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바닷가 포구 마을에서

심포에서 바라보는 바다

가을 햇살이 맑다. 티 한 점 묻어 있지 않아 깨끗하다. 창가를 두드리는 가을 햇살의 손짓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마음이 동한다. 맑은 햇살에 마음을 빼앗기니 참을 수 없다. 조급해진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조바심이 난다.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진다.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주체하기 어렵다.



집을 나서니 좋다. 홀가분해져서 좋다. 아무도 나를 구속하지 않았지만 답답한 마음이 억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맑은 햇살 속으로 들어서니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날아갈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자유다. 자유란 정말 애매한 개념이다. 집에 있다고 하여 구속당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나오니, 자유라는 생각이 커진다. 자유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유는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누릴 때 참 자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김제의 호남평야는 황금물결로 넘실거린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시선의 끝, 지평선이 와 닿는다. 마음에 닿는 결실이 풍요롭다. 알알이 영글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정색을 한 채 이들을 지키고 있는 허수아비에게서 피곤함을 본다. 알찬 결실을 맺기까지 농부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한다. 추락하는 쌀값으로 시름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제는 축제 중이다. 이름 하여 지평선 축제다. 축제의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 부량면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들어설 수가 없었다. 밀려드는 자동차들의 물결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애드벌룬이 춤추는 모습만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방향을 심포로 바꾸었다. 심포는 김제시 진봉면에 위치하고 있는 해안 포구다. 새만금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항구로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방조제로 인해 항구란 이름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하여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다를 벗 삼아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배가 바다에 떠 있고,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찾아오고 있다.



심포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정박해 있는 선박들의 모습이 정겹다. 예전의 흥청거리던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히 활기가 넘쳐난다. 정박해 있는 배를 가을 햇살이 어루만진다. 따스한 햇살은 필연적으로 그늘도 만들어낸다. 심포는 그것을 보여준다. 그늘을 극복하고 여전히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가롭게 떠 있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긴다. 여유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시간이 없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심포의 풍광이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새만금방조제로 인해 항구라는 이름을 잃었지만, 여전히 활기에 넘쳐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긍정하고 희망찬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이다. 마음에 희망의 빛이 존재한다면, 밝은 미래는 항상 있다.
심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다.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다. 머지않아 정다운 친구라도 찾아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길은 멀어도 찾아갈 벗이 있다면 외롭지 않다고 하였던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으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일요일 오후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즐기는 기쁨이 크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가보다.



아쉬움이 컸지만, 마음을 잡는 바다를 뒤로 하고 돌아서야 했다. 넉넉한 바다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심포를 나와 만경 들판 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화려한 모습으로 손짓하는 꽃들이 보인다. 바로 코스모스다. 하얀 꽃, 분홍 꽃, 빨간 꽃들이 어우러져 한껏 맵시를 뽐내고 있다. 어찌나 예쁜지 마음까지 화려하게 물들여진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을 달리는 기분은 황홀하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다. 끝도 없이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은 지평선 축제의 상징이기도 한다.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다. 맑은 가을햇살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서 그렇고, 바다의 넉넉함을 담을 수 있어서 그렇다. 거기에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코스모스 꽃길까지…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힘이 들면 심포를 찾아야겠다. 바다의 넉넉함으로 힘듦을 이겨낼 수 있도록…. 심포의 바다가 내 마음에 담겨졌다.


학교 안에 대나무 숲이?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뚫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난 기상이 압도한다. 한 그루가 아니라 숲을 이루고 있으니, 더욱 장관이다. 가을에 보는 대나무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대나무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는 담양에서 대나무 숲을 보았다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기대도 하지 못한 대나무 숲을 만나니 그 감동은 더욱 컸다. 초록의 힘, 하늘까지 치솟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전주 시내 중학교 교사의 한 가운데이다. ㅁ 자형 교사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위용이 대단하다. 올곧은 마음으로 내일을 위해 당당하게 자라야 하는 학생들의 마음에 지주가 될 것이 분명하다. 비틀림이나 흔들림 없이 곧게 자라는 대나무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그것도 교사의 한 가운데에서 보는 대나무 숲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사고의 과정은 뇌에서 일어난다. 뇌의 활동으로 인해 우리의 생각이 확대 심화되고 그에 따라 행동이 결정된다. 사고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오관을 통해서 자극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체험을 통해 뇌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줌으로서 뇌의 활동이 강화된다. 뇌의 활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뇌의 활동과 우리 몸의 활동은 구분할 수 있다. 무의식적인 상태에서는 뇌와 몸이 일치하지 못한다. 그러면, 세상을 올곧게 바라볼 수 없다. 뇌와 몸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집중이 필요하다. 집중이 고도화되면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집중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대나무가 그런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학습에 매진하는 학생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이다. 교사의 솔선수범이 학생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다. 하늘로 곧게 자라는 대나무의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충분한 솔선수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나무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대나무에게서 전해지는 강력한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일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날마다 보는 대나무에게서 자극을 받으면서 배우고 있으니, 얼마나 바람직스러운 일인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은 많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견디기 힘든 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고통을 받지 않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고통을 아예 거부하려고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회피하는데 급급하면, 고통은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키울 뿐이다.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살아 있는 한 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대나무는 그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통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통은, 이겨내고 나면 오히려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보고 배우는 학생들의 의식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참 행복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선을 대나무로 옮길 때마다 자극을 받을 것이고, 사고가 확장될 것이다. 뇌와 몸이 일치를 이룰 것이고, 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것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학교 안의 대나무 숲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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