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신어도 된다는 둘레길, 운동화 신었는데도 이리 까탈져?
고무신 신어도 된다는 둘레길, 운동화 신었는데도 이리 까탈져?
  • 승인 2010.11.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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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 북한산둘레길(5): 옛성길-평창마을길 구간

평일 정오를 넘긴 지하철 3호선 불광역은 한산했다. 드문드문 둘레길 찾아 나서는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오늘은 독박골 장미공원에서 출발하는 ‘옛성길 구간’을 거쳐 ‘평창마을길 구간’을 둘레길 탐방코스로 잡았다. 길이는 약 7.7㎞, 소요시간은 3시간 남짓.


# 문수봉과 보현봉

구기터널 앞 장미공원 입구의 북한산둘레길 안내표시판 아래서 몇 팀의 무리들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장미공원으로 올라가면 탕춘대로 가는 ‘옛성길 구간’이고, 길 건너 삼성래미안 아파트쪽 불광사로 가면 진관생태다리까지의 ‘구름정원길 구간’이다.
오늘 한 구간 타고 다음 기회에 나머지 구간 가면 되지, 별걸 다 가지고 큰소리들이야, 별로 바쁜 사람들 같아 보이지도 않구만….


# 탕춘대가는길

장미공원 나무계단 위 팔각정에는 벌써 막걸리 판이 벌어져 있다. 기자에게 한 잔 하라고 손짓한다. 정중히 사양한다. 정상주와 하산주는 들어봤어도 출발주는 처음 본다. 초입부터 한 사발 하고 어쩌자고. ‘기자 얼굴에 한 사발이라고 표시라도 있나?’ 기자가 기가 막혀.


# 문수봉

약 10여 분 땀 흘리며 올라간다. 비 온지가 꽤 되어서인지 길바닥이 온통 흙먼지다. 바짓가랑이가 벌써 뿌옇다. 능선 초입의 정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쉬고 있다. 여기서도 불문율이 작용한다. 물 한잔 들이켜며 쉬고 있다가 다음 팀이 올라오면 방을 빼줘야 한다는…. 쉬는 공간이 좁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기자, 그냥 통과한다. 이 정도 올라오고 쉰다는 건 가문의 흉터다.
능선 오솔길로 시원한 바람이 몰려온다. 심호흡하여 맑은 공기 양껏 몸속에 집어넣는다. 바람이 한 움큼 뱃속으로 들어온다. 다시 길게 내 뿜는다. 어제 마신 한 사발 멀리 도망간다.


# 비봉능선



# 족두리봉

조망대에 올라서니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조망대답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대남문, 보현봉, 사자능선이 차례대로 나름의 자태를 과시한다. 날씨마저 쾌청하니 보는 눈도 즐겁다.


# 비봉과 사모바위


# 향로봉

다시 데크를 따라 얼마를 내려가니 벤치와 팔각정이 나온다. 여기에도 이해인 님의 시가 걸려 있다. ‘산을 보며’다. 비교문학에서 문학적 우위를 가진 나라가 발신인, 문화적으로 후발로 밀려 선진화를 받아들이는 이를 수신인이라 한다지. 우리도 노벨문학상 탈 때가 넘었는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술집은 난무한데 책방은 사라지고.


# 탕춘대성암문


# 성암문푯말

장미공원을 출발한지 30여분이 지날 즈음 탕춘대성암문에 이르렀다. 우측은 상명대학교 방향, 북쪽은 향로봉 가는 탕춘대능선길. 둘레길 표시 따라 우측으로 접어들어 이북5도청으로 향한다. 길이 굉장히 가파르다.


# 이북5도청 가는길


“고무신 신고와도 편안히 돌 수 있다는 둘레길이, 운동화 신고 왔는데도 왜 이렇게 까탈져? 힘들어 죽겠네.” “그래도 산은 산인디 등산화는 신어야지.” “그럼 산은 산이지, 산이 물인가.” “산에 나는 물이 약수 물이지.”



# 야생화

운동화 신고 온 나이 드신 아주머니, 괜히 같이 온 친구에게 심통 부린다. 상대편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응수한다. 그래도 둘 다정히 손을 잡고 내려간다.
가파른 길 내려서니 주택 앞마당에 붉은 홍조를 띤 야생화가 피어있다. 형형색색의 들국화다. 덩치는 작아도 당돌한 기가 느껴진다. 들국화 아래 바위 밑으로 시냇물이 흘러간다. 제법 한 운치한다. 이북5도청 입구를 벗어난다.


