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중혁/ 창작과비평

 그는 두 권의 소설집 ‘펭귄 뉴스’ ‘악기들의 도서관’을 통해 기발한 상상력과 능청스러운 유머, 따뜻한 감성이 조화를 이룬 자신만의 세계를 각인시키며 독자와 평단 모두의 관심을 모아왔다. 이제 등단 10년, 많은 이들이 그의 본격적인 장편을 고대하고 있던 차, 드디어 ‘좀비들’이 출간되었다.
전국을 다니며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채지훈은 어느 날 작업 도중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는 무통신지역 ‘고리오마을’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는 알 수 없는 수상한 예감을 느끼지만, 그러나 곧 다시 하루종일 안테나 수신감도 창을 들여다보는 단조롭고 외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후, 죽은 형이 남긴 수많은 LP판 가운데 ‘스톤플라워’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1960년대 록그룹의 음반에 이끌려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던 도중 도서관에서 일하는 유쾌한 거구 ‘뚱보130’을 만나 친구가 되고, 그의 도움으로 스톤플라워의 리더가 쓴 자서전을 번역한 홍혜정이라는 인물을 찾아 다시 고리오마을을 방문한다. 자상하고 따뜻한 할머니인 홍혜정과 뚱보130, 그리고 주인공 셋은 이내 다시없는 친구가 되고, 형의 죽음으로 침울한 고독에 빠졌던 주인공은 그들 덕분에 다소나마 밝은 모습을 되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고리오마을에서 거액을 걸고 그해가 가기 전에 죽을 사람들의 순서를 맞히는 게임을 벌이고 있음을 안 주인공과 뚱보130은 홍혜정과 다툰 끝에 서로 멀어지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홍혜정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는다. 두 사람은 홍혜정이 외롭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그녀의 묘비를 세워주는데, 묘비가 완성되던 날, 둘 앞에 죽은 홍혜정을 지독하게 증오하는 딸 홍이안이 나타난다.
그런데 잠깐, 이건 좀비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독자들이 그런 의문을 품을 만한 찰나, 주인공과 뚱보130 앞에 불쑥, ‘좀비’가 나타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겨우 좀비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는데, 그다음 날부터 고리오마을과 그 주변이 완전히 봉쇄되고 그들 앞에 한 무리의 군인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고리오마을을 둘러싼 비밀과 좀비들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좀비들이라는 낯선 존재가 뿜어내는 긴장감이 책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가운데,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독특한 설정, 간결한 문장과 허허실실한 유머를 담은 김중혁만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독자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준다.
380면/ 11000원  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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