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둘레길(4):효자길-내시묘역길-마실길 구간

10월 초의 가을하늘. 왜 이다지도 변덕스럽나. 개었다, 내렸다. 우산 폈다 접었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2번 출구를 나와 구기터널 방향으로 간다. 삼성래미안 아파트를 지나 생태공원 상단의 구름정원길 구간을 가기 위함이다. 여기서 신호등을 건너면 옛성길 구간의 장미공원이다. 구름정원길은 새로 설치된 데크 상단에 있는 불광사부터가 들머리다. 이곳 말고도 불광중학교 부근, 불광공원지킴터 옆에도 똑같이 불광사란 이름의 사찰이 있다.


# 북한산

주변의 많은 무리 속에 섞여 한참을 가는데 손전화가 울린다. 둘레길 멤버의 조 총무다. 지금 멤버 3명이 함께, 충의길 구간을 오가는 의정부행 34번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란다. 사연인즉슨, 아침에 비가 오면 포기하고, 개이면 탐방하기로…. 조금 전 급하게 연락되었으니 가능하면 뒤따라오란다. 일찍이 조직의 쓴 맛 체험한 기자, 군 말없이 뒤따르겠노라고, 한방에 읍소한다. 노선이 완전히 뛰 바뀌는 순간이다. 도로공사에서 노선 바꿨으면, 시위대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을 텐데… 일단 결정했으면 서둘러야지. 마음이 바쁘다. 왔던 길 다시 역순으로 후다닥.


# 구름정원길 입구


# 효자리 입구


# 효자길 푯말

삼성래미안 아파트앞의 도로변에 내려서니 때마침 7211번 시내버스가 도착한다. 연신내역에 내려 롯데마트에서 치킨과 막걸리 준비한다. 포터 임무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시내버스 704번을 기다리는데 같은 방향의 시외버스 34번이 온다. 버스 안은 비교적 한가하다. 오전 산행출발시간을 넘긴 탓이다. 차는 구파발역을 지나 은평뉴타운, 삼천사입구를 지난다. 북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한 무리 내려주니 그나마 헐겁던 차 안이 텅 빈다. 효자비를 지나 푸른농원 앞에서 내린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효자길 구간은 사기막골 입구에서 국사당을 지나 밤골공원지킴터로 이어진다.


# 효자길 구간



# 효자길 주변

국사당을 지나간다. 국사당의 연원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전되어 오는 것을 종합해 보면, 원시 신앙의 구심점인 천신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산정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기고, 호랑이로부터의 환난을 막을 수 있도록 석마를 모시기도 했다. 국사당은 서낭당, 장군당, 영신당 등의 신당보다 한 단계 높은 신당으로 상당이라고도 불렸다. 이러한 원시 신앙이 뒤에 들어온 불교, 유교 등의 여러 종교와 타협하면서 발전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화와 함께 민속신앙이 사라지는 이즈음, 미신으로 치부되는 무속신앙이지만 국사당도 문화로 생각하면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 국사당 입구

빠른 걸음으로 밤골공원지킴터에서 우측 진관사 푯말을 따라 가는데, 일행들 효자동 버스정류소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 온다. 여기서 불과 5분 거리다. 잽싸게 달려가니 김 대장, 신 대표, 조 총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조금 전 버스로 지나온 길을 걸어서 되돌아 온 셈이다. 원래 사람 사는 게 왔다갔다 라지. 갔다왔다인가.
효자동에서 서울방향으로 걷는다. 효자비가 나온다. 전설속 효자 박태성과 그의 효성에 감동해 박태성을 따랐던 인왕산 호랑이에 대한 전설을 간직한 비다. 이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린다. 계속 올 비는 아닌데,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으면 기분 나쁘지. 배낭에서 우산 꺼내 받쳐 든다. 10여 분간 제법 세차게 오던 비는 효자비를 끼고 왼쪽으로 올라서면서 잠잠해 진다.


# 내시묘역길

효자동 공설묘역이 나오면서 내시묘역길이 열린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이 있는 곳이다. 내린 비로 인해 길이 약간 질펀해졌다. 다시 뜨거운 햇살이 내리 쪼인다. 아침부터 이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또다시 폈다 접었다, 둘레길이 단조롭다고 훈련시키나? 
얼마를 가다보니 길 우측에 간이휴게소가 나타난다. 미소쉼터다. 이것저것 먹음직한 간식거리가 마당 앞 간이테이블에 수북이 쌓여있다. 테이블마다 햇빛가리개도 장착돼 있다. 다시 비가 내려도 괜찮을 것 같다. 비 온 날은 바닥이 축축하여 돗자리 펴기가 영 거북하다. 때마침 출발할 때 비도 내리고, 혼자라서 돗자리도 넣지 않고 나섰던 터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시간도 오후 1시20분. 사발 면과 삶은 계란 주문하고, 가져 온 치킨 안주에 막걸리 펼치니 굿! 오늘은 알루미늄 술 잔 대신 미소쉼터에서 막걸리 잔 빌린다. 배낭 속 종이컵과는 술 맛이 다르지, 암 다르고말고.


