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왕비가 사랑을 나누던 ‘교태전’
왕과 왕비가 사랑을 나누던 ‘교태전’
  • 승인 2010.10.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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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역사 현장 탐방 19 - 궁궐 나들이 3 경복궁 세번째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조선왕조의 제일 궁궐인 경복궁을 둘러봅니다.


#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은 왕과 사랑을 나누던 곳이기도 했다.


경회루를 둘러본 뒤 다시 경복궁의 중심축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근정전과 사정전 등 왕과 신하가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결정하던 ‘외전’이었다면 그 뒤부터는 ‘내전’이다. ‘내전’이란 왕과 왕비를 비롯 세자와 대비 등 왕실 가족이 생활하던 곳으로 ‘외전’에 비해 친밀하고 섬세한 정서가 배어 있다. 조선 왕조 여인들의 얘기도 대부분 이 곳을 배경으로 한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각각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건물이다. 왕은 강녕전에서 독서나 휴식을 취했고 때론 신하들과 만나 편안하게 얘기도 나눴다. 국모인 왕비에겐 왕위를 이을 세자를 낳고, 왕실 가족의 화목과 질서를 유지할 임무와 권한이 주어졌다.

‘천원지방’ 사상

왕이 일상적으로 거처했던 ‘강녕전’은 1395년(태조 4)에 창건하고 정도전이 건물 이름을 지었다. ‘강녕’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다’는 의미로 오복의 하나다.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 이념을 궁궐 건축에 반영한 것으로 유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 왕의 생활공간인 ‘강녕전

1533년(명종 8)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 중건했지만 1592년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됐다.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재건한 건물이 1920년까지 제자리에 있었으나 1917년 불 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다시 짓는다는 구실로 일본인들이 헐어버리고 일부는 내전을 짓는데 사용했다.



# ‘강녕전’ 내부 모습

1995년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12개동 794평이 복원돼 일반인에게 공개됐는데 그 때 강녕전도 새로 지어졌다. 강녕전의 기둥도 외부는 모두 네모 모양이고 내부는 둥근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했다. 강녕전 구역은 월대를 중심으로 해 네 개의 소침이 있다. 앞쪽 좌우로는 연생전이, 동쪽엔 경성전이 배치돼 있다.



# ‘강녕전’ 일대의 경성전과 연생전

‘담장 하나도 예술’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1394년 경복궁의 역사와 더불어 창건됐으나 역시 화재와 중건을 반복했다. ‘크게 교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왕과 왕비가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기도 했던 교태전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막힘없이 잘 통해야 왕세자가 태어날 수 있다고 믿어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는 게 특징이다. 왕이 곧 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없다는 설명도 있다.
교태전 뒤의 아미산은 궁궐 안에 한번 들어오면 궐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왕비를 위해 꾸민 정원이다. 야트막한 동산을 계단식으로 꾸미고 곳곳에 나무와 꽃을 가꾸었다.


# 왕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배치한 ‘아미산’.
6각 기둥의 굴뚝이 인상적이다.


화단에 세운 육각기둥 모양의 굴뚝엔 학, 박쥐, 봉황, 사슴,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덩굴, 바위 등 무늬를 장식했다. 아미산과 굴뚝의 여러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교태전 우측엔 대왕대비가 생활했던 자경전(보물 809호)이 있다. 조선 후기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사업을 하며 대왕대비 조씨를 위해 지은 전각으로 1867년(고종 4) 지었다 불탄 것을 1888년(고종 25) 다시 지었다. 현존하는 침전 가운데 옛 모습을 간직한 유일한 건물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 대왕대비가 머물렀던 ‘자경전’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가 생활한 자경전의 뒤뜰에 있는 십장생 굴뚝(보물 제810호)도 ‘명품’이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십장생,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포도, 부귀를 상징하는 박쥐 무늬 등이 장식돼 있다. 조선시대 궁궐에 있는 굴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보물로 지정된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

자경전 각 방에 연결된 굴뚝들을 한데 모았으며, 굴뚝이 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점도 독특하다. 조선 왕실의 궁궐들은 굴뚝과 온돌을 교묘하게 배치했는데 20미터 가까운 곳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한민족은 불을 유일하게 다스린 민족이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당대 최고의 기술로 담장 하나까지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교태전과 자경전의 담장도 눈여겨 봐야 한다. 장수와 복을 알리는 그림들이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 모양은 국립중앙박물관 담장에도 이용되는 등 궁궐 문화의 진수라 불린다.

“불을 지배한 유일민족”

세자는 왕위를 이을 사람이기에 ‘떠오르는 해’로 비유됐다. 생활 공간도 사정전과 내전의 동쪽에 둬 ‘동궁’이라 불렀다. 세자와 세자빈의 처소였던 자선당과 세자가 공부하며 정무를 익히던 비현각이 복원돼 있다.



# 동궁을 이뤘던 ‘자선당’과 ‘비현각’

자선당은 ‘착한 마음을 기른다’는 의미고 ‘비현각’은 ‘크게 밝다’는 뜻이다. 동궁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고 없어진 것을 대원군이 다시 지었지만 일제가 허물었다. 자선당에서 세자 시절을 보낸 마지막 왕은 순종이다. 순종 다음 영친왕은 경운궁(덕수궁)에서 황태자가 된 뒤 일본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자선당에 살지 못했다.
일본인 오쿠라는 자선당을 사 건물을 해체한 뒤 일본으로 가져가 ‘조선관’이라는 개인박물관으로 썼는데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불타고 말았다. 그 자리엔 오쿠라 호텔이 들어섰다.
1993년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오쿠라 호텔 안 산책길에 버려져 있는 자선당 주춧돌을 발견해 1995년 자선당을 받치는 돌 288개가 경복궁으로 돌아왔는데 현재는 건청궁에 비공개 보관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훗날 발견된 경복궁 유물로는 경회루 연못속에 있던 금동제 조각용 용도 있다. 1997년 오염이 심해 물을 다 퍼내고 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자 불기운(화기)을 막기 위해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자선당과 비현각 사이엔 현판도 설명도 없는 건물이 있는데 신하들이 쓰던 화장실이라고 한다. 경복궁엔 이런 건물들이 23곳이 있었는데 현재 남은 유일한 건물이다. 왕은 화장실 대신 ‘매화틀’이라는 특별 도구를 사용했다. 어의는 왕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대변의 색깔과 맛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고 한다.
세자 시절 문종은 아버지 세종이 좋아하는 앵두를 따드리기 위해 손수 궐내에 앵두나무를 가꾸었다. 그 때 심은 나무들은 아니지만, 경복궁 안에 앵두나무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 경복궁은 세종대왕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앵두나무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사진은 광화문 광장.



자경전 북동쪽, 향원정과 국립민속박물관 앞 일대에선 왕실 가족과 그들의 시중을 들던 궁인들이 생활한 전각이 빽빽했다. 궁궐엔 왕과 왕실의 직계 가족을 비롯해 이들의 시중을 드는 국인 등 적어도 3000여 명이 살았다. 음식을 장만하는 ‘수라간’과 왕실의 건강을 책임졌던 ‘약방’ 등도 이 곳에 배치됐을 가능성이 높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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