 밭을 이루며 심어져 있다면 아마 자랑할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두 개씩 혹은 두세 포기씩, 많다고 해야 기껏 이십여 포기가 고작이고 보니 흔한 것 같으면서도 희귀성이 있다. 게다가 그것들이 여기저기에 마치 우연히 나온 것처럼 숨어 있는 형국이다 보니 하나하나 지적을 해줘야만 한다. 한 품종을 가리키고 나면 그 옆의 다른 녀석이 나도 살아 있다 하는 듯이 눈에 띈다. 그 녀석의 이름과 유래와 특성 같은 것을 열심히 설명하고 돌아서면 또 다른 녀석이 발길을 붙잡는다. 이렇게 해서 손님이 노골적으로 지루하다는 표정을 드러낼 때까지 자랑은 계속된다.
내 버릇을 말할 것 같으면 무엇이든 자랑을 하되 그저 이것이 이렇다, 그러니 한 번 봐라, 하는 식의 간단한 자랑이 아니라 그것의 유래와 습성과 용도와 특장을 일일이 손에 쥐어주기라도 할 듯이 상세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내 자신이 생각해도 기네스북 같은 기록 시스템에 입력을 시켜야만 할 정도의 뻔뻔한 주책이다. 주책인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자랑을 해대니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주책인 셈이다.


# 너무 이쁜 호박꽃


# 다정하게

어느 하루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지? 왜 이렇게 자꾸 푼수가 되어가는 거야? 도시에 있을 때 별명이 크레믈린이었다. 어떤 녀석은 좀 더 노골적으로 KGB요원이라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비밀이 많다기보다는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는 재미가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었으랴. 그랬던 내가 시골살이를 시작한 이후 입이 열린다 싶더니 이제는 거의 수다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면 그 동기가 무엇인가. 이 질문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것이 개똥이었다. 그랬다. 내가 하는 모든 자랑의 바탕에는 개똥이 있었다.
사람이 몹시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개똥 밟았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실제로 거리에서 개똥을 밟았을 때의 기분은 입에 담기조차 끔찍할 정도로 불쾌한 무엇이 있었다. 특히 비 오는 날 개똥을 보고 나면 밥상에 놓인 국그릇에서 개똥이 가득 떠다니는 착각이 며칠씩이나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개똥 자체가 매우 더럽고 혐오스럽게 여겨졌었다. 멀리서 개똥 비슷한 것만 보여도 슬쩍 외면하거나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자리를 후딱 지나가곤 했었다.


# 수세미가 왜 이리 꽃을 피우냐고~

서울 탈출에 성공해서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서도 한동안은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집에서 개를 기르면서도 개똥은 너무도 먼 당신이었다. 삽이나 빗자루를 들고 개똥을 치우면서도 시선은 딴 데 두고 있었고, 심지어는 개를 향해 “똥 좀 자그만치 퍼질러라 이놈아” 소리가 절로 나오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개똥 찬양사가 되어 사료를 주면서도 어떤 때는 사료가 개똥으로 보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몇 번인가 계산을 해보기도 했었다. 개사료 한 포 가격과 비료 한 포 가격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비료에 들어 있는 석유화학 성분과 개똥에 들어있는 유기물 성분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 결과 사료를 사느라고 들이는 비용은 사료값이 아니라 사실상 거름값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니까 사료는 완전히 공짜인 셈이었다. 다시 말해서 개를 먹여살리는 데 드는 비용이 전혀 없다는 계산인 것이었다.


# 이게 오이라면 믿을까

이것은 누가 내게 이론적으로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례가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던가. 역사란 물론 책에 적혀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 까마득한 유소년기의 무수한 삽화들이 현실에서 적절한 어떤 계기를 만나 꽃을 피운다면 그것이 곧 역사에서 배운다는 바로 그런 것이 될 것이었다. 더럽기만 했던 개똥이 보물로 여겨지기까지의 내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시골에 정착을 하고 개똥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유소년기의 어떤 그림 하나가 시나브로 떠올랐다. 책보를 어깨에 둘러매고 학교를 간다고 집을 나서면 새벽에 출근했던 이웃집 할아버지가 더러운 망태를 털렁거리며 퇴근을 하곤 했었다. 마을에서 이른바 ‘꼬꼽쟁이 개똥영감’으로 통하는, 그 무렵에 새로 나온 요소비료가 그렇게 좋다고 너도나도 요소비료 찬양을 하던 시절에 비료는 쳐다보지도 않고 홀로 꼿꼿하게 날마다 개똥을 모아서 참외농사를 짓던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의 개똥 수집은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었다. 전라도에서 ‘구덕’이라고 부르는 망태를 왼쪽 어깨와 옆구리 사이에 잡아 묶듯이 매고 삽 한 자루와 호미 하나를 들고 새벽이면 집을 나섰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면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모아들인 개똥을 마당에 쏟아놓고 방앗간에서 가져온 왕겨와 섞어서 일단 썩힌 다음 그것을 다시 말려서 가마니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참외를 심는 철이 되면 죄다 밭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그 할아버지의 참외밭에서 나온 참외는 개똥이라 해서 가능한 한 안 먹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끝까지 안 먹고 버틴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땅이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개똥이 어떻게 참외로 변신을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밤새 고민을 한 아이가 있었는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채소밭에 똥거름을 주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똥도 그렇게 한 개의 참외나 혹은 복숭아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방울 닮은 토마토