# 미소쉼터




조 총무 “우리 둘레길 팀은 왜 이렇게 모든 게 척척 맞아 주는 거야. 좋아, 좋아, 아주 좋아” 흡족한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오늘도 ‘위하여’를 위해 위하여!!. 잔 몇 순배 돌고. 얼굴에 홍조를 띤 우리 지인, 최근 자신이 왜 행복한지를 생각해 봤단다. 첫째 지금도 부모님께서 살아계셔서 행복하고, 둘째 믿을 수 있는 신앙이 있어서 행복하고, 셋째 아직까지 몸이 건강해서 행복하고, 넷째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다섯째 자기와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가까운 지인이 주변에 있다는 게 행복하단다. 그렇다. 나이 들어 뜻 맞는 지인이 주변에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구구절절 옳소 다. 내친김에 여의도 입성시켜버려? 아니지, 그 오염된 곳에 던질 순 없지. 아이쿠, 나리들, 미안합니더. 본의 아니게 쬐금 씹혔네여.”
준비해 온 막걸리 다 비웠다. 왠지 섭섭하다. 섭섭해서 한통 더.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다보니 쉼터에서 어느 덧 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 의상봉

자, 이제 또 둘러보자. 미소쉼터를 뒤로하고 10여 분을 가니 북한산성유원지 초입의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앞이 나온다.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백운대와 대동문 가는 길이다. 기자가 얼마 전 백운대 오를 때 이곳을 지났었다. 우측 진관사 방향으로 접어든다.
몰려 있는 음식점 뒤로 얼마를 가니 우이령길을 능가하는 호젓한 오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정말 아름답다. 길 양측으로 늘어선 나무에서 뿜어내는 그윽한 피톤 치드 향이 천지를 진동하니 일행들 이구동성으로 감탄사 질러댄다. 정말 호젓한 길이다. 향에 취해 걷고 또 걷는다. 지나는 행인들의 표정도 마냥 즐겁다. 사진 찍고 또 걷고, 또 걷고 사진 찍고.
 

# 오솔길

어느 새 둘레교 앞이다. 계곡물은 말랐으나 다리 뒤로 보이는 노적봉과 백운대가 한 배경 해준다. 조 총무 손놀림 빨라진다. 적봉이와 운대를 양쪽 보디가드로, 준비하시고 쏘세요!!


# 노적봉

백화사를 지난다. 시간은 2시45분을 넘어서고 있다. 주택가 붉은 맨드라미가 시선을 끈다. 이 맨드라미를 직접 심었다는 동네 할머니, “맨드라미는 된내기가 내릴 때까지 피는 거여.” “된내기가 뭐예유?” 충청도말로 서리란다. 길 양쪽 천일홍과 코스모스가 완연한 가을을 알린다.



# 맨드라미


# 열매


북한산성 축성 시 동원되었던 관리와 연인관계를 맺은 기생이 끝내 애인을 만나지 못하자 스스로 몸을 던져 빠져 죽었다는 연못 ‘여기소’. 고인이시어,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이어가시길. ‘여기소 마을경로당’을 지나 전차부대 앞에서 내시묘역길과 이별하고 마실길로 들어선다. 이웃에 놀러간다는 뜻의 마실. 은평뉴타운과 인접한 구간으로 동네 마실 나온 기분으로 걸으라는 말이지. 도시의 삭막함과 숲속의 편안함을 동시에 맛보는 색다른 구간이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어봐야 숲의 중요성과 편안함을 깨달을 수 있으니까.
삼천사 입구에 서 있는 120년 된 보호수 주변의 차도가 사통팔달 뚫려 있다. 은평뉴타운을 중심으로 최근에 새로 만들어진 길들이다. 삼천사탐방지원센터 입구의 다리를 건너 진관사 입구를 지나간다. 특목고인 하나고등학교와 삼천사 인덕원을 통과하니 진관생태다리 앞이다. 여기까지가 마실길구간이다. 오후 4시가 가까워 온다. 탐방에 걸린 시간도 4시간 정도.


# 삼천사길


# 진관생태다리


전어 먹자고 의견 일치를 본 일행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불광동 독바위역 부근의 여수횟집(02-389-0833, 010-85351636 쥔장 김정심). 한 방 차지하고 모처럼 발 쭉 뻗으니 찜질방이 따로 없다. 잠시 후 먹음직한 전어구이와 전어회가 한상 차려진다. 술은 각자 취향대로다. 소주 아니면 막걸리. 이집 쥔장이 얼굴도 잘 생긴 미인이지만 생선회 뜨는 칼솜씨도 능수능란하다. 거기다 새벽에 직접 차 몰고 수산시장에 나가 그날그날 손님상에 오를 싱싱한 횟감을 골라온다. 그러다 어느 날 가까운 지인이라도 오면 ‘알바 조리장’ 불러 놓고 당신은 손님으로 둔갑한다. 술 마시고 칼질은 위험하니까. 평소 쥔장의 시원시원한 성격 탓에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하산주

일행들, 값에 비해 양이 많다고 흡족해 한다. 암, 다른 곳보다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지. 그래야 손님이 꾸준히 찾아오지. 이 집 쥔장도 불광역 인근에서 영업을 하다가 서울 모처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건물주인의 횡포로 작년 이맘 때 강제로 쫓겨났단다. 많은 돈 들여 가게수리 싹 해 놓고 재단장했는데, 터무니없이 집세 올리면서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줬단다. 있는 X이 더해. 제 기랄 기자 입에서 욕은 못하겠고 XX. 주변에 가슴 아픈 민초들이 한둘이겠소만, “여보시오들, ‘보름달이 제 살 갉아 먹어 그믐달로 바뀌는데 보름 밖에 안 걸립니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르고, 어느 흙속에서 진주가 나올지 모릅니다.’ 너무 그러지 맙시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거늘.” “뭐요, 공수부대가 맨 손으로 공병 수거한다고요.” “아이고 졌다, 졌어. 무식에 무슨 약이 있겠나. 아무튼 여수횟집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세요.”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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