# 평창마을가는길

여기부터 평창마을길 구간이다. 구기동을 거쳐 세검정삼거리 방향으로 길을 튼다. 오후 1시 못 미쳐 출발했는데 어느 덧 한 시간이 흘렀다. 식당 앞에 택시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그 유명한 ‘장모님 해장국’(379-4294)집이다. 사골우거지 해장국으로 유명한데, 한 입맛 하는 택시기사들은 물론, 미식가들 발길이 끊일 새가 없다. 해장국 한 그릇 6000원 두부김치 7000원, 천엽 한 접시 1만원 등. 우거지 해장국 주문하여 막걸리 한 사발 붓는다. 속이 다 시원하다. 옆 테이블 아저씨, 마지막 남은 국물 뚝배기 채 들고 후루룩 마시고 일어선다. 얼굴에는 비장함이 서려있다. 기자도 사뭇 비장한 척 표정을 지어본다. 강금실 전 장관의 말이 떠오른다. “호호호… 코미디야, 코미디.”


# 보현봉


# 보현봉뒷편

구기동 버스정류소 앞에서 왼쪽 주택가 골목길을 힘들게 오른다. 사찰 ‘전심사’를 돌아서니 야외공터에 차량들이 몇 대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 접어드니 꽤 운치 있는 오솔길이 펼쳐진다. 중년부부가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간다. 보기가 참 좋다. 뒤에서 몰래, 카메라 꺼내든다. 원 샷!


# 멀리보이는 인왕산

상큼한 기분을 느끼기도 잠깐, 5분도 채 못가 둘레길 표시가 오른쪽 산중을 가리킨다. 접어드니 완전한 등산코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다. 낑낑대며 올라간다. 뱃속 한 사발, 얼굴위로 치고 올라온다. 취기가 다시 돈다. 이래서 정상주를 하랬지.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탁 트인 저 앞에 인왕산이 한줄기 광채를 뿜고 있다. 그 옛날 무학대사(無學大師)는 경복궁 터를 정할 때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지 않고, 백악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의 기세가 강해지는 형국이 된다고 했다지.



# 사자능선

안산도 고요하다. 약수터가 많기로 유명하다. 내리막길이 무척 험난하다. 험난하면 위험한 거지?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 딛는다. 가까스로 넓은 길로 내려선다. 평창공원지킴터 푯말이 서있는 아스팔트길에 당도했다.
여기부터 ‘명상길 구간’ 출발점인 형제봉매표소 입구까지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이 길은 평창동 주택가를 내려다보는 산복도로인데,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구간이다. 한참을 걷는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 울리는 손 전화소리. 편집장이다. 잘 걸려들었다.
“어디 계십니까?” “어디긴 어디, 둘레길 탐방중 인줄 알면서, 웬 능청?” “어느  구간이신데요.” “평창동 아스팔트 윈데, 왜, 이 시간에 남의 동네 담벼락을 넘봐야 하는데.” “아! 평창동이군요. 오랜만에 좋은 집 실컷 구경이나 하시면서 즐기시죠.”(알기는 귀신같이 잘 안다. 하기야 한 등산하는 편집장이지) “남의 집 구경하면 내 집 되나, 둘레길 개념이 동네 어귀를 연결하는 산책로라지만 이건 좀 심해.” “나중에 내려와서 한 사발 하시죠.” “알았네.”
한 사발 소리에 목소리 기어든다. 맘씨 좋은 우리 편집장, 나이 먹은 선배 투정쯤은 애교로 너그럽게 받아 넘긴다.(한 사발을 얻어먹어도 명분은 축적해둬야지.)
그러고 보니 집들이 참 웅장하다. 어느 집은 담벼락 높이가 성인 키 두 배는 됨직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마을이면 담배집도 보이고 구멍가게도 있어야지. 나 원, 그래야 출출할 때 막걸리라도 한 통 사 먹지. 일일이 자가용으로 다니는 게 좀 거시기 하긴 하겠다. 별 걱정 다하면서 또 걷는다.
일선사와 대성문가는 초입의 평창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난다. 시간은 오후 3시. 그런데 입구의 단골 찻집이 사라졌다. 무허가라 철거된 모양이다. 예전, 이쪽으로 하산 할 때, 이곳 찻집에서 빈대떡에 동동주 자주 마셨는데… 흔적 없이 사라진 빈터를 보니 참으로 아쉽다. 생겼다 없어지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인생사던가.


# 형제봉입구

15분 후 ‘명상길 구간’을 알리는 형제봉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의 둘레길 탐방은 여기까지. 다음 호에는 이곳, 명상길 구간을 거쳐 정릉의 솔샘길 구간으로 이어진다. 술시가 다가온다. 술시에는 술 외의 잡생각은 금물. 평창동 삼성래미안 아파트(옛 올림피아호텔) 아래서 7211번 버스타고 고대 앞에 내린다. 저 건너 모퉁이의 광동수산 활어 집에서 가을이 아쉬운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놓고 편집장과 마주한다. 술자리에서 집안 식구끼리 나누는 잡담까지 지면에 옮길 필요는 없잖아.^^
선임기자 jkh414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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