# 벌레와 나눠먹는 가지

유소년기의 그러한 풍경이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 기억에서 아주 지워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알맹이는 죄다 빠지고 껍질만 남아 있었다고나 할까. 고향은 그저 지치고 힘들 때 가끔 떠올리는 추억속의 영화일 뿐이었다. 유기농, 유기농 하면서도 그 유기농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없었다. 다만 막연하게 석유화학 제품을 안 쓴다 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때문에 더럽고 악취가 심하고 보기 싫은 것일수록 최고의 유기농 원료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볼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참으로 기적처럼 그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도 게으름 때문이었다. 게으르다 보니 개똥을 치우는 것조차 차츰 귀찮아지고 있었다. 이놈의 개똥을 어찌하나, 하루라도 치우지 않으면 꼴 보기 싫고 냄새도 심한 개똥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하루 사료포대에 그것을 담았다. 처음 생각은 포대에 담아서 멀리에 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며칠 뒤에 개똥은 포대에 가득 쌓이게 되었고, 손으로 들어서는 옮길 수도 없게 무거워졌다.
이것을 어찌하나, 다시 고민을 하다가 아예 꽁꽁 묶어서 쌓아두기로 했다.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자는, 참으로 게으른 생각이 낳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한 달, 두 달, 석 달, 육 개월이 지나도록 치우지는 못하고 볼 때마다 인상만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개똥은 조금 과장을 하자면 산처럼 쌓여갔다. 아유, 저놈의 개똥, 저것을 어떻게 하지. 이 심난한 생각이 꿈으로까지 이어졌다. 꿈속에서 내가 그만 개똥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 즈음의 어느 날 생각난 얼굴이 바로 ‘꼬꼽쟁이 개똥영감’ 그 할아버지였다. 그 얼굴은 하나의 행운이었고, 기적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참외농사에 관한 기억을 되살려서 마당 여기저기에 구덩이를 파고 개똥을 넣은 다음 호박을 심었는데 호박이 어찌나 크게 많이 열렸는지 늙은 호박을 수확해서 서울로, 일산으로, 전주로 택배발송을 하느라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 어른 키를 넘기고도 계속 크는 고추


# 너무 많이 열려


작년에는 생강이 내 입을 쩍쩍 벌리게 해주었다. 애기 손가락만한 생강 한쪽이 가을에 살찐 돼지 엉덩짝만큼씩이나 증식을 했으니 말을 해서 무엇하랴. 금년에는 고추다. 시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로부터 꽈리고추 세 포기에 천 원, 청양고추 다섯 포기에 천 원, 일반고추 스물네 포기 한 판에 2천원 그렇게 모두 4천원어치를 사다가 심었는데 달랑 세 포기밖에 안 되는 꽈리고추는 벌써 몇 사람에게 나눠주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이고, 청양고추는 도대체 얼마나 키를 키울 작정인지 가을이 다 된 아직도 계속 성장 중이다.
고추는 대체로 어른 배꼽 근처에서 성장을 멈추는 것 같은데 개똥을 주식으로 자란 우리 집 고추는 금년에 일찌감치 어른 키를 넘겨 버렸다. 그 바람에 어떤 사람은 이게 무슨 고추냐고, 신종 수양버들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아예 엉뚱한 누명을 씌우고 나섰다. 고추가 너무 웃자랐다고,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준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앉혀놓고 식물이 웃자란다는 게 무슨 뜻인지, 화학비료와 개똥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정적인 강의를 해대는 것이니, 이래저래 개똥은 내 삶의 중요한 에너지원인 셈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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