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꼭 사위가 힘 좀 쓰는 변강쇠라야만 됩니껴?”
“장인어른, 꼭 사위가 힘 좀 쓰는 변강쇠라야만 됩니껴?”
  • 승인 2010.11.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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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둘레길(3): 소나무숲길-우이령 구간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 앞.  9월하고도 마지막 일요일 오전 10시. 정말 발 디딜 틈도 없다. 120번, 152번 버스종점에서 출발하는 북한산둘레길 ‘우이령 구간’.
김 대장의 제안으로 지난 탐방 때 타지 못했던 소나무숲길 구간 탐방 후 우이령 구간을 넘기로 했다. 덕성여대 앞에서 내린다. 이 시간 우이령 구간은 입구부터 긴 행렬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우이령 구간은 사전 탐방 예약제로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개개인이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확인증과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후 통과를 시키기 때문이다. 사전 탐방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는데 15일 전에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절차를 밟고 지정 당일 날 오면 된다. 단 65세 이상 노령자와 장애인 및 외국인은 전화예약이 가능하다. 하루 출입 인원은 우이탐방지원센터와 양주시 소재 교현탐방지원센터를 합친 1000명으로 제한된다. 출입시간은 오후 2시까지다. 출입시간이 지나면 우이령탐방지원센터에서는 전경대가,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는 군부대가 통제한다.


# 솔샘길에서 본 북한산 주봉들


덕성여대 입구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순례길 구간 가기 전, 우측으로 솔밭근린공원 상단이 나온다. 주변에 어린이 놀이터, 건강지압보도, 음수대, 배드민턴장, 쉼터 등이 예쁘게 단장되어 있다. 애국가에 나오는,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무가 지천에 널려 강렬한 솔향을 뿜어낸다. 금새 마음이 상쾌해진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 등의 삼림욕효과도 경험할 수 있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솔향기는 메리츠화재 연수원과 자수박물관, 이용문 장군 묘역을 지날 때 까지 계속 이어진다. 한참을 가니 약수터 앞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만고강산 약수터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변함이 없는 산천이 만고강산인데 어디 그럼 약수 한잔 먹고 만고강산 타령이나 읊어봐.
약수 머금고 다시 걷는다. 우이제일교회를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니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천도교 지도자였으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선생이다.


# 손병희 선생 묘소


우이분소를 지나니 차량이 다니는 길과 마주친다. 우이동 버스종점에서 도선사 가는 길이다. 길을 가로질러 오른쪽의 오솔길로 접어드니 청정 우이계곡이 일행을 맞이한다. 졸∼졸∼졸 계곡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가 엄마의 품처럼 마냥 정겹다. 계곡 뒤로는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를 묶은 삼각산이 하늘 높이 솟아 속세의 범인(凡人)들을 유혹한다.


# 우이동계곡


# 푯말


얼마를 내려가니 계곡 아래 우이동 먹거리마을 입구의 넓은 광장이 나온다. 광장 옆 귀퉁이에 있는 24시 마트에서 이것저것 간식거리 장만하고, 먹거리마을 안에서 소문난 김밥 추천받아 몇 인분을 챙긴다. 먹거리마을부터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는 30여 분 소요되는 제법 긴 코스다. 가파른 언덕길이라 등산기분도 난다. 아무리 둘러가는 길이라도 한 땀은 흘려야지. 암∼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이 힘든 와중에도 총무를 맡고 있는 조 작가, 이곳저곳 카메라 방향 틀어가며 연신 셔터 눌러댄다. 그러다 “자, 여기 뒤돌아 봐요.” 일행들, 머리 뒤로 젖히는 순간 찰깍.


#우이령탐방소


# 둘레길 안내지도


숨 헐떡이며 전경대 초소를 지난다. 정오의 우이탐방지원센터는 비교적 한가롭다. 센터 담당자인 권오병 선생에게 간단한 절차를 밟고 우이령에 첫발을 찍는다. 이때, 김 대장이 빙과류 하나씩을 손에 쥐어준다. 아니 언제 사왔지? 아무튼 세상 좋아졌다. 얼음과자 먹으면서 산행이라. 중견탤런트 김혜경의 코맹맹이 목소리로 “잘 먹겠슴니다앙.”
전경대 본관건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쉼터에서 잠깐 쉬어간다.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주변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야생화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층꽃나무, 범부채, 벌개미취, 하늘매발톱 등이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20여 분을 가니 대전차장애물이 나타나고 언덕배기 끝부분에 우이령(소귀고개) 푯말이 서 있다. 일명 소귀고개로 알려져 있는 우이령길은 경기도 양주시 교현리와 서울의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소로(小路)였으나 한국전쟁 발발시 미 공병대가 작전도로를 개설하면서 차량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한북정맥의 끝자락에 있는 고갯마루로 북한산과 도봉산의 중심부에 위치, 양주시와 서울시 생물권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다.


