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코스모스, 순박한 시골처녀의 얼굴을 닮았다
저 코스모스, 순박한 시골처녀의 얼굴을 닮았다
  • 승인 2010.10.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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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의 문턱에서

코스모스 

순수한 색깔로 피어난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고운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다. 맑은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불순물이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깨끗함만 모아서 피어난 꽃이다. 시골의 순박한 처녀 얼굴을 닮았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만을 가진 처녀를 닮아 있다. 감히 손으로 만질 수 없다. 욕심으로 물든 얼룩이 번져날 것 같아 만질 수 없다. 그래서 바라만 보았다.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에 취하였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곳은 마이산 입구다. 도로가 아니라 산 아래여서 더욱 맑게 보인다. 도로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아무래도 오염된 공기를 마시게 된다. 그러니 깨끗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곳의 코스모스는 그렇지 않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피어난 꽃이다. 그러니 순수하고 깨끗하다.

맑고 깨끗한 꽃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거기에다 순수한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더 감사하다. 물질만능사회에서는 원형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든지 가공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맑은 코스모스 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근원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 같아 흐뭇하다. 보이는 것마다 고맙게 여겨진다. 만나는 것마다 감사하다.



인연으로 연결된 우리의 삶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이 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알게 모르게 연결된 관계로 인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나비 효과란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연으로 이어진 우리의 삶이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보이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나는 이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한 곳에서 어긋나면 삶 전체가 어긋나게 된다. 어긋난 인생은 제대로 될 수 없고,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서게 되면 인연으로 이어진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소중한 만큼 행복해진다.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는 코스모스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에 만난 코스모스 꽃이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코스모스처럼 웃으면서 살고 싶다. 원형을 유지하고 싶다. 오염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고 싶다.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만 살아가고 싶다. 탐진치를 모두 다 벗어버리고 살아가고 싶다. 비우고 비워내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코스모스처럼 해맑아질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버리면 코스모스처럼 순수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이산에서 만난 코스모스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꽃을 보고 하늘을 본다. 사람이 그리워진다. 어제는 모두 털어버리고 오늘에 충실하면서 코스모스처럼 살아가고 싶다.

꽃문양 창살

눈에 들어온 창살이 마음을 잡는다. 꽃문양창살이다. 장인의 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꽃문양을 새기면서 들어갔을 고운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세월이 내려앉았다면 어렵지 않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세월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백제 고찰 금당사는 마이산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금으로 만든 집이란 뜻이어서 그런 것인지 건물들이 온통 금빛이다. 지붕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금빛으로 칠해져 있다. 바위에서 내려오는 호랑이까지도 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인다. 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금빛이 너무 많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금빛의 귀중함을 느낄 수 없다. 그에 반해 꽃문양창살은 소중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화두처럼 마음에 의문이 생긴다.

금이 소량이었을 때에는 그 희소성으로 인해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사방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으니, 진짜 금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앞선다. 그에 반해 꽃문양창살은 대웅전 문에만 새겨져 있다. 그 지극정성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창살을 새긴 장인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더욱 더 정이 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 아니라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가장 귀한 존재가 아닌가. 사람의 마음이 하늘의 뜻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연으로 관계를 맺고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게 될 때 살만한 세상이 된다. 교만과 아집으로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이 많다면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금빛으로 칠해져 있는 건물의 지붕을 바라보면서 물질의 한계성을 새삼 확인한다. 금빛으로 칠한다고 하여 그 집이 금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금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소중한 보물이 아닌가?

꽃문양창살은 그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창살이 꽃으로 이루어져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 꽃문양을 새겼을 장인의 정성과 마음이 아름답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정성을 다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상관이 없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이미 얻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얻었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렸기 때문이다. 꽃문양창살이 마음을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질만능주의의 끝은 허망하다. 그러나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무궁하다.



무슨 일을 하던 중요한 것은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충족되어 있으면 행복한 것이고, 물질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불행하다. 꽃문양창살을 바라보면서 정성과 마음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였다.

낙우송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달려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란 생각이 앞섰다. 시동을 껐다. 그리고 내렸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그것만으로도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하늘을 보며 걸어도 좋고, 들판으로 시선을 돌려도 좋았다. 고개를 들면 낙우송의 멋진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들녘에선 황금빛이 다가온다. 아!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누리면 될 일이다. 즐기면 되는 일이다.



우연히 들른 길이다. 모래재를 이용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가 새롭게 생겼으니, 그곳으로 달리면 되었다. 구 도로를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구불구불 돌아가야 하는 도로를 이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래재를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낙우송 도로와 만났다. 행운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포 구석구석까지 전해지는 진한 따뜻함에 취하게 된다. 걸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졌다.

모래재는 전주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굽이굽이 돌아서는 길이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고개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넓은 길이 뚫리고 나니, 모래재는 멀어졌다.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는 동안 주변의 환경은 좋아졌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되니, 자연 회복력을 발휘하였다. 주변의 경관이 아주 몰라보게 달라졌다.

나를 본다. 주름살이 늘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속절없이 세월에 삭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모래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늙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포도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익어가게 할 수는 없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니, 감정이 묘해진다.

왜 진즉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까?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욕심을 채우는데 급급하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서 살았다면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세월 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나를 숙성시켜갈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를 익어가게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욕심을 채우려고 달리다 보니, 그럴 기회를 놓쳤다. 아!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마음 한 번 돌리면 극락이란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낙우송 거리를 걸어가면서 달려온 지난날을 생각한다. 실패하였을 때 너무 좌절한 일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작은 성공을 보고 너무 날뛰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다. 그 모든 것이 한줄기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란 사실을 왜 몰랐을까? 생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생긴다. 천국과 지옥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삶에 충실하게 되면 삭아지는 나가 아니라 숙성하는 나를 만들 수 있다. 낙우송이 아름답다. 말없이 낙우송 거리를 걸었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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