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구절초 꽃

보랏빛 꽃에 벌과 나비들이 정신이 없다. 꽃가루를 취하기 위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 벌과 나비들의 열정이 어찌나 뜨거운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든, 몰입하는 것은 아름답다. 누구이던 상관이 없다. 가을이 가기 전에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꽃을 찾아 일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벌과 나비들의 몰입과 열정이 또 하나의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야생으로 피어나는 구절초가 만개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들도 많이 있고, 활짝 피어난 꽃들도 많다. 오미조밀 산기슭을 꽉 채우고 있는 구절초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주변엔 구절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절초가 피어 있는 곳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소나무들이 빽빽하다. 소나무 아래 구절초가 피어 있으니, 더욱 더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와 구절초가 조화를 이루면서 청정한 가을을 연출해내고 있다. 축제는 청정한 자연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연의 위대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청정한 자연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는 화폐로는 계산할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청정한 자연이 유지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구절초 축제다. 청정한 자연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소득으로 연결되는 현장이다.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이득을 산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절초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은 옥정호 상류다. 맑고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곳이 옥정호다. 그런데 옥정호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 언저리에 있는 곳이니, 얼마나 말고 아름답겠는가? 전북 정읍시 산내면에 위치하고 있는 구절초 테마 공원이다. 옥정호를 바라보면서 좁은 길을 돌고 돌아서면 구절초 테마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구절초가 아니다. 산들거리는 코스모스다. 구절초보다 일찍 피어나는 코스모스가 환한 웃음으로 정답게 맞이해준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아직 채 축제가 시작된 건 아니지만,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벌써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곳까지 있을 정도다.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터널의 말라가는 박의 이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돌아가지는 않지만 물레방아도 만들어놓았고, 추억이 담겨 있는 우물도 만들어 놓았다. 도르래를 돌리니, 우물물이 올라온다. 두레박에는 어렸을 적 고향이 담겨 있고, 그리운 추억들이 줄줄이 매달려 나온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30여년이 훌쩍 지났다. 실감하기가 어렵다.



산기슭 언덕에는 메밀꽃이 피어나 있고, 구절초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활짝 피어 있는 구절초 꽃도 아름답지만, 꽃을 피워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꽃봉오리도 아름답다.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가파른 언덕으로 올라서니, 저 멀리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해님을 잊지 못해 해님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으니, 장관이다. 한 폭의 수채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청정한 자연이라는 점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시선이 옮겨진다. 보랏빛으로 피어 있는 꽃의 유혹에 넘어간 벌과 나비들의 비행 소리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두 마리의 호랑나비를 서로를 희롱하고, 곤충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다. 일을 사랑하고 그 것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벌과 나비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청정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란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구절초 군락 사이에는 12지신상의 조각품들이 서 있다. 12지신상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깎여져 세워졌다. 그러나 거기에서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청정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을 지키면서도 소득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기만 하면 파괴되지만, 훼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축제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합일과 관조를 본다. 자연과 합일을 이루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일치하지 못하고 사람의 편리만을 강조한다면 필연적으로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관조를 통해서 조금만 깊이 생각하고 자연에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절초 축제에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음을 보았다. 자연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고, 소득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축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구절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걷고 싶다. 그 곳이 어디인지는 상관없다. 꽃을 따라 가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무작정 걸어가노라면 분명 아름다운 곳이 나타나리라. 하염없이 걷고 있노라면 정다운 사람도 만날 것 같고, 이제는 먼 전설이 되어버린 친구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걸어가고 싶다. 그윽한 꽃향기에 취하여 걸어가고 싶다. 걸어가고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는 상관없다. 걸어가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코스모스 향에 취하니, 그 것으로 충분하다.



언제 저리도 곱게 피어났을까?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여름이었다.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은 열기.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가을이 보였다. 숨 쉬기조차 힘들었던 더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내렸다. 자연의 경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언감생심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을을 손으로 만지면서 감사하게 된다. 어김없이 찾아와준 계절이 고맙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운 꽃을 피워낸 코스모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아! 세상은 살만하지 않은가?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눈을 감고 코스모스 향에 취한다.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감지한다. 온 몸의 세포를 총동원하여 꽃 향을 누린다.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더 원한다는 것은 분명 욕심이다. 부질없는 욕심일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바람이 아니던가? 지혜로운 삶이란 먼 곳에 있지 않다.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슬기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길고도 먼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생은 결국 매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게 되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어리석은 삶이 될 뿐이다.

매 순간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선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욕심을 부려보았자, 손에 잡히는 것은 언제나 바람일 뿐이다. 바람과 같은 욕심에 얽매여 살아가는 인생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삶이 아니다. 막연한 바람을 쫓아 에너지를 낭비하는 인생은 아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하여 땀 흘리고 노력하는 삶이 바로 매 순간을 충실하게 채워가는 삶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삶이 아름다운 인생이다.



코스모스 향을 음미하며 걸어가고 있노라니, 몸도 마음도 가뿐해진다. 꽃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이 귀한 존재가 된 것 같아 좋다. 누군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나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준다. 나 또한 축복받은 삶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 하는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앞선다. 걸어가고 있는 나의 발걸음을 축복해주는 코스모스가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는 말한다. 걸어가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너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힘쓰라고, 가치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 것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코스모스의 속삭임이 귓가를 감미롭게 한다. 가득 차 있어서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던 욕심이 사라진다. 시나브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욕심을 바라보면서 코스모스 향에 젖는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