# 우이령 푯말


# 소귀고개


우이령 푯말을 내려서니 넓은 터가 나온다. 중앙에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무대 위에서 식사하기가 안성맞춤이다. 무대라는 게 꼭 연설을 하고 공연을 해야 제 맛인가? 무대 사회자가 없으니 마음속으로 ‘자, 다음 식사하실 팀 나오세요.’ 돗자리 펴고 준비해 온 음식 가지런히 펼쳐 놓으니 꽤나 먹음직스럽다. 김밥, 샌드위치, 게맛살, 불고기 햄, 치즈, 사과, 배, 포도…또 뭐가 있나. 아무튼 거의 차례상 수준이다. 음복은 막걸리로 해야지. 막걸리는 별명이 많은 서민의 술이다. 원래는 쌀과 누룩으로 빚어 ‘막 걸러낸’ 술이라 하여 막걸리다. 농사철에 마셔서 농주(農酒), 맑지 못해서 탁주(濁酒), 하얘서 백주(白酒)라고도 불렸다. 배꽃(梨花)이 필 때 막걸리용 누룩을 빚는다고 해서 이화주라고도 했다. 제조 과정에서의 효모는 술의 발효를 도울 뿐 아니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춰준다.
막걸리는 반드시 흔들어 마시는 것이 이익이다. 술병이나 팩 바닥에 가라앉은 소중한 성분을 섭취할 수 있어서다. 외국에서도 막걸리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지난해 미국의 뉴스전문채널인 CNN은 막걸리 특집 보도를 하면서 ‘재기(a strong comeback)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아직도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 막걸리다.
우리 김 대장 술잔을 높이 치켜 세운다. 뒤이어 신 대표, 조 작가, 김 세르파, 전 포터가 잔을 든다. 주변을 의식해 작은 소리로 ‘마당발’(마주보는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 각자 쭉∼!! 다시 한 잔 채우고 연이어 건배 ‘당신’(당당하고 신나고) ‘멋져’(멋지고 가끔은 져주는)…. 둘레길 멤버들의 진면목을 살펴보면, 김 대장은 전국의 명산은 거의 다 다녀온 등산 베테랑이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인해 형성된 풍부한 경험과 지식,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강점이다. 신 대표는 산처럼 정직하고 순수한, 해맑은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 나 있다. ‘법치와 불륜의 함수관계’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이 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다. 부대장으로서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김 대장을 보필한다. 어느 모임이나 총무의 역할은 지대하다. 이쪽저쪽 아우르며 마지막 설거지를 도맡아하는 조 총무의 헌신은 가히 포상감이다. 사진작가로도 맹활약중이다. 김 세르파는 위치에 밝고 산에 대한 상식이 풍부해 자연스레 세르파 칭호를 받았다. 요즘도 언론사에 기행문을 기고하는 열정적인 지인이다. 전 포터는 항상 막걸리를 가져오는 관계로 본인이 자임(自任)하여 포터다. 세르파는 티벳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로 이주한 종족으로, 평균 3000∼4000?의 극한 고도에서 생활한다. 따라서 고산 산행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 그들의 성(性)이 세르파다. 요즈음은 등산전문가이드로 인식돼 있다. 세르파는 일찍이 포터와 쿡 과정을 거쳐 세르파에 이른다. 눈물겹게도 포터는 짐을 메고 베이스캠프까지 올라 가야한다. 다시 말해 막걸리를 책임지고 산에까지 택배해 주는 역할이 전 포터의 일이다(전 포터에게 막걸리 책임지고 가져오라는 사람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한 사람의 수고가 팀 전체에 크나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보람이 아니겠는가.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항상 싱그럽고 유쾌하다. 이 기분 못 느끼면 큰 불행이다. 얼큰한 기분 가슴에 안고 둘레길 이어간다. 소귀고개를 꼭짓점으로 교현탐방지원센터까지는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 석굴암 입구


석굴암사찰 입구인 유격장 저수지 못 미쳐 설치돼 있는 전망대가 일행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상장능선 뒤 오봉의 절묘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오봉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 옛날, 고을 원님의 딸을 얻기 위해 마을총각 5명이 상장능선에서 한명 씩 힘겨루기로 돌을 던졌는데 던진 돌 다섯 개가 각기 바위위에 얹혀져서 지금의 오봉이 되었단다.
“장인어른, 꼭 사위가 힘 쓰는 변강쇠라야만 됩니껴, 막걸리 잘 먹는 전 포터는 안 되능교.”
아! 여기 또 한 명의 주제파악이 안 되는 사람이 있었으니…나무관세음보살.



# 오봉


오봉능선 아래 여성봉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오솔길 계속 이어진다. 유격장 입구 저수지 주변에 다다라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또 인증 샷!


# 오봉능선


# 여성봉과 오봉

고즈넉한 시골길을 떠올리며 모퉁이를 돈다. 시선 끝 부분에 교현탐방지원센터가 들어온다. 704번 버스로 인근 효자동으로 이동, 만포면옥(02-359-3917)에서 평양냉면, 녹두지짐, 불고기, 왕만두를 주문해 하산주를 시작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분위기 나이스다. 어느덧 발아래 시냇물에 그늘이 드리운다. 석양의 해가 뉘엿뉘엿 눈길을 주며 모습을 감춘다.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선임기자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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